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안부 - 쉽게 미워하고 오래 사랑하는 계절에게
백가희 지음 / 클랩북스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서협찬><서평단>
📚도서명 : 여름, 안부
✏️저자명 : 백가희
🏢출판사 : 클랩북스 @clabbooks
📅출간일 : 2026년 08월 30일

덥고 습하고 끈적해서 피하고 싶은 계절.
그런데 작가는 그런 여름 안에서 사랑과 믿음,
다정함을 발견한다.

책을 읽는 동안 자꾸 ‘사랑’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연인을 사랑하는 마음만이 아니었다.
가족을 걱정하는 마음,
함께 살아가는 존재를 바라보는 마음,
좋아하는 음악과 야구를 오래 아끼는 마음,
그리고 별것 없어 보이는 평범한 하루를
다정하게 둘러보는 마음까지.

책장을 넘길수록 사랑이라는 말의 범위가 조금씩 넓어졌다.

우리는 행복한 순간에도 언젠가 이 행복을 잃을까 봐 걱정하고,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미리 불안해하느라 지금을 놓치곤 한다.

하지만 어쩌면 중요한 건 완벽한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 아니라,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과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충분히 바라보고 사랑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특별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특별해지는 것들.

무심히 지나쳤을 표정과 말투가 기억에 남고, 평범했던 장소와
계절이 마음속에 오래 머무는 것도 결국 그곳에 내가 마음을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야구 이야기에서 얻은 위로도 좋았다.

오늘 실수했다고 모든 경기가 끝나는 것은 아니고, 오늘 졌다고 영원히 지는 것도 아니다. 야구에 다음 타석과 다음 경기가 있듯 우리에게도 다시 시작할 다음 장면이 있다.

넘어졌다면 다시 일어나면 되고, 조금 늦었다면 지금부터 시작하면 된다.

책 속에는 서로 너무 다른 사람들이 한 빌라에 포개져 살아가는 이야기도 나온다.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쉽게 단정하지 않는 마음.
보이지 않는다고 없다고 여기지 않는 마음.
내가 모르는 그 사람의 사정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한 번 더 생각해보는 마음.

그런 태도 역시 사랑과 닮아 있었다.

사랑은 생각보다 편한 감정이 아니다. 때로는 예민하고 귀찮고 어렵다. 누군가를 제대로 사랑하려면 내가 가진 편견도 들여다봐야 하고, 그 사람의 삶을 조금 더 오래 바라봐야 한다.

그래서 사랑하려면 조금 부지런해져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여름이 아무리 덥고 고되어도 그 계절 안에서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 누군가와 함께 걷고, 좋아하는 사람을 기다리고, 멀리 있는 누군가의 여름이 조금 덜 고되기를 바라는 마음.

그런 마음들이 결국 우리를 다음 계절까지 데려가는 것 아닐까.

늦게 좋아하게 됐다면 지금부터 실컷 좋아하면 되고,
이제야 해보고 싶은 일이 생겼다면 지금 시작하면 된다.

아직 우리에게는 잡아볼 여름도,
다가올 계절도 남아 있으니까.

@10000_neungi
서평단 모집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어요.

#여름안부 #백가희 #에세이추천 #클랩북스 #책스타그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생가
신재민 지음 / 북다 / 202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13회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대상 수상작이라는 말에 궁금했던 신재민 작가의 『생가』.

제목만 봤을 때는 조금 낯설기도 했고, 처음에는 전 대통령의 생가를 복원하면서 벌어지는 미스터리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읽을수록 이야기는 생각보다 훨씬 깊고 어두운 곳으로 들어간다.

한옥과 도편수, 상량문, 수목 신앙 같은 한국적인 소재에 오컬트와 미스터리를 섞어 놓았는데, 특히 ‘집’이라는 익숙하고 안전해야 할 공간을 공포의 대상으로 바꿔 놓은 점이 인상적이었다.

전 대통령 이운암의 생가가 화재로 소실된다.

그리고 과거 그 집을 지었던 도편수 지범근은 죽기 전 이상한 말을 남긴다.

그 집을 다시 지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럼에도 이운암의 손자 건승은 범근의 친아들이자 도편수인 지재헌에게 생가 복원을 부탁한다.

아버지와 오랜 시간 단절되어 있었고 깊은 원망까지 품고 있던 재헌은 오히려 아버지가 그토록 막으려 했던 생가 복원을 받아들인다.

그렇게 생가를 살펴보기 시작한 재헌은 하나둘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집은 단순히 건물 하나만 보고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위치부터 건물 사이의 조화와 균형, 사람의 동선까지 모든 것이 맞물려야 하는데 이곳은 어딘가 묘하게 어긋나 있다.

마치 집 전체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것처럼.

