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이라 불린 남자 스토리콜렉터 58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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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를 너무나 재미있게 읽어서 언제쯤 후속이 나올려나 목빠지게 기다렸더니 이렇게 반갑게 떡하니 '괴물이라 불린 남자'가 나왔다.  

(사실 어떤 분도 그렇게 이야기했지만 제목이 과연 어울리나? 하는 생각이 들긴 했다. 차라리 원작처럼 더 라스트 마일이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뭐 어떠리, 표지는 좋았다.)


전작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에서 정말이지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에이머스 데커(미식축구 사고로 인해 모든 것을 사진처럼 기억하는 남자)는 FBI 미제 수사팀에 합류하기 위해 가는 도중 라디오에서 한때 미식축구계의 '괴물'이라 불렸던 사형수 멜빈 마스의 사연을 듣게 된다.

전도유망한 청년 멜빈 마스는 하루아침에 부모님을 살해했다는 죄명으로 사형수가 되어 20년을 갇혀있다가 사형길로 가는 길에 갑작스레 사형이 중지된다. 누군가가 멜빈 마스의 부모님을 살해했다고 자백한 것이다.

자신의 과거와 비슷한 사연에 데커는 이 사건을 맡기로 결정한다.

이유는 왜? 였다.

왜 사형집행 직전에 자신이 진짜 살인범이라고 고백했을까?

어떻게 생각해보면 그냥 갑자기 살아난 멜빈 마스 입장에서는 그저 자신이 죄가 없어졌고 감옥에서 나갈 수 있으면 그 어떤 것도 문제가 안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데커는 모든 것이 '의문' 투성이였고, '진실'을 알고 싶었다.

'진실'에 다가갈수록 더욱더 짙은 안개 속을 헤매이는 것 같았고, 마스는 자신의 부모(백인 아버지와 흑인 어머니)에 대해 그 어떠한 것도 알지 못했다는 사실에 직면한다. (감추기로 한 사람에 대해서는 알기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얼마나 잘 감추냐에 따라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진실은 드러난다.

20년의 시간만큼 깊은 진실이. - 얼마나 추악한 진실인가. '악'은 선천적인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람이 사람을 '증오'하고 '사랑'하는 일은 그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갈리는 것 같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듯이.)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일로 사형수가 되어 감옥에서 20년 동안 살았던 멜빈 마스를 보면서 많은 생각들이 교차되었다.

오래전 보았던 '일급살인'이라든지 아직도 독방에서 지내고 있는 '양심수'의 일이라든지.

-공지영씨의 인간에 대한 예의라는 책에서 이런 구절이 나온다.

몇십년 동안 양심수로 좁은 독방에 갇혀있던 분이 늙고 병들어 겨우 감옥 밖에 나와서 자그마한 방을 구해 지내게 되었는데 며칠간 방안에서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 이유는 문을 여는 법을 몰라서였다. 항상 누군가가 문을 열어줘야만 밖으로 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과연 우리는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그것도 죄를 저질렀다면 죄값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죄로 그 긴 세월을 갇혀있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함 그 자체인 것이다.


"무고한데 억울하게 사형당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단 한 명도 너무 많죠. 그리고 분명히 한 명은 넘을테고."


그렇다. 무고하게 사형당한 사람은 단 한 명이라도 너무 많은 것이다.



같은 시기에 미식축구를 했던 두 사람(팀은 달랐지만) 마스와 데커.

데커는 내셔널 풋볼 리그 한 경기에서 사고로 인해 더이상 뛸 수 없었고, 마스는 살인범으로 감옥에 들어가 그 모든 것을 할 수 없었다.

마스가 데커에게 물었다.

"기분이 어땠어요? 그 구장을 걷는 기분. 8만 명이 관중석에 있는 걸 보는 기분. 세계 최고 선수들하고 경기하는 기분 말이에요."


감옥에 가지 않았더라면 최고의 선수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마스의 심정을 그 누가 알겠는가.

20년이 아니라 1년이라도 아니, 하루라도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있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살인'에 해당되는 시간일 것이다.

아무리 억만금을 가져다준다해도 시간을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남지 않은 멜빈 마스가 다시 굳건히 일어서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약속'을 지켰듯이.

그리고 데커가 그에게 말한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기억하고 있으면 결코 '사랑'은 빛바래지 않으니까.


"나는 사랑을 알고, 그게 사람들을 어떻게 바꿔놓을 수 있는지 알아요, 멜빈. 좋은 쪽으로도, 나쁜 쪽으로도 말이에요. 내 뇌가 얼마나 많이 변했든 그것만은 항상 기억할 겁니다." -p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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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줄에 걸린 소녀 밀레니엄 (문학동네) 4
다비드 라게르크란츠 지음, 임호경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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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줄에 걸린 소녀 - 반가운 그녀, 리스 베트를 다시 만나다.

