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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회장의 그림창고
이은 지음 / 고즈넉 / 2011년 11월
평점 :
<박회장의 그림 창고>는 미술과 돈의 관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소설이다. 재벌이 미술품을 이용해 돈 세탁하고 불법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흥미롭다. 익히 알다시피, 삼성 그룹, 리움 미술관, 이건희 가의 비자금, 돈세탁, 비밀스런 미술 창고, 검찰 떡값 등의 사실을 담고 있다. 그 소재들이 이 소설의 구석구석에 활용되었다. 그리고 SK 그룹의 '매값'도 풍자적으로 나온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돈과 미술의 관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소설이기도 하면서 재벌 풍자 소설이기도 하다.
우선, 이 작품은 예술도 현실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아니, 예술만큼 현실적인 것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예술이 돈과 얼마나 돈과 권력에 가까웠는지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사실, 예술의 역사가 그러하지 않았던가! 예술가 뒤에는 늘 후원자가 있었고 예술의 기호는 사실상 그 후원자들이 쥐락펴락하지 않았던가.
어쩌면 예술은 순수했던 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그러한 점을 생각해 보게 만든다. 그리고 예술을 접하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 작품은 재벌 풍자 소설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면이 있어 보인다. 재벌들이 미술에 관심을 갖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미술은 그들의 '구별짓기' 행위다. 미술은 그들의 품격을 부상시켜 그들이 일반인들과 전혀 다른 인간임을 드러낸다. 그들에게 미술은 돈밖에 모르는 속물 이미지를 고상하고 우아하게 바꿔주는 정신적 명품의 역할을 한다.
정신적인 구별짓기 행위만이 아니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소설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몰래 재산 불리고 세금 안 뜯기고 상속하는 데 그림만 한 게 있나 싶다니까. 그림을 사고파는 데 익명 보장되지, 그게 어려우면 차명 계좌 쓰고 대리인 내세우면 되지, 보유세나 양도소득세도 없지, 가진 사람이 신고하지 않는 이상 상속세나 증여세도 낼 필요 없지, 갖고 있다가 그림 값 오르면 돈 벌어 좋지."(153쪽)
이 작품은 그러한 사실을 적나라하게 풍자한다. 나름 흥미로운 구성도 잘 갖추었다. 영화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그런데.... 다 읽고 나서 풍자의 격이 좀 떨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고급스러운 풍자가 이루어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었다. 그런데 조금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니, 감정을 격하게 쏟아내는 마지막 장면(+프롤로그)이 현실의 악에 비하면 결코 과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미술관의 쥐>만한 작품이 다시 나오지 않는 것이 좀 아쉽다. 어쨌든 우리나라의 독특한 장르 작가에게 격려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