게다가 생가를 조사할수록 아버지가 남긴 경고 역시 단순한 고집이나 미신으로 치부하기 어려워진다.

한편 대형 트럭 기사 시록에게도 사정이 있다.

어머니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통화했던 사람을 계기로, 평생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자신의 아버지를 찾아 나선 시록.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던 재헌과 시록의 이야기는 점차 한곳을 향하기 시작하고, 두 사람은 생가에 감춰진 과거에 조금씩 가까워진다.

도대체 이 집에는 무엇이 있었기에 지범근은 죽기 직전까지 복원을 막으려 했던 걸까.

그리고 왜 다시 지어서는 안 되는 걸까.

『생가』는 그 질문을 따라가는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생가』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한국적인 소재를 공포와 연결하는 방식이었다.

도편수와 한옥은 물론이고 상량문을 비롯한 전통적인 요소들이 이야기 곳곳에 등장한다.

특히 집의 위치와 구조, 건물끼리 이루는 균형과 동선까지 하나하나 의미가 있다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평범하게만 보이던 집도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여기에 민간신앙과 오컬트적인 요소가 더해진다.

오래된 한옥과 나무, 상량문처럼 우리에게 어느 정도 익숙한 것들이 등장하는데, 작가는 바로 그 익숙함에 조금씩 균열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처음부터 대놓고 무섭다기보다는

‘뭔가 이상한데?’

하는 기분이 서서히 쌓여간다.

익숙한 공간인데 어딘가 잘못된 것 같고, 분명 집인데 편안하기보다는 안쪽에 무엇인가 숨겨져 있을 것 같은 느낌.

이런 종류의 서늘함을 좋아해서 개인적으로는 꽤 재미있었다.

『생가』는 귀신이 갑자기 튀어나와 깜짝 놀라게 만드는 방식의 공포보다는 알면 알수록 찜찜하고 서늘해지는 이야기에 가까웠다.

처음에는 불타버린 생가와 아버지가 남긴 수상한 유언이 궁금해서 읽게 되지만, 집의 비밀을 하나씩 알아갈수록 그 안에 얽힌 사람들의 과거와 욕망까지 함께 드러난다.

그래서 읽다 보면 단순히 ‘이 집에 무엇이 있는가’보다 ‘사람들은 왜 이 집을 다시 세우려고 하는가’라는 쪽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간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제목과 소재가 끝까지 맞물린다는 점이었다.

집을 다시 짓는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되살리는 일일까.

건물만 예전 모습으로 되돌린다고 해서 정말 과거를 복원할 수 있는 걸까. 오히려 감춰 두었던 기억이나 욕망까지 함께 되살아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옥과 도편수, 민간신앙이라는 한국적인 소재에 미스터리와 오컬트를 더한 작품을 찾는다면 한 번 읽어볼 만한 소설이다.

특히 서양식 오컬트와는 또 다른, 우리에게 익숙한 공간과 믿음에서 비롯되는 공포를 좋아한다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 작품은 무엇보다 결말을 모르고 읽는 편이 좋다.

생가가 품고 있는 비밀과 인물들의 관계를 하나씩 알아가는 과정 자체가 이 소설의 재미이기 때문이다.

@rinob_ooks 리노의 책들 서평단 모집을 통해 북다 출판서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어요.

#생가 #신재민 #북다 #한국소설 #책추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무지개다리를 건넌 강아지
신도 후유키 지음, 장하나 옮김 / 문예춘추사 / 202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야기의 중심에는 미나미노와 그의 반려견 파스텔이 있다.

바쁘게 일하며 살아가던 미나미노의 일상에 파스텔이 들어왔다. 처음에는 그저 어쩔 수 없이 맡게 된 한 마리의 강아지였지만, 어느새 파스텔은 미나미노의 하루를 움직이는 존재가 된다.

밥을 챙겨주고 산책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존재를 바라보는 것.

반려동물과 함께 산다는 건 어쩌면 이런 평범한 일들이 하루하루 쌓여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그 시간이 계속될 것처럼 믿게 된다.

하지만 파스텔에게 병이 찾아온다.

악성 림프종이라는 진단을 받은 뒤, 미나미노는 선택의 순간에 놓인다. 치료를 계속하면 조금 더 함께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파스텔이 힘들어질 수 있고, 치료를 멈추면 고통은 줄일 수 있어도 이별의 순간은 더 빨리 찾아올 수 있다.

여기서부터 마음이 참 무거웠다.

‘하루라도 더 같이 있고 싶다’는 마음과
‘내 욕심 때문에 힘들게 하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

둘 다 사랑해서 생기는 마음이라 어느 쪽이 옳다고 쉽게 말하기 어렵다.

