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저자가 원래 어떤 메세지를 말하고 싶었던 것이었는지 원의미는 모르지만, 저는 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무리지어 가는 길을 따라가지 않고 나만의 길을 꿋꿋이 가는 것의 의미, 그리고 이즈음에는 개성의 중요함 등으로까지 이 책의 이야기가 품고 있는 이야기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들을, 그렇게 기억하고 이해해요. 아주 아주 어렸을 때 보았던 책인 것은데요. 어떤 진리와 잇대어 닿아있는 깨달음처럼 느껴질 정도로 깊은 인상을 주었던 책이았던 것 같아요. 일러스트도 아름다워서 글과 그림이 어우러져 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주었던 기억이 있어요. 어쩌면 이 책을 끝까지 안 읽었을 수도 있어요.(기억은 안 나요.) 끝까지 읽었든 안 읽었든 다시 읽어보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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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20주년을 축하드립니다. 저도 덕분에 좋은 책들많이 곁에 둘수 있게 되었네요. 특히 알라딘 중고서점이 있어서 답답한 일상에 한결 숨통이 트일 수 있었어요. 언제나 알라딘 중고서점 직원분들의 친절함에 고마움을 전합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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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성장 DNA -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21가지 원칙
리처드 코킨 지음, 김성태 옮김 / 생명의말씀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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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교회성장 dna, 리처드 코킨.

 

책날개의 저자 소개에 따르면 저자인 리처드 코킨은 "성공회 소속 목회자이고 청교도를 통해 신학적인 회심을 경험한 후 개혁주의를 따르게 되었다."고 한다. "신학적 회심"이라는 표현이 흥미롭다. 회심 앞에 신학적이 붙었으니 일단 대형 교회의 altar call 시간에 하는 반강제적 회심이라든지 수련회에서 분위기에 취해 하게 되는 감정적인 회심과는 다른 종류일 것이다. 보통 그리스도인 아무개의 회심의 경험은 신앙여정이 한참 진행된 뒤에도 변함없이 중요하고 핵심적인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그의 신학적 회심에 대해 유심히 이해하고 이 책 전반을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성공회, 청교도, 개혁주의 이 세가지 키워드가 코드에 맞는다. 성공회이므로 진보적인 신학이해에 대해 수용적일 것이다. 청교도이므로 지켜야할 핵심 교리에 타협은 할 수 없는 보수적인 입장일 것이다. 개혁주의이므로 구원관 등 중요한 하나님 이해에 대해 깊고 안정적일 것이다.

 

코킨은 옥스퍼드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런던에서 교회를 개척했다. 잉글랜드풍의 신학자요 목회자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팀켈러나 존파이퍼와 협력해서 세미나를 하는 등 미국 복음주의 진영의 리더들과도 활발한 교류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일단 책날개만 보아도 교회 성장이라는 단어가 주는 거부감은 많이 사그라든다. 목만 보고 성공주의 목회적인 관점에서 교회성장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면 읽기에 불편해서 어떻게 끝까지 읽을까 생각했던 걱정은 한 소뜸 식혔다.



 

 

 

 





아주 오래전에 럭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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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에서의 도피 - 세계적 지성 프랜시스 쉐퍼의 대표작 완전 개정판
프란시스 쉐퍼 지음, 김영재 옮김 / 생명의말씀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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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서평. 『이성에서의 도피』, 프란시스 쉐퍼.


표지에서 이미 많은 말을 하고 있다. 신학 전공자에게는 필독서다. 하지만 일반 신도들에게도 필독서다. 제목이나 저자가 주는 무게감이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재밌다. 특히 신학적 사고를 즐거워하는 사람들은 넘치도록 재밌게 읽을 수 있다. 논리적인 글을 읽을 때 감겨오는 감칠맛을 느낄 수 있다. 너무나 중요한 사실들을 진지하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그리고 논리적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에 재밌다. 진지한 내용을 다루지만 어렵지만은 않다. 가독성도 좋다.



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다. 예컨대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가톨릭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그것을 받을 수 있는 인간의 자격 두가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데, 그러한 교리가 왜 애매한 것인지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고 종교개혁의 구원관과 선명하게 대조시킨다. 종교개혁의 구원 견해는 인간은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로만 구원받을 수 있으며, 그 사실 이외에 다른 것이 슬쩍 끼어들 여지가 없음을 말한다. 따라서 우리는 오직 그러한 사실이 쓰여있는 성경을 신뢰해야 하고(sola scriptura) 성서를 믿는 믿음(sola fide)만이 필요할 뿐이라고 말한다.


쉐퍼는 토마스 아퀴나스나 키에르케고르와 같은 대신학자들을 균형적으로 바라보며 비평한다. 예컨대 아퀴나스가 인간의 지성을 전적 타락의 영역에서 제외시킴에 따라 이후 교회와 세계가 어떻게 영향받았는가에 대해 설명한다. 아퀴나스로 인해 그리스도인들은 은총(하나님, 그리스도인의 신앙, 인간의 영혼)을 비이성적인 것으로 이해하기 시작했으며 신앙은 상층부로 분리시키고, 자연(땅, 세속안에서의 그리스도인의 활동, 인간의 육체.)은 이성적인 것으로 이해하며 하층부로 가두는 이원론적 신앙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영향은 신학 뿐 아니라 예술과 철학 등의 일반세계에까지 광범위게 미쳤다. 쉐퍼는 넓고도 깊게 신학의 흐름과 세속의 역사를 짚어간다.


