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라면을 끓이며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평점 :
오래간만에 김훈 작가의 글을 읽었다. 아마 가장 최근에 읽었던 작품이 2011년에 발표된 '흑산'이었나? 아마 그럴 것이다. 나는 '빗살무늬토기의 추억'부터 시작하여 김훈의 글을 왠만하면 다 챙겨보아왔다.
김훈의 글은 소설과 에세이의 경계가 흐릿하다. 왜냐하면 그의 문장은 필시 손으로 원고지에 꾹꾹 눌러쓰는 육체적인 노동으로 인한 직접적인 사실성에 그 바탕을 두고 있는 듯 한 것으로 보인다. 본디 육체란 반복되는 행위로 인한 체득하는 성질의 것에는 쉽게 변화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소설로서의 글쓰기와 에세이로서의 글쓰기는 적어도 김훈 작가에게는 그 차이가 없는 것 같다.(글을 쓰다보니 김훈의 문장 스타일을 어설프게 따라하게 된다;;)
아무튼, 이번 신간은 에세이다. 하지만 완전히 100% 새로운 신간은 아니고, 예전에 생각의 나무라는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가 절판된 산문집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2002)' '밥벌이의 지겨움(2003)' '바다의 기별(2008)'에 실린 글의 일부와 그후에 새로 쓴 글들을 합쳐서 엮었다고 한다(그리고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란 에세이책의 글도 있는 것 같다). 혹자는 완전히 새로울 것도 없는 이 책을 출간을 두고 그저 돈벌이에 급급하여 짜집기로 모아 낸 책이라고 혹평하는 것도 보았으나,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오래된 것들은 자연히 사라지게 마련이고, 작가의 입장에서 버리기 아까운 것들과 버려도 좋을 것들을 분리하여 새로운 시대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글들을 따로 모아 새로운 글들과 합쳐 내놓는 것도 괜찮은 생각이라고 보기 때문. 하다못해, 음반업계에는 '리마스터'라는 명목 하에 오래된 것을 다시 새롭게 하여 재발매하는 경우도 허다하지 않은가(부들부들).
이 책을 읽다보니 앞서 언급한, 절판된 세 권의 책들이 모두 기존에 도서관에서 빌려본 것들이었다. 내용이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익숙하다고 해서 실망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김훈의 문장은 곱씹을수록 맛이 우러나는 훌륭한 문장들이기 때문에, 두서 번 읽어보고 또 읽어봐도 새롭고 또 새롭다.
예를 들어,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품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만져지지 않는 것들과 불러지지 않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른다." - P233, 바다의 기별 도입부
이런 류의 문장을 어찌 한 번만 보고 덮어둘 것인가. 그건 너무나도 아까운 일이다. 문장은 곱씹을수록, 머릿속에 두고 생각해볼수록 감탄하게 된다. 이러한 사유를 하는 김훈 작가가 나는 참으로 부럽다. 아무쪼록 나이가 들수록 꼰대가 되지 말고 이런 어른이 되어야 할 일이다.
나는 인터파크도서를 통해 이 책을 예약주문하여 받아보았다. 출간 전 문학동네에서 진행했던 '김훈의 문장선물'도 신청했고, 표지 디자인 투표에도 참여했다. 이 책의 예약주문 특전으로는 1. 김훈 자필 싸인본 2. 김훈 문장이 씌여진 냄비뚜껑 3. 라면 이렇게 세 가지가 주어진다고 했는데, 실제로 온라인 판매처에서 주문해보니 2번과 3번은 500포인트 결재로 유료였다. 나는 이러한 상술을 펼친 문학동네에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다. 이것은 독자를 기만하는 행위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치 예약주문한 사람에게 무료로 주어지는 것처럼 마케팅을 한 것은 잘못되었다.
이 책의 발매에 더불어 베스트셀러 논란이 불거린 점 또한 안타깝다. 이번 일로 인해 김훈 작가에 대한 화살이 쏘아지는 것은 아닌지, 좋아하는 팬의 한사람으로써 염려스럽다. 아무쪼록 출판사인 문학동네와 언론사 간에 명확한 사실관계 파악으로 논란을 불식시키길 바란다.
[단독]김훈 신간 '라면을 끓이며' 베스트셀러 순위조작 의혹(출처: 뉴스1) http://news1.kr/articles/?2442402
아무튼, 간만에 김훈 작가의 글을 읽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내친김에 그의 글 중 소장하지 않았던, 그렇지만 최근에 문학동네에서 새로이 출간된 '풍경과 상처' '자전거여행 1,2'도 구입해야겠다. 2015 서울국제도서전을 기다려본다.
덧.

예약판매로 '김훈의 문장선물단'을 신청했었는데, 까맣게 잊고 지내니 미니북 두 권을 우편으로 보내주었다. 이런 이벤트도 진행해주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