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 호랑이 탄 한국인과 놀다 - 우리 이야기로 보는 분석 심리학
이나미 지음 / 민음인 / 201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계의 여러 민담을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의문이 생긴다. 민족과 지역을 넘어 놀랍게도 비슷한 플롯, 비슷한 상징들이 반복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우리가 잘 아는 '콩쥐 팥쥐'와 '신데렐라'는 닮은꼴이다. 또 우리의 '구렁이 신랑' 민담과 '미녀와 야수', '개구리 왕자'는 모두 공통적으로 동물과 결혼한 아가씨가 우여곡절 끝에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게 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서로 다른 문명권의 이야기가 왜 닮은꼴인지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해 융의 분석 심리학은 흥미로운 이론을 제안한다. 분석 심리학은 인간에게 공통된 집단 무의식이 있다고 주장하고, 그 집단 무의식에서 원형(archetype)이라는 질서를 찾아낸다. 즉 인간의 집단 무의식과 원형이 민담에 담겨 있기 때문에 세계의 민담이 닮은꼴이라고 본다. 

이 책은 이러한 융의 분석 심리학의 도움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민담들을 분석한다. 도식적인 분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 둔다. 그리고 그 해석이 우리의 삶, 사랑, 성장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현대 한국인의 심리 상태와 사회를 읽기도 하는 등 다채로운 미덕을 지닌다.

예를 들면, 저자는 '소박맞은 세 자매' 민담 해석을 통해 성숙한 결혼 생활을 위해 필요한 태도가 무엇인지 살펴본다. 저자는 소박맞은 세 자매가 사실은 남편의 무의식이라고 뒤집어 읽는다. 남자의 무의식 속에 아직 성숙하지 못한 여성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성숙한 결혼 생활을 위해 이를 극복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저자의 지적은 날카로운 점이 있어 읽는 동안 '뜨끔'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호랑이 잡은 피리' 이야기를 인생의 바닥에서 다시 올라가 행복해지는 법에 관한 훌륭한 교범으로, '도깨비 감투'는 감투, 즉 지위나 신분 등의 가면 뒤에 숨어 망가져 가는 자아에 대한 은유로, '호랑이 뱃속 잔치'는 힘든 과정을 견디는 이들에게 영감과 힘을 줄 수 있는 이야기로 읽어낸다.  

이 책에서 시도하는 분석 중 압권은 역시 '해와 달이 된 오누이'가 아닐까 한다. 저자는 이이야기를 완전한 자아의 독립을 위한 이야기로 해석한다. 이렇게 옛 민담에서 오늘날 우리의 초상을 보고, 개인의 성장과 치유에 도움을 주는 이야기로 해석한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친숙한 민담에 현대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현실에서 부딪치는 문제를 해결하고 참된 자기를 찾는 실마리로 삼는다. 

이 책은 쉽게 쓰여 분석 심리학의 여러 용어들의 쓰임새도 절로 익힐 수 있다. 즉 아니마, 아니무스, 그림자, 페르소나, 참-자기 등은 물론이고, 수동 공격형 방어, 부정적 동일화, 충동 조절 장애 등의 개념도 사례를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어 무척 유용하다. 따라서 이 책은 분석 심리학의 훌륭한 입문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분석 심리학을 모르는 일반 독자에게도 흥미로운 민담을 통해 그 숨은 의미를 찾아가는 재미를 주며 자아의 성장과 치유에 도움까지 주는 좋은 책으로 보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