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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에 잘못 떨어진 먹물 한 방울 - 운영전 ㅣ 국어시간에 고전읽기 (나라말) 1
조현설 지음, 김은정 그림 / 나라말 / 200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춘향전에 가려져 빛을 보지 못하고, 현재 우리들에게 생소하게 느껴지는 고전소설이다. 하지만, 춘향전보다, 더한 감동적인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 같다. 두 남녀, 운영와 김진사는 서로 사랑하지만, 보이지 않는 벽이 서로를 가로막고 있기에, 안타깝게 멀리서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신세다.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을 하는, 그들의 사랑은 소설을 읽는 나에게 간절하고도 더욱 열렬하게 느껴졌다.
안평대군의 향락을 위해 학문을 배우는 10궁녀들 중 하나인 운영, 매일 대군을 위한 시를 바치고, 자신은 진정 사람으로서 느끼는 사랑의 감정마저 억눌러야 하는 가엾은 사람이다. 아마도 같은 여자라서일까? 그 당시 사회의 부조리한 법, 지나간 과거라지만, 속으로 씩씩거리면서 글을 읽어내려갔다.
궁녀이기에, 왕 한사람만을 바라보아야 한다. 억울하지만, 그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인 채 생활해야만 하는 궁녀들... 궁녀들에 대한 차별은 나아가서, 모든 여성들에게도, 적용된다. 이 부분에서, 소설은 그 당시 사회의 부당한 윤리의식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궁녀들의 삶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어느 날 그녀 앞에 김진사가 나타나게 된다. 그녀는 안평대군에게 초청받은 김진사의 옆에서 먹을 갈게된다. 그가 붓을 갈기다가 먹물 한 방울이 우연인지 필연인지 운영의 손가락에 떨어진다. 정말 나의 맘을 시원하게하는 부분이었다. 어떻게 둘의 인연이 이어질까? 하고 기대하던 차에, 기막히게도 먹물 한 방울이 운영의 손가락에 튀게 된 것이다. 여기서, 둘의 사랑이 싹 트게 되고, 나도 같이 설레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둘의 사랑은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일종의“위험한 사랑”이다. 신분의 벽도 있고, 궁녀라는 이름뒤에 감춰진 억울한 삶도 그렇고...
둘의 사랑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너무 많다. 그래서인지, 둘의 사랑은 더 가슴에 와 닿는 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운영전을 로미오와 줄리엣에 빗댄다. 비극적인 사랑이 더 아름답다는 말... 정말 딱 들어맞는 말인 듯 하다. 결국 이렇게 시작한 사랑은 안평대군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된다. 두 남녀의 상황은 사면초가에 처한다.
이를 어찌하리오? 타오르는 사랑의 감정을 옆에서 가로막으려고 하면 더 그립고, 더 짙어지는게 바로 사랑이다. 난 아직 어리지만, 어렴풋이 느낄 수는 있다. 난 둘의 상황이 어떻게 될까? 잘 되야 할텐데..하며 마음을 조이면서, 계속 읽어내려갔다. 결말은, 애처로운 선택이었다. 운영의 자결... 김진사의 죽음... 가련한 생을 마감한 두 남녀, 잘못된 벽에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의 죽음이 안타깝기만 하다. 딱한 그들의 결말이 나아가서 우리에게 들려주는 메시지가 있다.
이 소설에서 이야기하려는 바는, 그 시대에 높은 사회의 벽 때문에 이뤄질 수 없었던, 두 남녀의 사랑을 통해서, 그 당시의 뿌리박힌 잘못된 윤리관을 비판하려는 것이다. 즉, 개혁하려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을 때, 작가의 의도를 알고 읽어야 비로소 이 소설을 진짜로 읽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재미로만 읽는 소설이 아니라 말이다.
작가 채만삭의 의도가 그렇고 우리는 그 의도를 잘 읽고 소설을 읽어내려, 그 당시 사회상을 잘 알아야 겠단 생각이 든다. 다음에 이 소설을 읽는 사람들에게, 먼저, 재미로만 읽지 말고, 작가의 의도를 잘 파악하여 읽으면, 더 깊이있게 책을 읽을 수 있단 말을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