 


처음 밀레니엄을 접한 것은 몇 년 전이었다. 시리즈라길래 한두 권씩 사두었는데-3부작이 완결이라고 생각해서 3부작까지 살 때까지 읽지 않고 있다가 모두 샀을 때 책을 펼쳤었다.
하루에 두 권씩 읽어 3일째 되는 날 3부까지 다 읽을 정도일만큼 흡입력이 남달랐다. (젊었을 적-10,20대-에는 책을 읽다가 밤을 새우는 경우도 허다했지만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할 일은 쌓여있고 체력은 바닥이라 밤을 새울 엄두를 내지 못한다. ㅜㅜ 마음은 굴뚝같지만 몇십 페이지 보다가 금세 잠이 몰려와 자버리고 마는 것을... 안타까울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레니엄 시리즈는 빠르게 읽히고 체력 따위 개나 줘버려,라는 마음이었다. ^^;;)
그만큼 스티고 라르손의 밀레니엄은 마치 리스 베트가 좋아하는 오토바이와 해커 실력처럼 독창적이고 스피드하며 강렬했다.

1부- 여자를 증오하는 남자들

[사실 초창기 밀레니엄 표지는 너무 고루했다. 책 표지만 본다면 무슨 오래된 동화책을 연상시킬 정도였다. 내용이 아니라 표지만으로 책을 선택한다면 과연 나는 망설임 없이 이 책을 선택할 수 있을는지 고민스럽다. 표지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던 탓인지 아니면 출판사가 바뀌어서 그런지-아님 출판사 이름이 바뀐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표지는 계속해서 바뀌었다. 위 사진은 초창기 밀레니엄 1부 표지 사진이다.]

밀레니엄의 독보적인 주인공 리스베트 살란 데드. 문신과 피어싱으로 무장한 그녀, 리스베트 살란 데는 작고 삐쩍 마른 몸매의 소유자이지만 깡만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사람이다. 게다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해커 실력과 체력. 온몸이 무기라고 할 수 있는 아웃사이더이다. 어릴 적 저지른 범죄?-사실 사회적 인식은 범죄지만 그녀는 오히려 자신이 한 일을 마땅히 해야 할 '정의'라고 생각한다-로 인해 보호관찰 대상자이다.
또 다른 밀레니엄의 주인공은 미카엘 블룸 크비스트이다. 잡지 '밀레니엄'의 기자 미카엘 블룸 크비스트는 사회고발 전문으로 정의롭고 불의에 대해서는 굽히지 않는 의지로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다. 단지 조금 많이 성관념이 개방적이랄까, 나로서는 뭐야? 할 정도로 자유분방하며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 안 말리는 자유로운? 사람이다. -물론 리스 베트도 비슷하다. 원래 스웨덴이라는 나라가 그런 분위기인지 모르지만, 우리나라보다는 훨씬 더 개방적이라는 것임은 틀림없는 듯. ^^;;;;

밀레니엄 1부는 스웨덴 기업 총수 헨리크 방에 이르는 16살에 실종된 손녀 하리 에트에 대해 조사해달라고 미카엘에게 부탁하며 시작된다. 미카엘은 조사하면 조사할수록 미궁에 빠지고 한 가문의 뒤틀린 역사를 알게 되면서 목숨까지도 위협받게 된다. 한편 리스 베트는 미카엘의 뒷조사를 의뢰받으며 미카엘을 알게 되며 흥미를 가지게 되며 미카엘과 하이에트 실종사건에 깊이 연루된다.
여하튼 이 책에서 둘은 운명적으로 만나고 서로에게 강렬하게 끌리며 연인도 아닌 친구도 아닌 관계로 서로 돕고 문제를 해결한다.

1부의 제목이 왜 '여성을 증오하는 남자들'인지를 깨달을 즈음 리스 베트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결국 허겁지겁 2부를 펼칠 수밖에.

2부 -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

[초창기 밀레니엄 2부는 휘발유 통과 성냥을 꿈꾼 소녀라는 부제 목을 달고 나왔다. 얼마나 직접적인 제목인가. ㅋㅋ 하지만 너무 긴 탓인지, 혹은 내 생각대로 너무 직설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인지 모르지만 나중에는 불을 가지고 노는 소녀라고 이름이 바뀌었다.]

