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 코드 - 너와 나를 우리로 만나게 하는 소통의 공간
신화연 지음 / 좋은책만들기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부끄러움은 역동적인 '사회적 감정'

이 책의 저자는 '부끄러움'을 단지 개인적인 감정으로 보지 않고,
사회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성숙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으로 전환시킨다.
그럼으로써 부끄러움을 대단히 '역동적인 사회적 감정'으로 격상시킨다.

부끄러움의 사회성 또는 관계적 부끄러움의 예로 박완서의 소설 속 인물들을 든다.
박완서가 그리는 인물들에게 부끄러움은 안으로만 깊어지는 내적 고민이나 혼자 갈등하는 죄의식 같은 개인적 정서가 아니다.
오히려 부끄러움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빚어지고 사이가 버성길 때 드러나는 그런 관계적 부끄러움이다.

저자는 부끄러움에 대해 '고통스럽지만 인간다워서 아름다운 감정'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인간 존재의 한계를 깊게 그리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감정이라는 점에서 '강자의 감정'이라고 적극적으로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또 부끄러움을 가장 진화된 감정이자 자의식을 가장 많이 반영하는 감정이라고도 말한다.

소통의 코드인 부끄러움을 적극 가르쳐야

부끄러움에 대한 많은 찬사 가운데 저자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보는 것은
부끄러움이 "자아의 경계를 허물고 타아를 초대"하는 마음이자 "소통의 코드"라는 점이다.

결국 이 책에서 부끄러움은 소통의 예술이 가능한 마음으로 칭송된다. 저자는 다음처럼 말한다.
"용서와 화해는 서로의 자아의 경계 안으로 삼투하며 얻어지는 소통의 예술이며, 부끄러움은 이런 소통의 예술을 이해하는 감정이다."(109쪽)  
  

따라서 저자는 오늘날 우리에게 이러한 부끄러움을 복원하는 것이 매우 필요하며, 부끄러움을 적극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부끄러움을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
부끄러움을 복원하는 한 가지 방법은 부끄러움을 대하는 미성숙한 대응을 성숙한 대응으로 이끄는 것이다.

이 책은 부끄러움을 합리화하는 심리적 과정을 '부끄러움의 경영'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것은 나름대로 심리적 거리를 이해하고 좁히려는 노력의 여정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부끄러움의 성숙한 경영'이 되는 것이겠다.

부끄러움을 어떻게 경영하느냐에 따라 성숙한 관계 맺기 가능해

이 책은 부끄러움의 미성숙한 경영의 네 가지 타입을 제시하고, 우리를 반성하게 해 성숙한 경영으로 이끈다.

첫째, '은둔형'(또는 '위축형')이다. 부끄러움을 느끼면 움츠러드는 것이다.
이는 방어의 초기 반응이기도 하지만, 어떤 이는 계속 그 상태로 머물기도 한다.

둘째, '자아 공격형'이다. 모든 것을 자신의 탓으로 받아들이며 세상을 감내하는 타입이다.
이는 집단문화에 사는 한국사람들에게, 특히 여자들에게 흔하다.

셋째, '회피형'이다. 저자는 이 타입이 요즘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방식이라고 본다.
명품족, 몸짱문화 등이 부끄러움의 회피적 경영의 대표적 대중문화라고 말한다.

넷째, '타인 공격형'이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하는 타입이다.
정신분석학적으로 보면 자아의 방어기제 중 '투사'에 해당한다.
이 타입은 분노를 증폭시킴으로서 자신은 부끄러움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저자는 이러한 미성숙한 대응이 개인에게 속한 것이지만, 동시에 사회의 모습을 반영한다고 본다.
그래서 부끄러움의 사회심리학적 분석을 시도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부끄러움(仁)의 복원

사실 부끄러움이란 감정을 관계의 감정으로 보는 것은 동양 철학의 전통에서는 일반적이다.
공자, 맹자가 말하는 '인'이 바로 '부끄러움'으로 번역될 수 있다.
저자가 만약 동양 철학을 알았다면 더 깊은 논의가 가능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한편 이 책은 성격이 애매한 문제가 있다. 즉 대중적 학술서도 아니고 개인적 수필도 아닌 어정쩡한 모습을 보인다.
그런 어정쩡함의 예 가운데 하나가 어울리지 않는 삽화다. (솔직히 삽화의 존재 이유를 대체 알 수 없다.)

무엇보다 문제는 사회심리학적 분석을 적극적으로 시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책은 부끄러움을 사회적 감정으로 격상시켰지만,
정작 사회적 분석을 적극적으로 시도하지 않는 것은 큰 한계이다.
그래도 저자의 다음 책을 기대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분명히 성과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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