읽는 족족 피가 되고 살이 된다. 영양 많고 품질 좋은 소고기를 먹는 것 같다. 약간 퍽퍽한 감도 있다. 소고기 중에서 무거운 살코기만 모여있는 부위를 도려내서 구워준 느낌이다. 하지만 문장들 이면에 육즙이 풍부해서 무조건 맛있는 고기다. 이렇게 고급진 퍽퍽함이 오랜만이다. 아마 오래 전에 낸시 피어시의 글을 읽을 때도 비슷한 흥분이 있었던 것 같다. 답답한 도시를 떠나 불쑥 밤기차를 타고서 밤바다를 볼 때와 같은 벅참이다. 캄캄한 어둠 저 너머로 어렴풋이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이 보이고, 바위에 세차게 부딛히는 시원한 파도소리가 들리는 듯한 장엄한 설렘이 있다.


지적으로 충만하다보니 그 자체가 이미 재미의 요소가 되는 느낌이다. 프란시스 쉐퍼처럼 지적으로 풍부한 사람들은 쏟아내는 언어의 밀도가 너무 높아 빨려들어갈 수 밖에 없다. 문장들 사이에 생략된 전제와 짧은 문장들이 품고 있는 깊이에서 저자의 목마름과 확신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 같다. 책장을 넘기며 조금씩 흥분이 되었다. 나의 무지함과 지식에 대한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아주 오래 허기졌던 사람처럼 허겁지겁 먹어치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게걸스럽게 한번에 먹어치우고, 책을 덮고 이를 쑤실 책은 아니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파인 다이닝 저녁식사를 하는 마음으로 읽어나갈 만한 격조있는 책이다. 절대로 한 번 읽고 모두 다 이해하고 모두 알았다고 여겨서는 안 될 것 같다. 비판적으로 보든 더 깊이 수용하기 위해 고심하든, 정독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읽고 또 읽으며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아야 할 이야기가 담겨 있다.


책은 얇지만 내용은 얇지 않다. 단숨에 읽힌다고 잡지처럼 가볍게 대해도 좋은 책이 아니다. 신앙에 대해, 인생에 대해 진지함을 가진 독자들이라면 어느새 프란시스 쉐퍼의 이야기에 빠져들어 그의 문장들을 무게감있게 대하게 될 것이다. 읽고 또 돌아가 읽으며, 자신의 믿음을 단락 단락의 옆에 두고 신앙의 결들을 맞춰보게 될 것이다. 영문책으로도 꼭 읽어보고 싶다.

현대인의 기원은 몇몇 시기로 추적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세계를 실제로 변화시킨 한 사람의 사상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하려고 한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가 흔히 ‘자연과 은총‘으로 불리는 것을 처음 논의하기 시작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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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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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가 노래하는 곳 Where the Crawdads Sing


델리아 오언스 Delia Owens


우리 영혼의 습지



, 이런게 문학이구나...’, '문학적. 문학적. 문학적...' 문학 알못인 내게 마음 속에서 조용히 터져나오던 감탄들이었다.


습하다. 글의 배경도 습하고, 글도 습하다. 책의 첫 챕터부터 난 충분히 젖어들고 있었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지리적 습지에 젖어드는 듯한 기분도 들지만, 본질적으로 글이 독자를 빨아들이는 문학성, 문학적인 습지에 젖어든다.

카야의 판자집. 어쩌면 우리 모두의 눅눅함.


슬프다. 풍요롭지만 빈곤한 도시의 삶과 빈곤함 안에 풍요로움이 있는 습지의 삶은 다르지 않다. 군중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며 사는 현대인들의 마음에도 저마다 마음의 습지가 있다. 처음에는 슬픔이 습지의 안개처럼 스며들다가 점점 온 몸에 그득그득 차오른다.


맨발로 갯벌을 꾸욱- 밟으면 갯벌을 또르르 기어다니는 게들이 쏙 숨어있는, 작은 구멍에서 바닷물이 차오르듯이 이 소설이 내 몽글몽글한 슬픔들을 꾸욱- 밟는다. 주인공 '카야'의 외로움과 슬픔은 꽉 막힌 채 터져나오지 못하고 고여있다. 그렇게 어린 소녀의 아픔과 슬픔은 담담히 팽창한다.



번역자에 따르면 델리아 오언스는 이 책이 “‘외로움에 관한 책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확실히 외로움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외로움이라는 깊고 깊은 캄캄한 늪을 품고 있지만, 습지대 안에는 무섭고 어두컴컴한 늪 뿐 아니라 살아있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듯이 이 소설이 이야기하는 소재들도 다채롭다. 사랑, 미스테리, 성장이야기 등의 다양한 주제를 이야기한다. 빛에 반사되는 갯벌의 빛처럼 표현하기 어려운 다양한 빛깔을 나에게, 나의 삶에 반사한다.

 

작가가 본질적으로 외로움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마도 작가의 경험과 세계관이 그러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짐작된다. 하지만 오언스가 무엇을, 그리고 어디까지를 의도했든, 이 이야기는 긴 그의 의도를, 심지어 작가 자신을 부드럽게, 유유히 뛰어넘고 있는 것 같다. 그가 글에서 묘사했듯 다리가 긴 새들이 우아하게 습지대를 날아오르는 모습처럼 말이다. "애초에 비행이 존재의 목적이 아니라는 듯".



"습지는 늪이 아니다."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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