드디어 리스 베트의 과거가 밝혀지는 2부는 처참했다. 리스 베트가 왜 그렇게 증오심을 내면에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녀의 아버지 살라 체코가 원인이었다. 그는 '악'의 근원과도 같은 존재이다. 그 살라 체코와 대항하는 리스 베트와 스웨덴 성매매 산업을 고발하는 기사를 준비하는 미카엘은 1년 가까이 연락 두절로 살다가 리스 베트가 납치되는 장면을 미카엘이 보면서 다시 인연이 시작된다. 게다가 연속되는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그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리스 베트가 지목되며 언론은 리스 베트를 발가벗긴다.(성에 개방적인 스웨덴도 역시나 가십에 열광하며 개인의 성적인 취향까지도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는 모습은 씁쓸했다. ㅡㅡ;;)
게다가 점점 드러나는 스웨덴 정부? 혹은 국정원? 같은 곳(책에서는 세포라 지칭한다)의 민낯은 사람이 사는 곳은 혹은 권력이 있는 곳은 지구 어디나 똑같은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하튼 2부의 끝은 리스 베트의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끝난다. 드라마나 연재되는 만화를 보았을 때 위기에서 끝나며 농락하는 것처럼-워낙 그런 식의 끝을 싫어해서 드라마도 만화도 완결이 되어야만 한꺼번에 보는 부류의 인간인 나로서는 바로 3부를 헐레벌떡 펼칠 수밖에 없었다.

3부 - 벌집을 발로 찬 소녀

[3부는 오르테가 아닌 뿔에서 나온 책을 샀다. 우선 좀 더 두껍고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리. 밀레니엄을 다 읽고서 영화화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서둘러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영화는 1부밖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결국 스웨덴에서 만들어진 3부작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하지만 둘 다 보면서 느낀 것은 원작을 따라가지 못했다는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원작 소설을 읽지 않았으면 이해 못 하는 장면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할리우드 영화는 너무나 매력적으로 캐릭터들을 만들어냈지만 2시간으로 채워질 수 없었던 것이 너무나 많았기에 결국 흥행에 실패하여 그 후속작이 만들어지지 않았고, 스웨덴 드라마는 오히려 거칠고 인간적? 이어서 마음에 들었지만 책 내용을 듬성듬성 빼먹어서 매력이 반감되어서 아쉬웠다. 하지만 원작 소설을 읽고서 영화나 드라마를 본다면 그래도 움직이는 리스 베트와 미카엘을 만날 수 있어 좋을 듯하다. ^^]

모든 것에는 끝이 있길 마련이다. 물론 그 끝의 대가가 상처뿐인 영광이라 할지라도.
예전에 터미네이터 2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었다.
한 사람이 있는데 엄청난 천재에 대단한 업적을 이룬 사람이라고 치자. 하지만 공적인 모습은 훌륭하고 타인의 존경을 받을 만 하지만 사적인 모습은 정반대라고 한다면-가족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약자를 업신여기며, 심지어는 살인까지도 서슴없이 한다면- 과연 이 사람에 대해서 어떠한 판단을 내려야 할까.(영화 속에서 터미네이터를 개발한-인공지능 로봇- 남자를 개발하기 전에 처단? 하려 하는 터미네이터와 주인공, 과연 이들의 행동은 옳은 것일까?)
좀 더 쉬운 예를 들자면 노벨 문학상의 유력한 우리나라 소설가가 있다고 치자. 하지만 그 소설가가 과거 친일파였다면 우리는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까. 과거를 묻어야 할까, 아니면 그는 노벨문학상을 받을 만한 인물이 아니라고 해야 할까.
(사실 나는 후자인데 중고등학교 때 국어시간에 친일파들의 소설이나 시를 배웠다는 것도 못마땅한 사람으로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는 생각을 용납할 수 없다.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다,라는 식의 변명도 구차하다. 그렇다면 수많은 독립운동가들과 그 가족들 그리고 3.1운동 속 시민들은 바보란 말인가.)
여하튼 사설이 길어졌지만 다시 책으로 돌아가면 스웨덴의 비밀 국정원인 세포는 수많은 악행에도 불구하고 리스 베트의 아버지 살라 체코를 보호해왔다. 미카엘은 그런 사실을 폭로하는 기사를 준비하며 병원에 입원한 리스 베트를 돕는다. 리스 베트는 '악'의 끝을 보기 위해 마지막 결전을 준비한다.
리스 베트의 복수전을 보면 앓던 이가 빠지는 것처럼 시원하다.
첩보와 액션이 멋지게 어우러진 작품이었다.

 

4부 - 거미줄에 걸린 소녀


3부가 끝인 줄 알았던 나로서는 원래 기획이 10부작이었다는 말에 설렘이 폭발했다.
하지만 3부를 탈고하고 책으로 나오기 6개월 전에 스티그 라르손은 심장마비로 사망하고 말았다.

