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를 너무나 재미있게 읽어서 언제쯤 후속이 나올려나 목빠지게 기다렸더니 이렇게 반갑게 떡하니 '괴물이라 불린
남자'가 나왔다.
(사실 어떤 분도 그렇게 이야기했지만 제목이 과연 어울리나? 하는 생각이 들긴 했다. 차라리 원작처럼 더 라스트 마일이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뭐 어떠리, 표지는 좋았다.)
전작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에서 정말이지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에이머스 데커(미식축구 사고로 인해 모든 것을 사진처럼 기억하는
남자)는 FBI 미제 수사팀에 합류하기 위해 가는 도중 라디오에서 한때 미식축구계의 '괴물'이라 불렸던 사형수 멜빈 마스의 사연을 듣게
된다.
전도유망한 청년 멜빈 마스는 하루아침에 부모님을 살해했다는 죄명으로 사형수가 되어 20년을 갇혀있다가 사형길로 가는 길에 갑작스레 사형이
중지된다. 누군가가 멜빈 마스의 부모님을 살해했다고 자백한 것이다.
자신의 과거와 비슷한 사연에 데커는 이 사건을 맡기로 결정한다.
이유는 왜? 였다.
왜 사형집행 직전에 자신이 진짜 살인범이라고 고백했을까?
어떻게 생각해보면 그냥 갑자기 살아난 멜빈 마스 입장에서는 그저 자신이 죄가 없어졌고 감옥에서 나갈 수 있으면 그 어떤 것도 문제가 안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데커는 모든 것이 '의문' 투성이였고, '진실'을 알고 싶었다.
'진실'에 다가갈수록 더욱더 짙은 안개 속을 헤매이는 것 같았고, 마스는 자신의 부모(백인 아버지와 흑인 어머니)에 대해 그 어떠한 것도
알지 못했다는 사실에 직면한다. (감추기로 한 사람에 대해서는 알기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얼마나 잘 감추냐에 따라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진실은 드러난다.
20년의 시간만큼 깊은 진실이. - 얼마나 추악한 진실인가. '악'은 선천적인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람이 사람을 '증오'하고 '사랑'하는 일은 그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갈리는 것 같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듯이.)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일로 사형수가 되어 감옥에서 20년 동안 살았던 멜빈 마스를 보면서 많은 생각들이 교차되었다.
오래전 보았던 '일급살인'이라든지 아직도 독방에서 지내고 있는 '양심수'의 일이라든지.
-공지영씨의 인간에 대한 예의라는 책에서 이런 구절이 나온다.
몇십년 동안 양심수로 좁은 독방에 갇혀있던 분이 늙고 병들어 겨우 감옥 밖에 나와서 자그마한 방을 구해 지내게 되었는데 며칠간 방안에서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 이유는 문을 여는 법을 몰라서였다. 항상 누군가가 문을 열어줘야만 밖으로 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과연 우리는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그것도 죄를 저질렀다면 죄값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죄로 그 긴 세월을 갇혀있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함 그 자체인
것이다.
"무고한데 억울하게 사형당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단 한 명도 너무 많죠. 그리고 분명히 한 명은 넘을테고."
그렇다. 무고하게 사형당한 사람은 단 한 명이라도 너무 많은 것이다.
같은 시기에 미식축구를 했던 두 사람(팀은 달랐지만) 마스와 데커.
데커는 내셔널 풋볼 리그 한 경기에서 사고로 인해 더이상 뛸 수 없었고, 마스는 살인범으로 감옥에 들어가 그 모든 것을 할 수
없었다.
마스가 데커에게 물었다.
"기분이 어땠어요? 그 구장을 걷는 기분. 8만 명이 관중석에 있는 걸 보는 기분. 세계 최고 선수들하고 경기하는 기분 말이에요."
감옥에 가지 않았더라면 최고의 선수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마스의 심정을 그 누가 알겠는가.
20년이 아니라 1년이라도 아니, 하루라도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있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살인'에 해당되는 시간일 것이다.
아무리 억만금을 가져다준다해도 시간을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남지 않은 멜빈 마스가 다시 굳건히 일어서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약속'을 지켰듯이.
그리고 데커가 그에게 말한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기억하고 있으면 결코 '사랑'은 빛바래지 않으니까.
"나는 사랑을 알고, 그게 사람들을 어떻게 바꿔놓을 수 있는지 알아요, 멜빈. 좋은 쪽으로도, 나쁜 쪽으로도 말이에요. 내 뇌가 얼마나
많이 변했든 그것만은 항상 기억할 겁니다." -p4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