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건축 서양 건축 함께 읽기 - 임석재 교수의 대중을 위한 건축 강의
임석재 지음 / 안그라픽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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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설명이 참 쉽다. 그리고 명쾌하다. 덕분에 그 어떤 책보다도 우리 건축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전통 건축의 요소인 지붕, 기둥, 구조, 문, 담 등과 건축의 구성 원리인 방위, 척도, 여정, 계단, 비대칭, 친자연, 등. 또 건물 감상법까지 두루 알려준다. 전통 건축에 대한 이해를 통해 다양한 매력을 알게 되었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뿌듯함을 준다. 

그리고 전통 건축과 함께 서양 건축을 비교해서 알려주는 것은 이 책의 큰 특징이자 이 책만의 장점이다. 서양 건축과 비교함으로써, 우리 건축의 특성을 더 잘 알게 된다. 그리고 현대 건축의 흐름과 우리 건축의 소중함을 다시 깨닫게 된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열심히 줄을 그으며 읽었지만, 특히 더 인상적이었던 부분도 있다. 우선 전통 건축의 지붕에 대한 설명이 그러했다. 전통 건축의 지붕은 장중함과 날렵함을 함께 지닌다. 검은 기와를 얹은 모습은 장중하지만, 날렵한 처마 선은 날갯짓하듯 가뿐한 자태를 뽐낸다. 이처럼 상반되는 두 아름다움을 한 모습 안에서 동시에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전통 건축의 큰 매력이다. 

전통 건축의 지붕은 변화무쌍하다. 멀리서 보는 모습, 가까이서 보는 모습이 다르다. 주변 배경과 함께 보면 더욱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 준다. 건물 주위를 한 바퀴 돌면서 지붕을 보면 그 변화무쌍함을 실감할 수 있다. 완만한 곡선, 긴장감 넘치는 삼각형의 모습을 숨기고 있다. 이를테면, 멀리서 보면 은근한 곡선을 그리며 살며시 올라가 있는 처마도, 가까이 다가가서 모서리에서 올려다보면 하늘을 향해 긴박감 넘치는 삼각형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듯 한국의 지붕은 긴장과 이완의 상반된 느낌을 동시에 갖고 변화무쌍한 모습을 연출해 낸다. 나아가 이는 동양 철학 사상이 반영된 결과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하늘을 우러르는 동시에 땅을 굽어보는 두 가지를 담는 사상이라고 한다. 

한편 오늘날 서양 건축은 과거의 직선주의를 벗고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고 이 책은 설명한다. 저자는 우리의 친자연적 처마 곡선과 서양의 기술 문명이 만나 새로운 제3의 가치를 탄생시킬 수 있음을 주목한다. 

전통 건축에서 길과 여정을 읽는 것도 잊히지 않는다. 이 책은 사찰의 진입 공간에 설치된 일련의 건축적 장치들을 살펴본다. 그 속에는 진입 공간 스토리가 있다고 한다. 

사찰의 진입 공간은 일주문, 천왕문, 해탈문을 거쳐 대웅전으로 나아가게 된다. 속세와의 경계인 일주문을 지나면 성역으로 들어간다는 작은 긴장감이 시작된다. 천왕문과 해탈문을 거쳐 대웅전 앞에 서는 순간 종교적 상승감은 절정에 이르게 된다는 설명이 이어진다.

문화 유적을 본다면서 전통 사찰을 다니면서 그런 생각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 책은 명쾌하게 알려 주었다. 그리고 전통 건축은 사람의 수준이나 상태에 맞게끔 느끼게 하고 담아가게 한다고 설명하는데, 정말 그렇다. 불심이 부족한 사람이라도 어색함이나 거부감 없이 자신의 마음 상태만큼 느끼고 오게 만드는 것이 전통 건축에 담긴 길과 여정의 속뜻이라고 한다.

반면 서양 건축은 직설적이다. 서양 교회의 출입문은 강한 유입성을 가지면서 성역으로의 진입을 강요한다. 출입문을 지나면 전실이 있다. 이곳에서 마음을 추스른다. 다음 군중석에는 군데군데 종교적 상승감을 유발하는 장치들이 있다. 조각상이나 석관 등이 그렇다. 이어 제단에 강한 초점이 형성되어 있다. 빛과 함께 모든 시선이 그곳으로 모인다. 

한국 전통 건축처럼 숨겼다 보였다 하는 은근함 대신 목표물을 확실하게 설정하여 강조한다. 전통 건축은 고단수의 무언의 가르침을 담지만, 서양 건축은 일된되게 큰 목소리로 종교를 권유하는 것이다. 

그 외에도 덤벙 주초, 흰 나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 최소한의 손질만으로 나무를 그대로 계단으로 사용하는 것, 휴먼 스케일의 편안한 공간 연출 등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이 책은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오늘날 우리의 건축이 어떠해야 하는지 말이다. 그런 점에서 무척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근대 기능주의 건축을 반성하게 한다. 우리는 기능주의를 건축의 절대적인 의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은 그것이 하나의 편견이나 관습에 불과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나아가 우리 전통 건축의 정신을 오늘날 되살리는 방법을 고민하게 한다. 그것은 직선의 노예로 사는 우리를 해방시키는 프로젝트가 될 것이다. 쉬운 설명으로 전통 건축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게 하는 이 책은 많은 것을 생각하고 되짚어보고 고민하게 만드는 참으로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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