'밀레니엄'의 주인공 미카엘 블룸 크비스트가 자신의 분신과도 같았던 스티그 라르손은 왜 그렇게 빨리 가버렸는지. 지금 생각해도 너무도 안타까운 죽음이다. (우리 모두 건강 챙깁시다. 그래야 책도 읽죠. ㅠㅠ)
게다가 더 안타까웠던 것은 갑작스러운 스티그 라르손의 죽음으로 인해-유서도 없었기에- 작가의 저작권 시비가 오랫동안 있었다. 스티그 라르손의 부모, 형제-그들과는 오랫동안 왕래가 없었다고 하던데-와 스티그 라르손의 오랜 연인(무려 30년 넘는 사실혼 관계였다. 혼인신고를 안한 이유는 스티그 라르손이 워낙 반파시즘 투쟁을 해서 반대파의 암살 위협을 받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혹여 자신으로 인해 피해당할까 봐 법적으로 혼인을 안 했다고 한다. ㅜㅜ) 에바는 법정싸움까지 갔었다. 지금은 어찌 된지는 모르겠지만 4부의 후기에서 보면 결국 부모, 형제에게로 저작권이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
여하튼 안타까움은 뒤로하고 스티그 라르손의 뒤를 이어 다비드 라메르 크란츠-스웨덴의 언론인이자 작가인 그는 범죄 사건 전문기자로 활약하다가 '나는 즐라탄이다'와 '앨런 튜링 최후의 방정식'으로 베스트셀러 작가로 자리매김했다-는 밀레니엄 4부 - 거미줄에 걸린 소녀를 집필했다.
나로서는 실로 몇 년 만에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게도 어제 헤어지고 만난 것처럼 반가웠고, 낯설지 않았다.
그만큼 다비드 아게르 크란츠는 전혀 손색없이 밀레니엄의 두 주인공 리스 베트와 미카엘을 창조해냈다고 본다.
이번 4부는 현대의 민감한 이슈-인간보다 뛰어난 인공지능-를 다루었다.  게다가 리스 베트가 증오하는 쌍둥이 자매 카밀라가 태풍처럼 등장한다.
읽는 내내 스피드한 스릴러 영화를 한편 보는 듯 손에 땀을 쥐는 박진감을 느꼈다.

스웨덴의 천재적인 컴퓨터공학자 프란스 발데르(일중독자로서 결국 아내는 이혼하고 아이를 보살피기에 적합하지 않다며 친권을 박탈당했다)는 독자적으로 개발한 기술을 도둑맞는다. 은둔자처럼 사는 리스 베트에게 도둑을 밝혀달라고 의뢰한다. 결국 프란스는 모든 지위와 명예, 직장을 때려치우고는 의붓아버지에게 학대받는다는 것을 알게 된 자신의 자폐아 아들을 보살피기 위해 아들을 데려와 함께 지내지만 프란스가 발명한 기술을 노리는 기업과 해커들에게 목숨을 위협받게 되며 모든 것(기업의 비윤리와 비리)을 밝히려 미카엘에게 도움을 청한다. 한편 미 국가 안보국(NSA)를 해킹한 리스 베트는 이 사건에 자신의 쌍둥이 자매 카밀라가 커튼 속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결국 미카엘과 함께 사건에 휘말린다.
그리고 프란스의 아들 아우구스트(자폐아였지만 서번트증후군이었다. 특히 그림과 수학에 탁월한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아이였다.)의 활약 또한 이 책을 보는 재미 중 하나였다.
아우구스트의 모습과 리스 베트의 과거 모습이 닮은 꼴인 것도 흥미로웠다.
게다가 악랄한 자신의 아버지와 똑같은 권력형 인간인 리스 베트의 쌍둥이 자매 카밀라는 모든 예상을 깨는 마성의 인간이었다.
권력과 돈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일이라도 하는 '인간'과 '기업' 그리고 '기관'.
그리고 끊임없는 '감시'는 누구라도 편집증 환자로 만들어버린다.
나는 요 몇 년간 '댓글'을 달지 않았었다. 옹호하는 댓글이든 비판하는 댓글이든 간에 나 스스로 검열하는 모습을 보면서 오래전 한 사람이 떠올려졌다.
엠코 방송국에 한 사람이 갑자기 튀어 들어와 9시 뉴스를 하는 앵커 뒤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
그때에도 어이없어 웃었고, 몇 년 동안 그 이야기는 웃음의 소재였지만 하지만 사실 근래에 들어와서 과연 그것이 웃을 일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노든의 폭로(미국 안보국이 민간인들을 전방위적으로 감시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와 현재 마구 쏟아지는 전 전 정권과 전 정권의 민간인 사찰과 조작(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공화국이다. 민주주의는 국민에게 주권이 있다. 즉 국민이 주인이다. 하지만 이 일은 국민을 주인으로 여기기보다는 정말이지 자신들이 감시하고 착취하는 개, 돼지로 보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ㅜㅜ)은 우리의 미래가 과연 앞으로 가고 있는지를 심각하게 생각해보아야 함을 알려준다.
리스베트는 NSA를 해킹하며 이런 말을 남긴다.
[국민을 감시하는 자는 결국 국민에게 감시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바로 민주주의의 기본 논리 아닐까요?]  - p 112~113

