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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교전 2
기시 유스케 지음, 한성례 옮김 / 현대문학 / 2025년 2월
평점 :
기시 유스케 / 악의 교전 2
천사의 얼굴을 한 악마, 그리고 무너진 성선설
일본 모던 호러의 대표 작가 기시 유스케의 악의 교전은 현대문학에서 새롭게 재출간되었다. 악의 교전은 봉쇄된 학교 안에서 사이코패스 교사가 벌이는 무차별 살인을 다룬 소설로, 학교라는 성선설적 시스템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안에 자리한 진짜 악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한다.
천사의 얼굴을 한 영어 교사, 하스미 세이지는 뛰어난 외모와 유능함, 친절한 성격으로 학생들과 동료 교사들에게 존경받으며 학교 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그 외면 뒤에는 냉혹한 사이코패스이자 연쇄 살인마가 숨겨져 있다. 학교 시스템을 완벽히 장악한 그는 교내 문제를 해결하는 듯 행동하면서도 교묘한 조작과 심리전을 통해 학생들과 동료 교사들을 서서히 조종해 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본색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기시 유스케는 악의 교전을 두고 학교라는 고인 늪에 잘못 흘러든 상어에 대한 이야기라고 표현했다. 이는 작품의 핵심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로 학교라는 공간은 본래 성선설에 기초한 시스템 위에 세워진다. 그러나 그 안에서는 폭력과 착취, 불합리한 권력 관계가 끊임없이 작동하며, 결국 가장 강한 포식자가 살아남는 악의 피라미드가 형성된다. 그리고 하스미 세이지는 이 피라미드의 최상위 포식자다.
이 작품에서 가장 섬뜩한 점은 하스미 세이지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방식으로 행동한다는 것이다. 보통의 스릴러에서 등장하는 연쇄살인마는 감정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광기를 보인다. 그러나 하스미는 철저히 계산적이며, 그가 저지르는 살인은 필요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에게 학교는 완벽한 사냥터이며, 학생과 교사들은 손쉬운 먹잇감일 뿐이다.
본편의 전사를 다룬 비밀과 후일담을 다룬 악·의·교·전이라는 두 편의 미공개 단편이 수록되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하스미 세이지가 연쇄살인마로 변해 가는 과정과, 사건 이후의 이야기를 더욱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
출간된 지 15년이 지난 지금도 이 소설은 여전히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1,0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 속에서 우리는 지능적인 악인의 모습을 마주한다. 그들은 합리적인 말투로 사람들을 조종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며, 무엇보다도 결코 잡히지 않는다. 학교뿐만 아니라 기업, 정치, 법조계, 심지어 가정에서도 하스미 세이지와 같은 존재는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 그들은 규칙을 어기지 않는다. 대신, 그 규칙을 교묘하게 이용할 뿐이다.
다시 한번 무저갱의 공포 속으로 빠뜨린다.
다시 시작된 모리타트의 선율이 울려 퍼진다.
그리고, 하스미 세이지가 돌아왔다.
출판사 '현대문학' 으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