미나미노 역시 계속 흔들린다. 파스텔이 조금이라도 먹으면 기뻐하고, 잠깐이라도 걸으면 희망을 품는다. 상태가 좋아지면 혹시 괜찮아지는 건 아닐까 기대하고, 다시 나빠지면 자신이 내린 선택을 후회한다.

특히 파스텔이 아픈 뒤에는 평소 아무렇지 않았던 행동 하나하나가 소중해진다.

밥을 먹는 것.
걸어가는 것.
꼬리를 흔드는 것.
옆에서 편안하게 잠드는 것.

평소에는 그냥 지나쳤던 모습들이 아프고 나서는 하나하나 다 귀하게 느껴진다.

결국 파스텔은 미나미노의 곁을 떠난다.

그리고 미나미노에게 남은 건 파스텔이 없는 일상이다.

늘 함께했던 존재 하나가 사라졌을 뿐인데 집도, 산책길도, 하루의 시간도 전부 달라져 버린다. 죽음은 한순간이지만 부재는 그다음 날에도, 또 그다음 날에도 계속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부분이 특히 먹먹했다.

반려동물과 살다 보면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나보다 훨씬 짧은 시간을 사는 존재와 함께한다는 건, 언젠가 반드시 이별해야 한다는 사실까지도 함께 받아들이는 일이라는 것.

생각만 해도 겁이 난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동안 여러 번 마음이 철렁했다.

언젠가 헤어질 걸 알면서도 함께 밥을 먹고, 산책하고, 장난치고, 이름을 부르고, 서로를 기다리는 그 모든 시간이 이미 충분히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파스텔은 떠났지만 함께했던 시간은 미나미노 안에 그대로 남아 있다.

읽는 동안에는 마음이 많이 아팠는데, 마지막까지 읽고 나니 이상하게 따뜻함이 남았다.

사랑하면 언젠가는 이별한다.
하지만 이별이 그 사랑까지 없었던 일로 만들지는 않는다.

그리고 다시 행복해지는 것 역시 먼저 떠난 존재를 잊는 일은 아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본 사람이라면 아마 이 이야기를 조금 더 오래 마음에 품게 되지 않을까 싶다.


문예춘추사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어요.

#무지개다리를건넌강아지 #신도후유키 #문예춘추사 #일본소설 #펫로스증후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블랙 푸들 ㅣ 래빗홀 YA
우신영 지음 / 래빗홀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처음 《블랙 푸들》이라는 제목을 봤을 때는 강아지가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는 이야기인가 싶었다. 하지만 읽고 나니 이 책은 피아노, 친구, 질투, 경쟁, 중독, 그리고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과정까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청소년 성장소설이었다.

주인공 표우수에게는 탁수현이라는 친구가 있다. 수현은 공부도 잘하고 피아노도 잘한다. 가까운 친구이지만 우수에게는 자꾸 자신과 비교하게 되는 존재이기도 하다.

좋아하면서도 질투하고, 부러워하면서도 괜히 미워지는 마음.

우수는 수현을 바라보며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친구보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에 흔들리기도 한다.

그런 우수 앞에 어느 날 블랙 푸들의 모습을 한 메피스토가 나타난다. 그리고 초록색 알약 하나를 건넨다. 그 약을 먹으면 자신이 질투하는 사람의 재능과 매력, 능력을 가져올 수 있다고 한다.

생각만 해도 위험하지만 굉장히 유혹적인 제안이다.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의 능력을 그대로 가질 수 있다면.
늘 나를 비교하게 만들던 사람을 단숨에 따라잡을 수 있다면.
남들보다 앞설 수 있다면.

우수는 결국 그 유혹에 흔들린다.

하지만 이 계약에는 조건이 있다. 한번 시작하면 멈출 수 없다는 것.

처음에는 그것이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 같다. 집중도 잘되고, 능력도 좋아지고, 내가 원하던 모습에 가까워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계속 의존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그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나를 끌고 가게 된다.

잘하고 싶어서, 인정받고 싶어서, 남보다 앞서고 싶어서 계속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이 왜 달리고 있는지도 잊어버린다.

그때 필요한 것은 더 빨리 달리는 힘이 아니라 멈출 수 있는 용기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부러워하고 질투하는 마음.
잘해야 인정받을 것 같은 불안.
남보다 뒤처질까 봐 끊임없이 자신을 몰아붙이는 마음.

그런 감정을 무조건 없애야 할 것으로 밀어내는 대신, 우수는 조금씩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리고 작품 후반에 등장하는 ‘오각형’의 이미지는 이 이야기를 잘 보여준다.

혼자서 완벽한 오각형을 만들어 내기는 어렵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하면 하나의 오각형을 만들 수 있다.

