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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무늬
백희성 지음 / 북로망스 / 2026년 8월
평점 :
《기억의 무늬》는 제목처럼 한 사람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흔적을 따라가는 이야기다.
주인공 카미는 어린 시절의 사고 이후 사람의 얼굴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안면인식장애를 안고 살아간다. 카미에게 어린 시절은 단순히 흐릿한 정도가 아니라 기억 곳곳이 끊겨 있고 왜곡되어 있다. 특히 부모와 관련된 기억은 오랫동안 카미의 삶 한가운데 남아 있는 커다란 의문이다.
카미가 어렴풋이 기억하는 것은 어린 시절 집에서 벌어진 어떤 사건과 누군가의 모습, 그리고 자신에게 강렬하게 남아 있는 몇 가지 감각뿐이다. 사람의 얼굴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냄새, 천의 촉감, 가구의 표면, 소리 같은 감각적 기억은 유난히 선명하다.
그래서 카미는 오래전 자신의 가족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어린 시절 자신이 보았던 장면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아내려 한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아주 독특한 오래된 가구가 등장한다. 카미는 이 가구가 자신의 과거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고, 주변 사람들과 함께 가구의 출처와 제작 흔적을 하나씩 추적해 나가기 시작한다.
평범해 보였던 가구는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이상한 점이 많다. 여러 부분이 분리되거나 다시 결합될 수 있게 만들어져 있고, 곳곳에는 수리 흔적과 오래된 천, 금속 부품과 연결 장치가 숨어 있다. 가구 하나를 살펴보는 과정이 마치 오래된 기억의 조각을 하나씩 맞춰가는 일처럼 느껴져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이 소설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카미의 기억 방식이다. 카미의 과거는 얼굴이나 장면 전체로 남아 있지 않다. 대신 옷의 감촉, 냄새, 목소리, 공간의 분위기처럼 아주 작은 감각들로 남아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 보면 ‘기억한다는 것은 꼭 얼굴이나 장면을 선명하게 떠올리는 일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기억은 냄새로 남고, 어떤 기억은 촉감으로 남으며, 또 어떤 기억은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방식으로 남기도 한다.
가구를 조사하는 동안 카미는 오래된 천과 커튼, 목재의 질감, 익숙한 냄새를 접하면서 자신도 설명하기 어려운 기억들을 조금씩 떠올린다. 특히 어떤 향기는 머리로 떠올리는 기억이라기보다 몸이 먼저 기억해내는 감각처럼 느껴졌다.
이런 부분 때문에 《기억의 무늬》는 단순한 미스터리라기보다 기억과 감각, 가족과 상실을 함께 다루는 감성 미스터리에 가깝게 느껴졌다.
초반에는 가구를 둘러싼 수수께끼가 중심이라 비교적 가볍게 읽히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감정의 무게가 조금씩 깊어진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무겁거나 답답하지는 않다. 미스터리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인물들의 감정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된다.
특히 상처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며 삶의 일부가 되어간다는 시선이 인상적이었다. 오래된 상처도 결국 새살과 함께 몸의 일부가 되듯, 기억 역시 사라지기보다는 다른 형태로 남아 사람을 이루는 한 조각이 되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오래된 물건 하나에 누군가의 기억과 시간, 그리고 감정이 스며 있을 수 있다는 설정이 참 좋았다. 물건은 말이 없지만 그 안에 남아 있는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사람의 이야기에 도착하게 된다는 점도 마음에 남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카미의 곁에 함부로 몰아붙이지 않고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도 좋았다.
빠른 전개나 강한 반전을 기대하기보다는, 잔잔한 미스터리와 가족 이야기, 기억에 관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 맞을 것 같은 책이다.
한줄평 : 사라진 기억보다 몸에 남은 흔적을 따라, 오래된 상처와 가족의 비밀을 더듬어가는 감성 미스터리.
북로망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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