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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나라, 당찬 외교
안문석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5년 3월
평점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국제 무대에서 ‘힘’은 언제나 중요한 요소였다. 그러나 작은 나라가 반드시 외교적으로 취약한 것은 아니다. 국력이 강대국에 비해 부족하더라도, 주어진 환경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외교적 유연성을 발휘한다면 충분히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안문석의 작은 나라, 당찬 외교는 바로 이러한 관점을 중심으로, 중소국들이 국제사회에서 어떻게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책이다. 저자는 다양한 국가들의 사례를 들어, 외교적 균형, 경제적 자립, 외교 전략의 창의성이 어떻게 작은 나라들을 강대국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살아남게 하는지를 분석한다. 강대국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작은 나라들도 나름의 방식으로 국제사회에서 의미 있는 행보를 보일 수 있다.
싱가포르는 지정학적으로 미국과 중국이라는 거대한 강대국 사이에 위치해 있다. 어느 한쪽에 치우친 외교를 펼친다면, 국제 관계에서 심각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 작은 도시는 균형 외교라는 독특한 전략을 통해 두 강대국과 협력하면서도, 독립적인 외교적 입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미국과 안보협력을 깊이 하면서, 미국이 견제하는 중국과도 안보협력을 강화하는 싱가포르는 매우 특이한 나라이다. 미국과 긴밀한 안보협력 관계에 있는 우리가 중국과 군사 교류를 강화한다고 가정해보자. 미국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국내에서도 보수 세력의 반대가 이만저만 아닐 것이다. 우리보다 훨씬 작은 나라 싱가포르는 이 어려운 일을 해내고 있다.” (p.40)
저자가 제시하는 이 사례는 특정 강대국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고, 외교적 실리를 추구하면서도 독자적인 외교 노선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한국처럼 미국과 동맹을 맺고 있지만 중국과도 긴밀한 경제적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국가라면, 이러한 싱가포르의 전략은 중요한 참고점이 될 수 있다.
책은 또한 외교가 단순히 정치적 결단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기반이 튼튼할 때 더욱 주체적인 외교가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리투아니아의 사례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리투아니아가 신념 외교를 활기 넘치게 하는 데에는 경제적인 능력과 자신감이 배경으로 작용한다. 특히 레이저 산업에서 이루어놓은 성과가 리투아니아에는 그 어떤 것보다 큰 힘이 되고 있다. 레이저는 스마트폰이나 자동차에 들어가는 반도체 등을 정밀하게 자르는 작업, 광통신과 광의학 첨단화 등에 필요한 기술이다. 리투아니아는 1960년대부터 레이저 기술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에는 레이저 산업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 세계시장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다. 특히 레이저 광을 변환하거나 증폭시키는 데 사용하는 파라메트릭 발진기 OPO는 현재 세계시장에서 90퍼센트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피코초(1조 분의 1초) 단위의 정밀레이저 분야에서도 세계시장의 50퍼센트를 장악하고 있다. 미국의 항공우주국 NASA, 미국의 IT 기업 IBM, 유럽입자물리연구소 CERN, 일본의 자동차 기업 토요타 등 세계적인 연구 기관과 기업들이 리투아니아산 레이저를 쓰고 있다. 리투아니아는 레이저 수출로 매년 270억 원 정도를 벌어들인다. 최근에는 대만의 반도체 기업 TSMC와 협력해 초고속 레이저 등 첨단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더욱이 리투아니아의 레이저 산업은 독자적인 생태계를 갖추고 있다. 60여 개의 기업이 분업화되어 광학 부품과 공작 기계 등을 만들고 최종 제품까지 완성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p.123)
리투아니아는 특정 강대국에 기대어 외교를 펼치는 것이 아니라, 자국이 가진 기술력을 바탕으로 경제적 독립성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외교적 자율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독립적인 외교를 펼치기 위해서는 정치적 의지만으로는 부족하다. 경제적 자립이 곧 외교적 자율성을 보장하는 힘이 된다. 강대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면, 자국이 강력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분야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해야 한다는 점을 이 사례는 분명히 보여준다.
이 책은 한국과 같은 중견국이 강대국 중심의 국제사회에서 어떻게 전략적으로 외교를 펼쳐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균형 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특정 강대국에 의존하기보다는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다자외교를 활용해야 함을 시사한다. 또한 경제적 자립이 외교의 핵심 요소라는 점도 분명히 한다. 리투아니아처럼 특정 산업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면, 외교적 자율성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교적 유연성과 창의성을 발휘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싱가포르처럼 강대국과의 관계를 단순한 동맹 관계로만 보지 않고, 실리 외교를 펼칠 필요가 있다.
결국, 외교란 단순한 국력의 크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작은 나라, 당찬 외교는 이를 입증하는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며, 중소국이 국제사회에서 어떻게 살아남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한국 외교의 방향성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유용한 인사이트를 제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