혼자 완벽해지는 것은 어렵지만, 관계 속에서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며 살아가는 것은 가능하다.

우리는 친구를 질투하기도 하고, 누군가의 재능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런 부족함 때문에 관계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서로의 결핍을 알고, 손을 내밀고, 함께 바라볼 무언가를 찾으면서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어 간다.

청소년 성장소설이지만 어른이 읽어도 충분히 공감할 만한 이야기였다.

경쟁과 비교, 친구 사이의 미묘한 감정, 약물과 중독, 성공에 대한 욕망까지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잘해야 한다’는 마음에 지친 사람에게 더 빨리 달리는 법이 아니라, 잠시 멈춰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는 법을 이야기해 주는 소설이었다.

래빗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어요.

#블랙푸들 #우신영 #래빗홀 #소설추천 #책스타그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기억의 무늬
백희성 지음 / 북로망스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억의 무늬》는 제목처럼 한 사람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흔적을 따라가는 이야기다.

주인공 카미는 어린 시절의 사고 이후 사람의 얼굴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안면인식장애를 안고 살아간다. 카미에게 어린 시절은 단순히 흐릿한 정도가 아니라 기억 곳곳이 끊겨 있고 왜곡되어 있다. 특히 부모와 관련된 기억은 오랫동안 카미의 삶 한가운데 남아 있는 커다란 의문이다.

카미가 어렴풋이 기억하는 것은 어린 시절 집에서 벌어진 어떤 사건과 누군가의 모습, 그리고 자신에게 강렬하게 남아 있는 몇 가지 감각뿐이다. 사람의 얼굴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냄새, 천의 촉감, 가구의 표면, 소리 같은 감각적 기억은 유난히 선명하다.

그래서 카미는 오래전 자신의 가족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어린 시절 자신이 보았던 장면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아내려 한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아주 독특한 오래된 가구가 등장한다. 카미는 이 가구가 자신의 과거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고, 주변 사람들과 함께 가구의 출처와 제작 흔적을 하나씩 추적해 나가기 시작한다.

평범해 보였던 가구는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이상한 점이 많다. 여러 부분이 분리되거나 다시 결합될 수 있게 만들어져 있고, 곳곳에는 수리 흔적과 오래된 천, 금속 부품과 연결 장치가 숨어 있다. 가구 하나를 살펴보는 과정이 마치 오래된 기억의 조각을 하나씩 맞춰가는 일처럼 느껴져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이 소설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카미의 기억 방식이다. 카미의 과거는 얼굴이나 장면 전체로 남아 있지 않다. 대신 옷의 감촉, 냄새, 목소리, 공간의 분위기처럼 아주 작은 감각들로 남아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 보면 ‘기억한다는 것은 꼭 얼굴이나 장면을 선명하게 떠올리는 일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기억은 냄새로 남고, 어떤 기억은 촉감으로 남으며, 또 어떤 기억은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방식으로 남기도 한다.

가구를 조사하는 동안 카미는 오래된 천과 커튼, 목재의 질감, 익숙한 냄새를 접하면서 자신도 설명하기 어려운 기억들을 조금씩 떠올린다. 특히 어떤 향기는 머리로 떠올리는 기억이라기보다 몸이 먼저 기억해내는 감각처럼 느껴졌다.

이런 부분 때문에 《기억의 무늬》는 단순한 미스터리라기보다 기억과 감각, 가족과 상실을 함께 다루는 감성 미스터리에 가깝게 느껴졌다.

초반에는 가구를 둘러싼 수수께끼가 중심이라 비교적 가볍게 읽히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감정의 무게가 조금씩 깊어진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무겁거나 답답하지는 않다. 미스터리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인물들의 감정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된다.

특히 상처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며 삶의 일부가 되어간다는 시선이 인상적이었다. 오래된 상처도 결국 새살과 함께 몸의 일부가 되듯, 기억 역시 사라지기보다는 다른 형태로 남아 사람을 이루는 한 조각이 되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오래된 물건 하나에 누군가의 기억과 시간, 그리고 감정이 스며 있을 수 있다는 설정이 참 좋았다. 물건은 말이 없지만 그 안에 남아 있는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사람의 이야기에 도착하게 된다는 점도 마음에 남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카미의 곁에 함부로 몰아붙이지 않고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도 좋았다.

빠른 전개나 강한 반전을 기대하기보다는, 잔잔한 미스터리와 가족 이야기, 기억에 관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 맞을 것 같은 책이다.

한줄평 : 사라진 기억보다 몸에 남은 흔적을 따라, 오래된 상처와 가족의 비밀을 더듬어가는 감성 미스터리.

북로망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어요.

#기억의무늬 #백희성 #북로망스 #가족미스터리소설 #책추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