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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 미술관의 유령들 - 그림으로 읽는 욕망의 윤리학
백상현 지음 / 책세상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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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강박적으로 의미를 추구한다. 그렇지만 세상에 이유나 의미도 있을까? 인간은 체계를 세워 그럴듯해 보이는 의미를 찾고 눈가림을 한다. 눈가림을 벗어나, 유령을 대면하라! 진실을 대면할 용기가 있는 사람에게 추천. 미술 작픔을 통해 라캉 철학을 이해하는 색다른 장점도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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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동물 - 동물은 기록하지 못하는 동물들의 세계사 세계사 가로지르기 5
임정은 지음 / 다른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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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새로운 관점에서 흥미롭게 볼 수 있다! 늑대(개), 소, 말을 인간 편으로 만든 것이 역사를 어떻게 바꾸었는지, 또 동물은 왜 인간 곁에 남기를 선택했는지, 동물권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저자의 친절한 설명이 인상적이다. 술술 읽히면서도 깊이 생각할 거리를 남기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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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강 신청 | 단순히 맛을 찾기 위해 떠나지 않고 맛에 담긴 추억과 사람냄새를 찾아내는 저자의 태도와 글을 참 좋아합니다. 이번에 직접 뵐 수 있다니 기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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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서재필 > 두마리 토끼(신선한 시도, 큰 웃음) 잡는 연극 드로잉쇼


 

‘드로잉 쇼’는 미술을 무대 주인공으로 하는 연극이다.   

그렇다고 단지 미술을 소재로 해서 사건이 벌어지는 연극은 아니다.  

화가가 직접 배우 역할을 하며 그림을 그리는 과정까지 작품으로 끌어올린 연극이다.

발상부터가 참신하고, 신선한 시도와 극적 구성이 제법 완성도 있게 펼쳐진다.

연극은 ‘화가-배우’가 검은 벽에 빠른 손동작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림을 그릴수록 그림 뒤에서 빛이 쏟아져 들어오게 만들어 놓았다. 꽤나 멋진 오프닝이다.

연극에서는 화가들이 그림만 그리지는 않는다. ‘꽤나 웃기는 바보 캐릭터들’이 관객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하곤 한다.

개인적으로, 이 연극의 가장 큰 장점이 기존 미술 세계의 틀을 깨고, 그림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여 주어, 그 즐거움을 함께한다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혹시 완성된 그림을 보는 것은 좋을지 모르나, 그림 그리는 과정을 보여주면 지겹다고 하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연극은 그것을 처리하는 데도 능숙하다. 카메라로 잡아서 집중력 있게 보여주거나, ‘웃기는’ 퍼포먼스를 보여 주거나 해서 깔끔하게 구성했다. 

만약 미술에 관심이 있는 아이를 둔 부모라면 꼭 함께 보면 좋을 공연이다.  

나름대로 내가 생각한 연극의 장점을 정리하면 이렇다.

1, 그림 실력과 연기 실력이 모두 빼어난 ‘화가-배우’들
2, 빠른 손놀림으로 그려지는 대중적인 그림들
3, 그림 그리는 과정을 때로는 신기하게 때로는 집중력 있게 보여 주는 센스
4, 큰 웃음 주는 바보 캐릭터들 

아쉬운 점은 그림들이 너무 대중적이라는 것이다. 

가끔은 ‘파격적인’(?) 작품을 보여 주면 좋겠다.

이런 약간의 아쉬움은 있지만,   

‘벌써 시간이 다 되었어?’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흥미로운 공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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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서재필 > 우리 시대에 도스또옙스키 다시 읽기 <루시드 드림>

 

“세상엔 구원이란 게 없으니까, 도스또옙스키는 사기예요.”

‘도스또옙스키 다시 읽기’를 시도하는 연극 <루시드 드림>의 주인공이 하는 말이다. 이 작품의 도스또옙스키 다시 읽기는 구원을 믿을 수 없는 현대 사회에 어울려 보인다.

작품은 도스또옙스키의 <죄와 벌>을 모방한 범죄를 일으킨 용의자와 그를 변호하는 변호사의 이야기가 핵심을 이룬다.

도스또옙스키가 소설 속에서 그리는 인물에게 선과 악의 경계는 모호하다. <루시드 드림> 또한 도스또옙스키의 선과 악의 경계의 모호함을 보여 준다.

나아가 이 작품은 환상과 현실의 구분마저 어렵게 만든다. 살인 용의자는 “난 변호사님의 거울이죠.”라고 말한다. 극이 진행될수록 누가 변호사이고, 누가 살인 용의자인지 알 수 없게 된다.

<죄와 벌>의 살인자 ‘라스꼴리니코프’의 역할을 용의자와 변호사가 다 맡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는 <죄와 벌>의 문제의식을 더 발전시킨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럼 <죄와 벌>에서 구원의 역할을 맡는 ‘쏘냐’는? 물론 비슷한 역할이 있다. 바로 변호사의 아내다. 그러나 <루시드 드림>은 변호사의 아내에게 쏘냐와 같은 구원자의 역할을 맡기지 않는다. 이 작품은 오히려 구원이란 없다고 말한다.

<루시드 드림>은 도스또옙스키의 <죄와 벌>보다 우리를 더 황량한 곳으로 데려간다. 그리곤 실존의 문제와 직면하게 만든다. ‘텅 빈 도로 위’에서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 신호등도, 차선도,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도로 위에서 말이다.

<루시드 드림>은 도스또옙스키의 문제의식에서 비롯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나아간다. 그렇게 <루시드 드림>만의 ‘재미’를 만든다.

훌륭한 공연을 본 한 관객으로서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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