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의 도서관 - 여성과 책의 문화사
크리스티아네 인만 지음, 엄미정 옮김 / 예경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책 읽기는 오랜 시간 금단의 열매였다. 과거 독서는 귀족들에게 허용된 행위였다. 근대에 이르러서야 독서는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반인들에게 독서가 허용된 시기에도 여성의 독서는 여전히 금단의 열매였다. 이 책 <판도라의 도서관>은 여성의 시각에서 독서의 문화를 살핀다. 그동안 주목하지 않았던 새로운 시각으로 독서의 문화를 보면, 재미난 일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여성에게 세상 이기는 전략을 전수하는 <여계>

 

이 책은 히파티아, 반소, 세이 쇼나곤 등의 특출한 여성 작가들을 통해 고대 여성의 독서 문화를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반소의 경우다. 반소는 중국 한나라 시절에 <한서>라는 굵직한 역사서를 집필(반표, 반고, 반소 공동 집필)했다.

 

그리고 여성 교육서 <여계>를 집필하기도 했는데, 내용이 무척 흥미롭다. 과거에는 이 책이 여성에게 순종의 미덕을 가르치는 것으로 오해되기도 했으나, 오늘날에는 이 책이 여성들에게 시댁이나 궁정에서 겪는 난관과 음모를 이기는 세련된 전략을 전수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당시 여성 전략서가 있었다는 사실이 무척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서구 중세에는 여성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은 수도원이었다. 수도원은 여성이 고등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기도 했다. 세속의 여성 교육은 르네상스 때 시작되었지만, 오랫동안 여전히 귀족만 접근할 수 있는 호사스러운 혜택으로 여겨졌다.

 

여성 독서 인구의 증가에 따른 여성 문학과 문학 살롱의 탄생

 

여성의 독서 문화와 관련하여 주목해야 할 것은 '여성 문학'과 '문학 살롱의 탄생'이다. 이것은 여성의 독서 문화와 무척 깊은 관련이 있다. 17세기 여성들이 다양한 책을 읽을 수 있게 되면서, 근대 여성 독자들에게 영합하는 여성 문학의 증가가 최고조에 달했고, 이것은 프랑스의 특징적인 문화 형식인 문학 살롱을 탄생시키는 데 일조했다.

 

여성 문학 중에서도 로맨스 소설은 여성 독서의 영향이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교육받은 아내와 딸을 행복에 보탬이 되는 자산으로 여겼는데, <다프니스와 클로에>, <카이레아스와 칼리로에> 같은 사랑과 모험을 다룬 작품이 여성들에게 인기 있었다. 이 작품들은 이를테면 로맨스 소설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대에 여성 독자는 주로 부유한 계층이었고, 이들에게 독서는 고상한 취미였다. 따라서 독서의 즐거움을 향상하기 위해 우아한 의자 등이 제작되기도 했다. 당시 여성의 독서 모습을 담은 그림에서는 과시적인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고 여성의 독서가 고상하고 특별한 것으로 다루어졌음을 볼 수 있다.

 

여성 작가로서 브론테 자매와 제인 오스틴이 겪은 수모

 

그렇지만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여성이 증하는 17세기에도 여전히 여성이 자신을 위해 교육을 받는다는 것과 글을 쓴다는 것은 아직 낯선 개념이었다.

 

이 책은 브론테 자매나 제인 오스틴이 겪어야 했던 수모와 여러 어려움을 잘 소개하고 있다. 오늘날 <이성과 감성>, <오만과 편견>은 고전 문학으로 취급되지만, 당시 출판사는 오스틴이 쓴 원고를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그의 작품은 결국에는 익명으로 자비 출판되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어느 숙녀가 쓴"이라는 말이 붙었을 뿐이다. 그가 독자에게 이름을 알린 것은 죽고 나서야 이루어진 일이다.

 

브론테 자매가 쓴 <제인 에어>는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평단의 찬사를 받았지만, 작가가 여성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분위기는 금세 바뀌었다. 작품이 구사하는 언어가 거칠고 공격적이며 선정적이라는 혹평이 나왔던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그저 헛웃음이나 한 번 지을 뿐이다.

 

여배우와 위대한 여가수들이 세계의 무대와 연주회장을 누비며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은 19세기 후반에나 가서야 여성 작가들도 전업 작가가 되어 문학계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20세기에나 일상생활의 일부가 된 여성의 독서

 

여성의 독서는 근대에 이르러서도 천천히 개방되었다. 대다수 여성이 순수하게 지식을 쌓거나 직업을 위한 필요성을 느끼고 책을 읽게 된 것은 20세기에나 들어와서야 가능해진 일이었다. 이전에는 여성이 보는 책을 엄격히 통제했으나, 여성을 점차 독립적인 개인으로 보면서부터 여성이 보는 책의 분야를 더 이상 통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여성이 책을 읽는 것이 고혹적인 활동으로 그려졌던 19세기 그림과는 달리 20세기 그림에는 그러한 분위기가 더는 없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이제 여성의 독서는 더는 지나치게 세련되거나 격식을 갖춘 행위를 떠올리게 하지 않고 일상생활의 일부가 된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여성이 책을 손에 넣기까지 길고도 어려운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이 책의 색다른 매력은 그러한 과정을 도판을 통해 살펴본다는 점이다. 즉 도판을 역사 자료 삼아 내용을 전개한다. 책 속에는 책을 읽는 여성을 그린 수많은 도판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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