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강대국은 책임지지 않는가 -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하여
비비안느 포레스테 지음, 조민영 옮김 / 도도서가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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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제공 & 주관적 견해


휴전 협상 이후 무력 충돌이 있던 지난주, 오랜만에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글을 읽어보고 싶던 중 “왜 강대국은 책임지지 않는가”를 발견했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서 결혼 전 성이 드레퓌스였던 점, 공쿠르 상을 받은 적 있던 점, 시온주의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견지한다는 점이 작가인 비비안 포레스터 소개에서 유독 눈에 띈다.


“서구는 적어도 상징적으로는 강박적 근심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였다. 그 근심은 전혀 다른 상황과 다른 지역으로 강제로 옮겨지고 변형되었으며, 서구와는 무관한 분쟁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처럼 서구는 자신의 역사를 둘러싼 강박관념에서 벗어나기를 희망했고, 나치의 대학살과 그에 동의했고 무관심했던 공포의 시효가 이제는 끝났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새로운 비극 앞에서 자신은 책임이 없다고 주장할 수 있었고, 지금도 그렇게 주장할 수 있다.” p.29


“이런 식민지 시대의 상황에서, 열등한 민족인 아랍인들이 살고 있는 땅을 사용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유엔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해도 그리 놀랍지는 않다. 종주국 입장에서는, 멸시받는 자들이 사는 땅을 다른 멸시받는 자들에게 주는 것보다 더 간단하고 더 자연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들끼리 알아서 해결하라는 말이다. 그들이 서로 싸운들 무슨 상관인가!” p.95


‘비극의 서막’이라는 제목의 무게감 가득한 1부는 20세기 초 반유대주의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던 이들에게서 대규모 공습으로 수백 명의 사상자가 있었던 당장 지난주의 가자지구 모습이 겹쳐 보인다. 작가는 전후 처리에 있어 죄 떠넘기기, 책임감 덜기, 손 안 대고 코 풀기 정도로 요약 가능할 강국들의 행태를 비판하며 오늘날 우리가 뉴스에서 보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본격적 시작이 무엇이었는지에 생각하게 만든다.


‘사실’, ‘갈등’, ‘수수께끼’, ‘우선순위’ 등의 소제목으로 1부와 2부 아래 글들이 묶여 있다. 에세이스트, 소설가, 문학비평가로 활동한 작가답게 문학적, 역사적 서술 방식이 합쳐져 있다. 과거 시점에서 당시 글과 말을 인용하며 사회상을 보여주는 비중이 적지 않다. 주장과 뒷받침이 어우러진, 에세이와 역사적 서술이 결합된 형식이다. 


이어지는 2부에서 작가는 시온주의 창시자 헤르츨, 시온주의대회 선언에서 보이는 비합리성, 차별성에 대한 문제제기를 시작으로 유럽을 중심에 놓고 비판한다. 시온주의자 이전에 원주민에 대한 침략, 누군가의 죄를 대신 짊어진 이들 등 지금 맞닥뜨리는 문제의 뿌리는 유럽의 반유대주의 역사에 있다고 말한다. 누군가 단단히 잘못 깔아 놓은 판에 날뛰는 사람들과 이에 따라 봉변당한 사람들이라는 콘셉트로 오늘날 보이는 문제의 시작을 따져 보여준다. 


2004년 프랑스어로 출간된 이 책 결말에 교착상태에서 벗어날 미래에 대한 가능성이 짧게 쓰여 있다. 이십 년이 흘러 휴전이 논의되는 상황에서 둘의 평행선이 더 길어지진 않을지, 하는 부정적인 생각이 지배적으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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