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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감촉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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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살아낸 삶은 어떤 모양으로든 우리 몸에 흔적을 남긴다.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면 그 사람이 가진 외모, 태도, 분위기 등으로부터 어느 정도 그 사람이 어떠한 특징을 가졌을지를 짐작해 보곤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한 사람이 가지는 그 모든 것들은 그가 살아온 삶의 모습들을 통해 만들어지고 채워지는 것 같다.

안나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환대가 아닌 외면이었다. 그 첫 순간은 말투, 태도, 분위기, 사람들과의 관계에서의 적정 거리감 유지 등 안나의 몸과 삶에 흔적을 남기며 살아가는 내내 영향을 미친다. 반면, 경선은 어려서부터의 환대, 하지만 가족으로부터의 분리된 삶을 살아내는 과정에서 그에게 남긴 흔적들은 또 다른 모양으로 경선의 삶에 나타난다. 서로 모르는 체하며 오랜 시간 살아왔으나, 노년에 이르러 ‘첫 기억’이라는 놀이를 통해서 그들의 인생에 새겨진 흔적들을 나누며, 서로를 이해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지나온 모든 시간들은 저마다의 의미를 가지고 우리 삶을 채워놓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지금 내가 보내고 있는 이 시간들은 어떠한 의미로, 어떠한 흔적으로 나에게 남게 될 것인가. 삶과 죽음이 연결되어 있든지, 우리 인생의 모든 시간, 경험들은 각각이 가진 어떠한 의미들로 연결이 되어 있다. 인생의 마지막에 그 연결의 의미를 되돌아보고, 스스로 이름 붙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잘 살았다고 나를 다독여줄 수 있지 않을까.


# 내가 살아온 과거의 어느 순간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감각의 버튼들이 있다.

어떤 노래는 한없이 우울했던 청소년 시기의 나를, 또 다른 어떤 노래는 티없이 웃으며 춤추고 떠들던 나를, 그리고 어떤 노래는 늦은 저녁 버스에서 잔잔한 위로를 느끼던 나를 불러온다.

어떤 냄새는 잠 못들고 뒤척이다 포근했던 엄마 품에 안겨 잠들었던 나를, 또 다른 냄새는 동네에서 왁자지껄 떠들다 저녁 시간 각자의 집으로 흩어지던 우리를, 그리고 어떤 냄새는 분주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쉼을 가지던 순간을 떠오르게 만든다.

어떤 맛은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마음껏 축하를 받고 있는 한 아이에게로, 또 다른 맛은 치과 치료를 받으며 무섭고 불쾌했던 순간으로, 그리고 어떤 맛은 시골 할머니가 손수 준비해 주신 밥상 앞에서 웃던 그 시절로 나를 데려간다.

살아가다 마주하게 되는 어떤 감각의 버튼이 나를 과거 어느 순간으로 데리고 가는 것을 보면, 지금의 나를 있게 만든 모든 것들이 나름의 의미가 있는 것임을 새삼 깨닫는다. 그리고 그 기억들이 모두 내 몸 안에 깃들어 있음음.. 그 모든 것이 깃들어 있는 나의 몸, 그리고 애쓰며 살아온 삶은 지금의 그대로 충분하다는 것을..

몸에 관한 한 타인은 결코 개입하지 못한다. 남이 볼 때 남루하든 비참하든 한심하든 몸의 당사자에게만 유일하게 감각되는 고유의 삶인 것이다. - P14

한 사람의 몸안에는 수많은 장소와 시간이 들어 있다. 몸은 기쁨과 고통과 욕망과 상실의 부화장이고 사랑의 꿈과 왜곡을 간직한 도서관, 마지막 삶이 거처할 최후의 집인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는 재로 사라진다. 개체의 시간을 끝내고 무한에 섞여드는 여정이다. - P373

어떤 시간은 생활의 때 묻은 이력으로 채워진 채 흘러간다. 하지만 같은 시기의 또다른 어떤 시간은 내가 좋아하는 나의 모습 그대로의 세게 안에서 흘러간다. 삶이란 그처럼 의미가 다른 여러 개의 시간이 겹쳐져 흘러가는 게 아닐까. 몸의 일상은 현실의 시간대에서 변해가지만, 언젠가 포착한 적 있었던 꿈과 이상의 시간은 그 나름의 도착지를 향해 다른 길로 가고 있는 게 아닐까. 어쩌면 그것이 인간이 마지막까지 품고 있는 시원이나 본향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 P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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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상담 - -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한 17명의 상담사례와 30가지 심리치료
최고야.송아론 지음 / 푸른향기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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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힘든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 같다.

