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철학으로 치료한다 - 철학치료학 시론
이광래.김선희.이기원 지음 / 지와사랑 / 201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음, 철학으로 치료한다>는 '철학치료학 시론'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이 책은 '철학의 본래 자리'로 돌아가자는 운동을 펼친다. 

칸트, 헤겔 이후 철학은 직업 철학자들의 고도의 사유 놀이가 되었다. 그에 대한 반발로 인간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존 철학이 나오기도 했다. 소크라테스 이래 철학은 자기반성적 사유였다. 또 철학은 자기치유적이었다. 이 책은 그러한 속성을 지닌 철학의 본래 자리로 다시 돌아가자고 한다. 충분히 공감이 가는 주장이다. 

이 책의 앞부분은 철학치료학이라는 새로운 시도에 대한 정당화를 시도한다. 철학이란 본디 올바른 자기 인식을 위한 반성이므로 정신이나 마음에 대해 치료적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직업 철학이 아닌 생활 철학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오늘날 정신의학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약물치료에 대한 비판도 이어진다. 사실 약물치료라는 것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문제를 잠시 덮어두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책은 그에 대해 강하게 비판한다. 문제의 본질은 그대로 둔 채 대증요법에 머무는 처방일 뿐이라고. 그리고 그것은 더 큰 문제를 낳는다고. 그에 비해 철학치료학은 근원을 치료하고자 한다고 주장한다.

정신의학의 행태에 대해서도 매우 강력하게 비판한다. 병을 만들어 내고 약물을 파는 데 정신이 나갔다는 주장까지 강하게 펼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푸코가 말하는 생체권력이 사정없이 남용되는 현장이 바로 미국의 정신의학계가 아닌가. 미국의 드라마나 영화를 봐도 주인공들이 약물을 엄청나게 먹어댄다. 없는 병도 만들어 내고 약을 팔아먹는다는 비판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이 책은  병원이 병을 만든다고 주장했던 이반 일리치의 성과를 활용한다. 그리고 이 책이 치유하는 주체의 정체성과 치료권의 문제에서부터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부분에서는 이반 일리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근래 문학 치료나 예술 치료가 새롭게 시도되고 있다. 이 책은 이들이 특유의 매체이면서도 독자적인 인간관이나 문제 영역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들 치료가 다루는 영역은 기존 심리치료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학치료는 그들과 다를 것이라고 말한다. 자산이 충분하니 기대해 볼 일이다.

치료의 구체적인 방법으로 이 책은 사고 치료를 제시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인지심리학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이 들 쯤 이 책은 더 나아가 사상 문화 치료를 주장한다. 사상사를 치료학의 관점에서 다시 해석하기도 한다. 분명 흥미로운 시도다. 그렇지만 사상문화치료학을 주장한다면 결국 직업 철학으로 돌아가야 한다. 자신의 주장과 모순되는 일이 되지 않을까.

이 책은 1980년대부터 시작된 미국의 철학치료학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또다른 유행을 수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국적 상황에 대한 적응이 필요하리라.

개인적으로 철학치료학이 지금 당장 매우 필요한 곳은 바로 학교다. 상담 교사들이 철학 교사라면 좋을 테다. 돌아보면 이 책이 새로운 시도에 대한 정당화를 시도하는 동안 벌써 좋은 임상치료가 성과로 나오기도 했다. 

고등학교 철학 교사이자 상담 교사인 안광복이 쓴 <열일곱 살의 인생론>이 그것이다. 현학적인 언사를 구사하며 이론적 정당화를 하는 이 책보다, 철학치료학을 이미 실행하고 있는 <열일곱 살의 인생론>이 훨씬 진정성 있고 철학의 본래 자리를 보여 준 것은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