사족으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프란스의 친구 파라와 형사 얀의 대화였다. 프란스 발데르는 자신인생의 역대급 인공지능 개발을 했지만 그것을 파괴했다. 그 이유에 대해 얀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인간 존재를 특징짓는 게 있다면 그건 바로 모순들이라고요. 우리는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싶어하면서도 동시에 집으로 돌아가기를 꿈꾸죠. 프란스 교수를 만난 적도 없고 아마 만났다면 날 늙은 멍청이로 여겼겟지만 적어도 난 한 가지는 알아요. 우리는 자신의 일을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두려워할 수 있다는 걸요. 그가 아이를 버리고 도망갔으면서도 사랑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교수님, 살아있다는 건 늘 한결같을 수 없다는 뜻이고 동시에 여러 방향으로 모험을 떠나는 것이죠. 난 당신의 친구가 어떤 전환점에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어쩌면 정말 평생의 작품을 파괴해버렸을지도 몰라요. 생의 끝자락에 이르러 자신의 모든 모순들을 드러냄으로써, 가장 좋은 의미에서 진정한 인간이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인공지능은 결국 늦든 빠르든 모든 면에서 인간의 재능을 앞서갈 것이다.
하지만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사랑'은 결코 가질 수 없을 것이다.

다시 만난 리스베트와 미카엘에게 무한한 사랑을 전한다. 조만간 또 만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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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혹은 그림자 - 호퍼의 그림에서 탄생한 빛과 어둠의 이야기
로런스 블록 외 지음, 로런스 블록 엮음, 이진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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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있어 가장 인상깊었던 그림은 고흐의 '귀잘린 자화상'이었다. 그 그림을 보는 순간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게다가 단지 한쪽 귀가 잘 그려지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가차없이 자신의 귀를 자른 고흐.
과연, 그는 미친 것일까?
아니면 그렇게까지 하면서 자신의 자화상을 그리고 싶었던 것일까?
단순히 눈으로만 보는 그림이 아니라 가슴?으로 보는 그림을 처음 만난 계기가 되었다.
오랜시간 공들여 그린 그림에는 그 나름의 사연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작가가 들려주지 않는한 우리는 그 사연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어느 소설가(로런스 블록)은 생각했다. 자신에게 영감을 준 그림에 대해서 이야기를 써보자, 라고.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동료 이야기꾼들을 모아서 책을 펴내기로 했다.
(마치 가수들이 자신들이 존중하는 가수에게 바치는 헌정앨범처럼)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 이야기라는 날개를 달아주었다.


빛 혹은 그림자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처음 보게 된 것은 집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였다.

 

바로 이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이었다. 그 카페는 일명 퍼즐카페인데 벽에 장식된 모든 그림들이 퍼즐이었다. 그래서 이 그림 또한 퍼즐이었다. 처음 이 그림을 보면서 어떤 느낌을 받았냐면 마치 연극이나 영화 무대 세트에서 연기를 하는 사람들을 보는 듯했다. 어떻게 보면 정말 미국적인 느낌?!이랄까. 그것을 딱히 어떻게 설명할 길은 없지만 말이다. 여튼 이상하게도 그림 속의 인물들은 모두 무표정함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눈길을 사로잡는 무언가가 있다. 그래서 인상깊었던 그 그림이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었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게 되었고, 이 그림이 워낙 미국인들에게 많은 영감을 준 작품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 그림 제목을 치면 얼마나 많은 패러디물이 있던지 허걱, 할 정도였다. 그만큼 사랑받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 그림은 해리 보슈 시리즈로 유명한 마이클 코넬리에게 큰 영감을 준 작품이라고 한다. 그래서 마이클 코넬리는 형사를 은퇴하고 탐정이 된 해리 보슈를 이 그림 속 이야기에 등장시켰다. (내가 애정하는 작가 중 하나여서 제일 먼저 읽어버린 소설이었다. 탐정이 된 해리도 역시나 변하지 않는 성격의 해리였다. ^^)

(심지어는 우리나라의 모쇼핑 광고에서도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패러디할 정도였다.)

    

1952년 선로 옆 호텔


 

이 책에 참여한 작가들을 보면 장르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작가들이 대거 참여했다. 유일하게 처음 소설을 써본 작가도 있었다. 게일 레빈이라는 사람인데 호퍼의 1932년작 도시의 지붕들, 이라는 그림에 대해 이야기했다. 에드워드 호퍼 최고 권위자로 휘트니 뮤지엄 큐레이터로 일할때 호퍼의 카탈로그 레조네(작가에 대한 모든 작품과 자료를 기록한 책)를 제작했고, [에드워드 호퍼 ; 빛을 그린 사실주의 화가]를 집필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소설은 마치 논픽션같았다. 사실인지 허구인지 헷갈렸던 소설이었다.