사회복지 현장에서 일을 하면서 해가 더해갈수록 마주하게 되는 주민들을 보면

물질적인 결핍만이 아닌 심리정서적인 문제가 함께 부각되는 경우들이 대부분이다.

어쩌면 늘 우리 곁에 있었던 문제들인제 이제서야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우연히 보게 된 책소개였고, 제목 그리고 표지에 마음이 끌렸다.

한학기동안 이론서와 논문들만 보았는데 실제 현장에서의 치료 장면들을 보고싶은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살다 보면 필연적으로 상처를 받는다. 어떤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없어지지만, 어떤 상처는 두고두고 나를 괴롭게 한다. 왜 그런 것일까? ... 또 정확히 말하면 내가 괴로운 이유는 '기억' 때문이 아니다. 기억으로 인한 '부정적 감정의 영향' 때문이다.' (p. 56)


글을 읽으면서 가장 깊이 마음에 새긴 문장이다.

나와 다른 누군가를 만나고,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는 당연히 상처가 따를 수밖에 없다.

그 상처를 어떻게 보듬고 또 다시 살아가느냐가 평생 우리 삶의 과제인지도 모른다.


마음이 힘들고 아픈 상황들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에

본인이 아니면 힘든 정도에 대해서 100%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 상태를 들여다 보려는 자신의 의지가 회복을 위한 첫걸음이 된다.

그리고 걸음이 혼자만의 여정이 되지 않도록 함께 걸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리고 나는,

그 누군가가 되고자 시작한 길인데 배우면 배울수록,

사람을 만나면 만날수록,

조심스러워진다.. 두려워진다..

과연 내가 어두운 방 안에 있는 누군가의 인생에 들어가서 함께 손을 잡고 그 방을 나올 수 있을까?

그래도 아직 이 길에 서 있는 것은

사람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마음만 앞세울 수는 없기에

오늘도 열심히 배우고 고민하며 더 나은 방법들을 찾아보고 싶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가다보면 우리네 인생들이 조금은 더 힘있는 삶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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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우지 않아도 삶에 스며드는 축복
정애리 지음 / 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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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맞닿아있는 문장들에 미소가 번지기도 하고,

내 마음을 북적이고 있던 상황들에 비추어 눈물이 흐르기도 하고,

차분하고 고요하게 복잡한 머릿속 생각들을 내려놓고 마음을 다독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p.46) "가지치기_

...

채워야 할 때도 있지만,

떨구고 버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좋은 것들을 채우기 위해선 먼저 잔을 비워야 하지요

나이 들면 좀 더 단순하게 살고 싶다는 얘기를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내게는 가진 것들이 참 많이 있네요"

채우기 위해서 비워야 한다는 사실을 모른척하며 늘 채우기 위해 애쓰는 모습으로 살고 있지는 않은가?

얼마나 채워야 이제 그만이라고 외칠 수 있는 것일까?

사람에게 채움으로 인한 만족할 수 있는 지점이 있기는 한 것일까?

(p. 74) "살아내는 풍경_

열일하고 있습니다

그저 호수에 떠 있는 한가로운 오리들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 당겨 보니

살아가기 위해 열심이에요

꽁지까지 하늘로 쳐들고.

멋진 풍경처럼 보이는 그 누구라도

가까이 당겨 보면

살아내느라 애쓰고 있겠지요.

그대의 살아내는 오늘도

멀리서 보면 풍경입니다"

내게 주어진 많은 역할들과 매일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들 사이에서 북적이며 삶이 버거워진 상태에서

살아내느라 애쓰고 있다는 문장을 읽으며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가까이서 보는 내 삶은 전쟁터같은 일상이었는데

멀리 떨어져 보면 그 또한 풍경이 된다고 하니 얼마나 위로가 되던지요.

내가 매일 열심이라는 이름으로 쏟아붓고 있는 에너지들이 어느 순간 허무함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너무 가까이 있어서 보지 못했나보다.

