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처럼 자라는 집 - 임형남.노은주의 건축 진경
임형남.노은주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집이 단지 재산 증식의 수단으로 전락한 오늘날, 내가 머물고 싶은 아늑한 집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 <나무가 자라는 집>은 건축에 대한 생각을 모은 에세이다.

 

저자는 집은 사람이 짓지만 시간이 완성한다고 말한다. 즉 집이란 짧은 시간에 단번에 지을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집 자체가 스스로의 완성을 유보한 채 시간을 두고 완성되어 간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나아가 집의 최종 완성은 집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과의 원만한 합의와 조화가 이루어질 때라고 말한다.

 

이렇듯 저자는 건축을 볼 때 기본적으로 시간을 고려한다. 언뜻 보면, 건축은 공간의 기술이다. 그런데 저자는 그곳에 시간의 철학을 녹여내려 한다. 공간에 시간이 더해지면 그것이 건축의 완성이리라.

 

이러한 철학은 저자가 옛 건축을 볼 때 더욱 빛을 발한다. 만들어진 것이든 저절로 생겨난 것이든 이 세상의 모든 것에는 본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시간이 스며든다. 그래서 옛집을 보러 간다든가 돌이나 철로 만든 유물을 보러 가는 것은 그 안에 흥건히 고여 있는 시간의 퇴적물을 보러 가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건축을 보는 저자의 통찰을 살피는 것이 이 책의 재미다. 개인적인 생각에 이 책의 첫째 키워드는 앞서 살펴본 시간이다. 다음으로 볼 수 있는 키워드는 속도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속도에 대해서도 재미난 생각을 보여준다.

 

저자는 속도는 길들여진 자신의 환경이라고 말한다. 도시의 속도, 시골의 속도, 그리고 개개인의 속도 등이 일종의 고착된 개별적 특성이 된다고 말한다. 이것 역시 건축을 읽는 유용한 시각이 되어 준다.

 

이 책에서 특히 재미난 부분은 병산서원을 보는 저자의 시각이었다. 병산서원은 주목받는 전통 건축물이다. 개개의 건물과 전체 구성, 주변에 대한 해석과 적절한 배치가 뛰어나다. 실제로 병산서원을 보았을 때 휴먼 스케일에 맞는 아늑한 느낌은 정말 최고였다.

 

그런데 저자는 그 풍경을 한국 건축의 미덕이라기보다 자연을 싹둑싹둑 잘라 배열해 놓고, 그 위에서 군림하는 권위적인 건축의 모습을 본다고 한다. 높이 앉아 내려다보며 병산을 잡아 박제해서 액자에 끼워 놓고 즐기던, 당시 그 동네 잘난 유생들의 거들먹거림이 눈앞에 어른거린다고 말한다.

 

저자는 병산서원이 소수 엘리트만을 위한 페쇄적이고 권위적인 건축물이라고 본다. 그래서 유기적인 기능 구성이나 용의주도한 공간 처리 수법에 무릎을 치면서도 주변을 누르고 버티고 앉아 바깥을 내려다보는 당당한 모습에 가슴이 답답해진다고 말한다. 이런 저자의 시각을 미처 보지 못했던 부분을 드러내는 것이라 새롭게 다가왔다.

 

이 책은 2002년에 출간된 책의 개정 증보판이라고 한다. 부부 건축가로 알려진 임형남, 노은주가 산청 ‘청래골 푸른 이끼 집’, 충주 ‘상산마을 김 선생 댁’ 등 그동안 작업했던 집들을 실례로 들기도 한다. 좋은 집이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참 좋은 책이다. 우리 사회에서 품이 넓고 유기적이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집, 격조 있는 집이 많아지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