이 책에 참여한 작가들은 스티븐 킹, 조이스 캐럴 오츠, 마이클 코넬리, 리 차일드, 제프리 디버, 로버트 올렌 버틀러, 크레이그 퍼거슨, 메건 애벗, 니컬러스 크리스토퍼, 질 D.블록, 조 R.랜스데일, 게일 레빈, 워런 무어, 크리스 넬스콧, 조너선 샌틀로퍼, 저스틴 스콧, 로런스 블록 이다.

모든 작가들이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해 멋진 소설들을 써내려갔다.
허를 찌르는 소설들도 많았고, 무한 감동의 소설들도 많았다.
감동적인 영화에 '음악'이 곁들어져서 더욱 더 감동적이듯이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 '이야기'를 덧붙이니 마치 금방이라도 그림 속 인물들이 움직일 듯 했다.

모든 작품들이 좋았지만 한 작품을 꼽는다면 나는 크리스 넬스콧의 정물화 1931 였다.

 

에드워드 호퍼 1931, 호텔방

이 그림에 크리스 넬스콧은 아름답고도 슬픈 이야기를 그려냈다.
크리스 넬스콧은 우리나라에 알려지지 않은 소설가이다.(인터넷을 쳐보니 이 책 이외에 어느 곳에도 이름이 오르내리지 않았고 번역된 책 한권도 없었다 ㅜㅜ)
크리스 넬스콧은 스모키 돌턴 미스터리 시리즈의 작가이며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탐정소설을 쓰는 작가'라는 평을 듣는다. 그녀의 작품은 에드거상 최고의 소설 후보에 올랐고, 셰이머스상 올해의 탐정소설로 선정되었다. 이번 기회에 그녀의 소설들이 번역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은 럴린과 노린이라는 자매에 대한 이야기였다. 어렸을적 언니의 거짓말로 인해 한 남자가 무참하게 죽는다. 언니의 거짓말을 알아채고도 모른채했던 럴린. 노린은 결국 죄책감으로 인해 자살을 하고, 럴린은 언니의 죽음 이후로 사람들 심지어 자신의 남편까지한테도 진실을 말하지 않은채 어떤 일을 하는데...
인종차별에 맞서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었다.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오래전 흑인들은 백인들과 같은 버스에 타지 못했다. 지금은 어떠한가. 물론 흑인들 뿐 아니라 수많은 인종들이 백인들과 같이 걷고 버스에 타고 지하철을 탄다. 그렇다고 인종차별이 없어졌을까? 흑인들과 다름없는 대접을 받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또한 우리나라에 머물고 있는 흑인들과 백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같은지 묻고 싶다.-다문화가족이 많아지는 세월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자신과 다른(우습지 않은가?! 무에가 다르냐 말이다. 개도 고양이도 아닌 인간인데 말이다.) 피부색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차별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기울어져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혐오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할까? 그 답을 럴린이 우리에게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엉뚱한 사람을 가리키며 거짓말을 했던 노린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 손가락 반대편 끝에 있던 젊은 남자, 책을 들고서, 인형을 들고 가던 소녀를 향해 미소 짓던, 한 인간이 또다른 인간을 대하듯 친절하게 그녀를 대했던, 너무도 드문 일이라 기억에 남는 대우를 해준 그 사람을 위해서였다.
이것은 그를 위한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모든 이들을 위한 일이 될 것이다. 잘해야 명단에 오른 이름이 되고, 최악의 경우 엽서가 되는 그와 같은 모든 이들을 위한 일이 될 것이다.
그녀는 할 수 있는 한 이일을 할 것이다. -p359]

우리 또한 그녀처럼 그래야하지 않을까, 잘못된 일은 잘못된 것이라고. 그저 방관하고 모른 척 하지 말고, 나만 아니면 돼 라고 하지 말고.
고 김대중 대통령님의 말씀
"행동하지 않는 정의는 악의 편입니다"
처럼 말입니다.

쓸쓸하고 찬바람이 가득찬 늦가을 밤에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과 함께 소설가들의 멋진 소설들을 읽기를 강추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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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온도 - 착한 스프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하명희 지음 / 북로드 / 2017년 9월
평점 :
품절