가끔은 혼자 덩그러니 남겨져 삶의 공백을 만드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매번 남을 향한 측은지심만 가지고 있었는데

가끔은 내 삶에 대한 측은지심을 가지고 나 스스로를 토닥토닥해줘도 되는 것 같다.

나에게도 조금은 관대해져보기.

앞으로는 그래야 할 것 같다.

(p. 212) "비워야 내가 되는 나눔_

힘을 내야 할 떄와 힘을 뺴야 할 떄. 너무나 힘을 빡빡 주고 열심히 산 것 같습니다. 조금 쉬어가며 해도 됐을텐데 성실이라는 이름으로 엄청 열심히 달렸습니다. 죽은 똥, 살 똥. 그러니 어깨고 어디고 근육이 잔뜩 뭉쳐 있지요. 이제는 힘 좀 뺴고 살아 보려고요."

내가 참 자주 듣는 소리 중에 하나가 힘 좀 빼라는 말이다.

참 튼튼해서 잘 아프지 않는 내가 항상 아픈 시기가 있다.

연말이 지나고 새롭게 시작하는 한해의 처음은 늘 감기몸살, 근육통 등으로 출근하지 못할 정도로 앓아 눕는다.

아마도 긴장하고 마무리 지은 뒤 잠시 잠깐 풀려진 긴장 탓인 것 같다.

나와 너무 닮은 모습을 말하고 있어서 피식 웃음도 났다.

그만 열심히 하고 싶은데,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욕심도 많고, 나를 매번 채찍질하게 된다.

올해는 정말 힘을 좀 빼보자. 그만 열심히 하자. ㅎ

이렇게 다짐을 해보지만... 자신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내게 주어진 많은 역할들을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고 싶지 않아서,

잘하고 싶은 마음에,

내가 선택한 것들이기에...

책을 덮으면서 얼마 전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2016년)'의 대사가 문득 떠올랐다.

(16화 중에서) "젊은 날은 그렇게 모든 걸 하나라도 더 가지라고, 놓치지 말라고 악착같이 살라고 내 어머니의 등을 떠밀더니 이제 늙어서는 자신이 부여잡은 모든 걸, 그게 목숨보다 귀한 자식이라고 해도 결국에는 다 놓고 가라고. 미련도 기대도 다 놓고 훌훌가라고 등을 떠밀고 있으니 인생은 그들에게 얼마나 잔인한가"

드라마 장면을 되감으며 여러번 듣고, 또 들었다. 너무 공감이 되어서..

배우 정애리는 우리 삶의 무게들을 가볍게 비워내는 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빈 손으로 와서 결국에는 빈 손으로 가는 것임을...

다들 알고 있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살다보면 어느 순간 내 몸에 힘이 바짝 들어가고, 손은 꽉 쥐어져 있다.

그런 순간마다 다시 한번씩 읽고 싶은 책을 만난 것 같다.

잠시 앉아서 한 편, 한 편의 이야기들을 읽으며

내 마음을 편안히 내려놓으며 위로를 받는 것 같다.

올해 내 삶의 자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책을 놓아 두고 자주 펼쳐보아야겠다.

내 삶을 잘 살아내기 위해서 말이다.

아마도 많은 연습이 필요할 것 같지만,

열심으로만 채워진 삶이 아닌 공백이 있는 삶으로 살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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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괜찮아요, 천국이 말했다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살림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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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그 유한함 속에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의 연결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임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이다.

사람과의 관계

에서 상처받고 힘들어도 끊임없이 우리는 누군가와 관계를 맺기를 바란다.

과거의 상처로 인해 누군가와 관계 맺는 것을 피하고 고립되어 있는 사람도

그 내면을 파고들어가면 소속되고 연결되고 싶은 욕구들이 나타난다.

