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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우리 시대의 거울 -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소통의 징검다리
이경덕 지음 / 다른세상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신화, 우리 시대의 거울>은 신화에도 문법이 있다고 보고, 그 문법을 읽는 법을 알려 준다. 이 책은 레비-스트로스, 클리퍼드 기어츠 등 문화인류학의 성과에 기대어 있다. 이 책은 문법을 읽기 때문에 신화 하나를 들려 주고 해석을 다는 방식이 아니라 여러 신화를 쭉 꿰어 읽는다.
이를테면, '나는 누구인가'라는 주제 아래 백설공주의 거울, 메두사, 나르키소스 신화 등을 꿴다. 저자는 백설공주의 진짜 주인공이 거울이라고 한다. 거울은 백설공주와 계모라는 대립 구도를 완성시켜 주는 매개물이다. 거울은 존재의 겉모습만 비춰준다.
저자는 에코와 나르키소스 신화도 흥미롭게 해석한다. 에코는 자기 이야기가 없는 여자다. 남의 이야기밖에 옮기지 못한다. 그녀의 정체는 바로 거울이다! 나르키소스가 보는 샘물 또한 거울의 이미지다. 결국 나르키소스 신화는 "자기의 이름을 부르고 자기를 들여다보라"는 메시지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겨울에 피는 수선화는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꽃이다. 저자의 말을 듣고 보니 나르키소스 신화가 새롭게 다가왔다.
저자는 이러한 신화적 사유가 철학으로 옮겨갔다고 암시한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자기를 아는 것은 언제나 중요한 문제였고, 따라서 시대에 맞게 철학이 되기도 하고 동화로 변신하기도 했으며 현대에는 영화나 소설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이렇듯 저자는 하나의 주제에서 다양한 신화를 꿰며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만만치 않은 내공을 보여 준다.
'사회적 어른 되기' 주제도 무척 흥미로웠다. 피터팬에 대한 해석이 재미나다. 특히 시계의 상징성에 대한 해석에서는 '아하'를 외쳤다. 시계는 시간을 알려 주는 도구다. 그런데 네버랜드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 곳이다.
그럼 왜 시계가 필요한 것일까? 그것은 모험을 마치고 아이들의 세계를 떠나 어른의 세계로 가야 한다는 것을 알려 주는 장치다. 시계 소리는 태어나서 자라고 어른이 되었다가 늙어가는 인간에 대한 진실을 아이들에게 알려 주는 소리다. 그래서 시계는 어른이 되어야 하는데 여전히 아이로 머물고 있는 피터팬에게 와서 째깍째깍 재촉한다.
저자는 피터팬에 대한 해석에 이어서 성인식의 의미를 살펴본다. 성인식의 본질은 아이가 죽고 사회적 어른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성인식을 거치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 같은 어른들이 많다. 커서도 책임은 지려 하지 않고 향유하려고만 한다.
저자는 성인식은 일종의 죽음의 경험이라고 말한다. 어린 아이의 죽음이다. 그래서 과거의 성인식은 위험하고 고통스러운 의례가 많았다. 저자는 관련 신화를 들려 주며 성인식의 의미를 짚어나간다. 그 방식이 꽤나 흥미롭다. 나이를 먹어도 어른이 되지 못하는 시대, 성인식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하는 좋은 글이다.
이 책은 그 외에도 '아름답게 나이 먹기', '소통', '출세', '타자' 등에 대해서도 알아본다. 그리고 다채로운 신화의 세계를 여행한다. 신화의 문법을 읽어 다채로운 신화를 꿰는 저자의 솜씨에 감탄하며 읽게 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