내가 고등학교때까지는 컴퓨터가 이처럼 보급이 안된 시기여서 여전히 직접 펜을 들어 편지를 쓰는 펜팔이 성행했다.(심지어는 작은 포켓 노래책이 있었는데 그 뒤쪽 몇장이 수많은 사람들의 주소가 적혀있을 정도였다. ^^) 그러다 대학생이 되었을 무렵 천리안, 나우누리 등 일명 PC통신이라는 것이 생겨났다. 지금 사람들에게는 너무 낯선(혹 접속이라는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286, 386 컴퓨터로 마치 비밀 접선하듯이 그렇게 누군가와 채팅했다. 그리고 조금 지나자 개인컴퓨터가 보급화되고 인터넷 속도가 빨라지면서 채팅사이트들이 생겨나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은 자신과 취미가 맞거나 혹은 친목 도모를 위해서 밤새워 채팅질?을 했다. 취미를 공유하고 지식을 나누어받고, 같이 웃고 울고, 그리고 또한 '사랑'에 빠지기도 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익명'을 처음으로 담보받지 않았나싶다. 여튼 초창기 채팅은 아무리 '익명'이래도 적어도 '솔직'이 우선이었던 것 같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익명'이어서 더욱더 자신에게 있어서, 타인에게 있어서 '솔직'하지 않았나 싶다. (예를 들어 고민이 있으면 부모나 친구에게 말하는 것이 어려우면 오히려 익명의 채팅사이트에서 상담하기도 한다)

오히려 오프라인으로 만남을 가지면 어색하고, 거짓을 내세우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말이다.


사족이 길었다. 여튼 이 책은 채팅으로 만나 인연을 맺어 그 인연을 오프라인으로 이어가게 되는 '인연' 혹은 '사랑'이야기이다.

특히 이 책은 드라마작가가 쓴 책이다보니 이 책 또한 드라마로 만들어져 지금 절찬리 상영?중이다.

그래서 기대가 큰 탓인지 사실 이 책을 '로맨스소설'로 보기에는 조금 안타까웠다.

우선은 드라마와 원작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므로 혹 '사랑의 온도'를 보시는 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별 문제는 없을 듯 싶다. 물론 결말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함부로 이야기할 수는 없겠지만.


이 책을 덮고 나서 드는 생각은 사랑은 '타이밍'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타이밍이 맞아야지만 서로 사랑을 할 수 있고, 그 사랑을 이룰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사랑을 하더라도 미움이 생기면 우리는 사랑을 버려야할까? 혹은 미움이 커지고 커져 자신을 망가뜨리기 전에 용서를 해야하는가? (이 대목에서 나는 항상 궁금한 것이 있었다. 많은 이들이 처음엔 서로 사랑을 해서 이 사람이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 기르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뒤틀리고 서로 성격이 다르고 서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헤어진다. 과연 그것이 진정 '사랑'일까, 그러면 처음 그들이 '사랑'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 유명한 영화대사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의 질문처럼 '사랑'은 변하지 않는데 결국 그 '사랑'을 했던 '사람'이 변하는걸까?)


마음의 방이 하나밖에 없는 여자 현수와 모든 것을 다 가졌지만 외로운 여자 홍아, 그리고 그 둘 사이에 있는 부모님으로부터 온 정신적인 연좌제('사랑'의 징크스)가 있는 남자 정선, 그리고 현수의 등만 바라보는 남자 정우.

이들이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거나 혹은 '사랑'할 수 없는 이야기이다.

누군가에게는 공감이, 누군가에게는 답답함을 선사할지도 모르지만 이 깊어가는 가을에 한번쯤 읽어보아도 좋지 않을까.


사족으로 예전에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무슨 이야기끝에 연쇄살인범을 사랑하는 여인들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나는 아무리 좋게 봐주어도 특히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살인범을 '사랑'할 수 없으며 그 혹은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노라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그 누군가가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 어떤 '사랑'도 잘못은 없어. 물론 그 '사랑'을 하는 사람도.

잘못은 그 '사랑'을 이용하거나 사랑이 아닌데도 '사랑'이라고 잘못 생각하는 것일 뿐이라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 오래전 나눴던 이야기를 생각해보며 나 자신에게 질문해본다.


나는 어떤 '사랑'을 하고 있는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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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 이유 버티고 시리즈
이언 랜킨 지음, 최필원 옮김 / 오픈하우스 / 2017년 8월
평점 :
절판


북아일랜드 분쟁은 1170년 영국군이 아일랜드 북부 얼스터 지방을 침략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17세기에는 영국의 식민지가 된 아일랜드 북부에 영국 개신교도를 집중적으로 이주시켰다. 그 결과 영국의 개신교도가 기존에 북아일랜드에 거주하던 가톨릭교 신자들을 밀어내고 인구 대부분을 차지했으며, 이들의 후손들은 지금도 정치, 사회, 문화 등의 영역에서 기득권을 갖고 있다. 따라서 아일랜드 사람들은 수백년 동안 영국에서 이주해 온 개신교인들에게 차별과 억압을 받았다. 이에 아일랜드 가톨릭교도들은 20세기 들어 아일랜드 공화국 군(IRA)을 창설하여 폭탄 테러, 게릴라전 등을 벌이며 격렬히 반발하였고, 1969년부터 30년간 양측의 유혈 충돌로 3,7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1996년 6월부터는 분쟁 종식을 위한 평화 협정 체결 협상이 개시되어, 1998년 4월 북아일랜드 평화 협정이 타결되었다. 아일랜드 공화국 군(IRA)은 2005년 9월 26일 무장해제 완료를 공식 선언하였고, 2007년 공동 자치 정부가 출범하는 등 평화 정착을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다음 위키백과에서


내가 기껏해야 접한 북아일랜드 분쟁에 관한 이야기는 영화 '크라임 게임'과 '거미여인의 키스'를 통해서였다.