그리고 치유는 새로운 연결, 새로운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소설 속 애니는 어려서부터 아빠로부터의 상처, 우연한 사고로 인한 죄책감, 사고로 인한 신체적이고 심리적인 상처, 첫 결혼생활의 실패로 인한 상처, 새로운 사람과의 행복한 생활을 시작하지만 신혼여행에서 생긴 사고로 인한 상실 등 여러 가지 부정적인 상황들이 그의 인생속에 안고 살아간다. 그러다 사고로 인해 천국이라는 문 앞에서 다섯 사람을 만나면서 사건들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자신의 인생에서 만난 사람들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우리의 삶에는 죽음이라는 것이 함께 존재하며,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순간보다 죽음이라는 순간 앞에서

살아가고 있음에 대한 의미와 소중함을 더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산다는 그 자체보다 우리에게 다가올 죽음에 대해서도 준비하고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어쩌면 인생의 모든 사건과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에게 생긴 사고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위로 혹은 치유의 시작이 될 수도 있고,

그 위로와 치유들이 얽혀있으나 결국에는 하나로 내 인생을 풍성하게 만들어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만,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순간 우리는 지금의 상처에만 매여서

그 안을 보지 못하고, 그 순간의 사람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p. 105) "난 너 때문에 울었지. 넌 나 때문에 우는구나"

(p. 176) "우린 치유하기보다 상처를 안고 있으니까. 다친 날은 정확히 기억해도 상처가 아문 날은 누가 기억하겠니?"

우리는 내 상처만 보여서 상처의 아픔만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면 그 상처와 아픔들이 조금씩 아물어가고 있는 과정이 우리네 인생일 것이다.

그런데 상처와 아픔에만 집착하다보니 여전히 아프고 또 다른 아픔만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일 수도 있다.

어디에 내 시선과 마음이 집중해야 하는 것일까?

상처 받고 아파하고 있는 마음일까?

아니면 그 마음이 누군가를 만나, 어떠한 다른 사건 속에서 아물어가고 있는 과정일까?

선택은 오롯이 본인의 몫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결국 내가 그렇게 살아가고자하는 의지이고 노력이지 않을까 싶다.

동일한 사건도 바라보는 시각, 그리고 그 사건을 대처하는 나의 자세와 마음가짐에 따라서

받아들여지는 모습이 현저하게 다르게 나타난다.

결국 우리의 인생 속에 발생하는 사건들도,

그리고 내가 만나는 사람들도

내가 바라보고 생각하고 대하는 자세에 따라서 내 인생의 모습이 많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p. 211) "네가 네 자신과 화해해야만 평온해질거야"

그러니 우리는 모든 상황들 속에 진짜 나를 먼저 보고 돌봐주어야 한다.

그래야 내 인생의 방향이 보다 좋은 생각과 만남들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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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리마스터판)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은희경 지음 / 창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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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의 단편소설로 이루어진 은희경 작가의 소설집이다.

'새의 선물'을 읽은 후 은희경 작가의 글이라면 기대를 가지고 책을 펼치게 된다.

각 글들의 스토리들을 따라가다보면 순간 멈칫 하면서 눈길을 멈추게 되는 문장들이 있다.

그리고 글의 마지막을 읽고 다른 글로 넘어갈 때면 잠시 책을 덮고 장면들을 떠올려보게 된다.

장면들에서 나타난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되돌아보게 된다.

은희경 작가 글이 매력적인 이유가 여기 있지 않을까 싶다.

하나의 문장이 남기는 여운,

하나의 글이 끝난 이후 바로 다음으로 넘어갈 수 없게 사람의 마음은 흔들어 놓는 힘.

아마도 인물과 장면에 대한 묘사,

그리고 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을 바라보는 따뜻하고 깊이 있는 시선에서 나올 수 있는 것 같다.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중에서..

(p. 21) "나는 무엇을 간절히 원하기 이전에 내가 그것을 원해도 되는지 먼저 생각해야 하는 조건에서 살아왔을 뿐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 소극적이지 않았다"

(p. 47-48) "B는 자신의 태어남에 대해 농담을 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너하고 난 달라. 네 아버지는 너를 얻기 위해 잠시 커튼 뒤로 들어갔지만 우리 아버지는 나를 원한 적이 없어"

어려서부터 뚱뚱한 체중을 가지고 살아온 '나'

불필요한 출생이었음을, 부모로부터도 어쩔 수 없이 태어난 존재라고 가슴 깊이 박아놓고 살아온 '나'

내가 무엇을 원하기 전에 원해도 되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조건에서 살아온 '나'

사람이 태어나 처음 마주하는 사람이 부모이고, 처음 만나는 공동체가 가족이다.

기본적인 애정, 인정 등의 욕구가 충족되지 못하고 결핍으로부터 시작된 삶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성장하게 될까?

참 슬프고 비극적이다.

누구에게나 자라온 환경, 조건들이 다르다.