그래서 그저 IRA는 영국의 정치범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니 얼마나 뿌리깊은 갈등인지를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역사도 속속들이 모르는데 기껏해야 중고등학교때 배운 세계사 중 북아일랜드에 대한 이야기를 배운 적이나 있겠는가, 혹 선생이 이야기해줬다고 해도 주입식 교육의 산물로 나의 머리 속에 있는 지우개가 깨끗이 지워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이 책에서 나오는 북아일랜드의 투쟁기는 낯설고 어려웠다. 하나하나 파고 들었다가는 한달이 지나도 페이지가 나갈 것 같지 않아 나무들은 그저 스쳐지나가고 숲을 보려고 노력했다.

혹 이 책을 읽으려는 독자에게는 간단히라도 북아일랜드 분쟁을 알고 가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아 첫머리에 다음 백과사전에 나와있는 글을 발췌했다.

물론 나처럼 아무런 지식이 없어도 이 책을 읽는데는 그리 큰 무리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페미니즘도 하나의 페미니즘 아래에 수많은 파가 있다. 과격한 파서부터 온전한 보수파까지. 거의 모든 이념들이 그러하지 않은가? 정치처럼 말이다. 꼴통서부터 극진보까지 있는 것처럼 말이다.)

뭐 그런식으로 이해하면 쉽지 않을까?(물론 혹자는 썰렁썰렁 대충대충 한다고 비난할지 모르지만)


여튼 줄거리로 들어가면 공사중인 지하에서 한 남자의 시체가 발견된다. 그것도 잔인하게 처형방식으로(식스팩이라는 처형방식이었는데 상상하니 너무 잔인했다) 살해당했다.

남자의 신원이 확인되면서 점점 미궁속으로 빠지는데(게다가 알고보니 살해당한 남자는 그 유명한 범죄자 캐퍼티-존리버스가 감방에 보낸-의 알려지지 않은 아들이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테러와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점점 드러나는 유령같은 조직과 필뮤어(우리나라로 따지면 엄청난 달동네인데 불만으로 가득찬 반정부집단의 메카? 경찰도 두려워하는 곳?)라는 곳에서 젊은 애들과의 갈등 등 온통 깊은 숲길처럼 시종 진지하고 어두웠다.

결국 존 리버스는 SCS(스코틀랜드수사반)으로 착출되어 고독한 늑대처럼 진실을 파헤친다.


여러 갈래길을 왔다갔다 하다 결국 숲을 빠져나왔을때에야 그 모든 갈래길이 하나의 길로 이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나라의 골목길을 걷다보면 결국 모든 골목길이 통하는 것처럼-물론 막다른 골목길도 있지만 말이다)


"난 당신 같은 사람들이 무서워요." 리버스가 냉담한 톤으로 말했다. 진심이었다. 콜록거리는 다드 수터는 열 명의 캐퍼티보다도 훨씬 무시무시한 사람이었다. 죽었다 깨어나도 바뀌지 않고, 말도 통하지 않는 타입. 누구도 그의 정신을 건드릴 수 없었다. 어떤 방법으로도. 운영진이 모두 퇴근해버린 가게나 다름없었다.

-p368

나는 이 대목에서 소름이 끼쳤다. 10년의 세월 속에서 우리 곁 곳곳에서 보았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명분이라는 것이 자신들을 이용해먹은 껍데기일 뿐인 허수아비 '권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맹목적인 그들을 보면 처음에는 한심하고 어이없었지만 이제는 '무섭다'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들이 믿었던 모든 것들이 무너져도 그들은 결코 바뀌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리버스의 '무섭다'는 말이, 그 참담한 말이 이토록 이해되었던 적은 없었다.


이번 책은 어떻게 보면 시리즈 중 재미가 덜할 지도 모르지만 (브라이언 홈스와 쇼반 클락의 활약이 덜하다보니 존 리버스의 유머가 많이 나오지 않아 아쉬웠다.) 그래도 나에게 있어서 매우 흥미로운 책이었다. (해리홀레 시리즈의 레드브레스트를 읽은 느낌이었다)

아주 작은 부분이었지만 어두운 북아일랜드의 이야기를 알 수 있었고, 이제는 모든 이념과 정신마저도 '돈'으로 바꾸는 인간들을 볼 수 있었다.


다음에 또 리버스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다음번의 리버스가 알콜중독이 되어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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