누군가는 말한다. '환경이 그러할지라도 본인이 똑바로 하면 되지'

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무례하고 비인간적인 말인가 싶다.

어린시절의 결핍은 성장하는 과정에 그 무엇으로도 채워질 수 없는 것 같다.

다만, 결핍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어야 한다.

인정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한 '나'는 결국 다이어트에 성공하지만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가서 허겁지겁 음식을 먹는다

과연 정말 배고 고파서 그렇게 허겁지겁 음식을 먹었을까?

내 안의 결핍, 구멍난 부분을 무엇으로라도 채우고 싶은 마음은 아니었을까?

내가 만나고 있는 주민들, 청년들은 구멍이 참 많다.

과거부터 깊숙하게 자리하고 있는 구멍이 채워지지 못하고 살고 있다.

누군가는 무기력으로, 다른 누군가는 분노와 우울로, 또 다른 누군가는 약물이나 알콜에 의지해서...

그렇게 살고 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결핍의 책임을 개인들에게 지우기에는 너무 잔인한 것이 아닐까?

<지도 중독> 중에서..

(p. 144) "인간들은 다르다는 것에 불안을 느끼고 자기와 다른 인간을 배척하게 돼 있어. 하지만 야생에서는 달라야만 서로 존중을 받지. 거기에서는 다르다는 것이 살아남는 방법이야. 사는 곳도 다르고 먹이도 다르고 천적도 다르고, 서로 다른 존재들만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거야"

(p. 145) "올바른 길이란 건 없어. 인간은 그저 찾아다녀야 할 뿐이야"

아무 의미도, 생각도 가지고 있지 않던 지도라는 물건을 새삼스레 생각헤보게 된다.

방향감각이 무딘 나로써는 지도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다.

하지만 산행을 하는 과정에 지도를 붙들고 집착하는 선배의 모습은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지도를 인생의 지표라고 생각해보니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보인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찾을 때 우리는 지도를 찾는다.

어떻게 가면 더 쉬운 길로, 빠른 길로 갈 수 있는지 따져본다.

인생도 이런 답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인생의 길은 답이 없다.

이 길로 가다가도 저 길로 이어지기도 하고, 저 길로 가다가도 문득 아니다 싶으면 뒤돌아가기도 하고...

그렇게 찾아다녀야 할 뿐인 것을...

그렇기에 누구의 인생이 옳고, 부럽고, 또 누구의 인생은 비난받고 책망받아야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지금도 길을 찾아다니고 있는 것이기에.

<유리 가가린의 푸른별> 중에서..

(p. 202) "세상 사는 일에 익숙해진다는 것이 어쩌면 틀을 갖는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일종의 삶의 매뉴얼 말이다. 아무리 복잡한 일도 틀에 집어 넣으면 단순해져버린다. ... 그것을 경륜이라고 좋게 보든 보수화되었다고 비난하든 상관없다. 분명한 것은 세상일이 놀랍지 않게 생각되면서 동시에 어느 정도 무기력해진다는 사실이다....두려움도 없지만 설렘 또한 없다. 행복하지 않은 것도 아니며 또한 행복한 것도 아니다"

(p. 209) "나는 젊은이들을 그리 부러워하지 않는다..... 젊음으로 되돌아가서 그 힘든 과정을 되풀이해 다시 이곳으로 오는 것보다는 이 지점에서 내가 가진 것을 충분히 누리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p. 215) "한번쯤은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봐야 하는 거 아냐? 아직 그 정도 시간은 남아 있겠지?"

<지도중독>은 살아가는 것은 끊임없이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유리 가가린의 푸른별>은 시간이 지남에따라 익숙해지고 무뎌지는 삶의 모습에 대해서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어느 과정을 내가 지나고 있든지 그 안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인 것 같다.

인생을 살아가는 하나의 과정에서 내가 만족하고 감사한다면,

나의 결핍을 직시하고 보듬어 안을 수 있는 힘이 있다면,

무뎌진 삶이라고 해도 행복과 설렘의 작은 순간들을 만들고 느낄 수 있다면

그래도 괜찮은 인생이 아닐까 싶다.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독한 모습이 너무나 섬세하게 그려져서 아프지만

마지막 장면마다 남겨준 여운은....

그래도 살아가고 있는 우리.

그래서 어떠한 모습으로든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삶이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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