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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혹은 그림자 - 호퍼의 그림에서 탄생한 빛과 어둠의 이야기
로런스 블록 외 지음, 로런스 블록 엮음, 이진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평점 :
나에게 있어 가장 인상깊었던 그림은 고흐의 '귀잘린 자화상'이었다. 그 그림을 보는 순간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게다가 단지 한쪽 귀가 잘 그려지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가차없이 자신의 귀를 자른 고흐.
과연, 그는 미친 것일까?
아니면 그렇게까지 하면서 자신의 자화상을 그리고 싶었던 것일까?
단순히 눈으로만 보는 그림이 아니라 가슴?으로 보는 그림을 처음 만난 계기가 되었다.
오랜시간 공들여 그린 그림에는 그 나름의 사연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작가가 들려주지 않는한 우리는 그 사연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어느 소설가(로런스 블록)은 생각했다. 자신에게 영감을 준 그림에 대해서 이야기를 써보자, 라고.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동료 이야기꾼들을 모아서 책을 펴내기로 했다.
(마치 가수들이 자신들이 존중하는 가수에게 바치는 헌정앨범처럼)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 이야기라는 날개를 달아주었다.
빛 혹은 그림자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처음 보게 된 것은 집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였다.

바로 이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이었다. 그 카페는 일명 퍼즐카페인데 벽에 장식된 모든 그림들이 퍼즐이었다. 그래서 이 그림 또한 퍼즐이었다. 처음 이 그림을 보면서 어떤 느낌을 받았냐면 마치 연극이나 영화 무대 세트에서 연기를 하는 사람들을 보는 듯했다. 어떻게 보면 정말 미국적인 느낌?!이랄까. 그것을 딱히 어떻게 설명할 길은 없지만 말이다. 여튼 이상하게도 그림 속의 인물들은 모두 무표정함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눈길을 사로잡는 무언가가 있다. 그래서 인상깊었던 그 그림이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었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게 되었고, 이 그림이 워낙 미국인들에게 많은 영감을 준 작품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 그림 제목을 치면 얼마나 많은 패러디물이 있던지 허걱, 할 정도였다. 그만큼 사랑받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 그림은 해리 보슈 시리즈로 유명한 마이클 코넬리에게 큰 영감을 준 작품이라고 한다. 그래서 마이클 코넬리는 형사를 은퇴하고 탐정이 된 해리 보슈를 이 그림 속 이야기에 등장시켰다. (내가 애정하는 작가 중 하나여서 제일 먼저 읽어버린 소설이었다. 탐정이 된 해리도 역시나 변하지 않는 성격의 해리였다. ^^)
(심지어는 우리나라의 모쇼핑 광고에서도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패러디할 정도였다.)
1952년 선로 옆 호텔

이 책에 참여한 작가들을 보면 장르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작가들이 대거 참여했다. 유일하게 처음 소설을 써본 작가도 있었다. 게일 레빈이라는 사람인데 호퍼의 1932년작 도시의 지붕들, 이라는 그림에 대해 이야기했다. 에드워드 호퍼 최고 권위자로 휘트니 뮤지엄 큐레이터로 일할때 호퍼의 카탈로그 레조네(작가에 대한 모든 작품과 자료를 기록한 책)를 제작했고, [에드워드 호퍼 ; 빛을 그린 사실주의 화가]를 집필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소설은 마치 논픽션같았다. 사실인지 허구인지 헷갈렸던 소설이었다.
이 책에 참여한 작가들은 스티븐 킹, 조이스 캐럴 오츠, 마이클 코넬리, 리 차일드, 제프리 디버, 로버트 올렌 버틀러, 크레이그 퍼거슨, 메건 애벗, 니컬러스 크리스토퍼, 질 D.블록, 조 R.랜스데일, 게일 레빈, 워런 무어, 크리스 넬스콧, 조너선 샌틀로퍼, 저스틴 스콧, 로런스 블록 이다.
모든 작가들이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해 멋진 소설들을 써내려갔다.
허를 찌르는 소설들도 많았고, 무한 감동의 소설들도 많았다.
감동적인 영화에 '음악'이 곁들어져서 더욱 더 감동적이듯이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 '이야기'를 덧붙이니 마치 금방이라도 그림 속 인물들이 움직일 듯 했다.
모든 작품들이 좋았지만 한 작품을 꼽는다면 나는 크리스 넬스콧의 정물화 1931 였다.

에드워드 호퍼 1931, 호텔방
이 그림에 크리스 넬스콧은 아름답고도 슬픈 이야기를 그려냈다.
크리스 넬스콧은 우리나라에 알려지지 않은 소설가이다.(인터넷을 쳐보니 이 책 이외에 어느 곳에도 이름이 오르내리지 않았고 번역된 책 한권도 없었다 ㅜㅜ)
크리스 넬스콧은 스모키 돌턴 미스터리 시리즈의 작가이며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탐정소설을 쓰는 작가'라는 평을 듣는다. 그녀의 작품은 에드거상 최고의 소설 후보에 올랐고, 셰이머스상 올해의 탐정소설로 선정되었다. 이번 기회에 그녀의 소설들이 번역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은 럴린과 노린이라는 자매에 대한 이야기였다. 어렸을적 언니의 거짓말로 인해 한 남자가 무참하게 죽는다. 언니의 거짓말을 알아채고도 모른채했던 럴린. 노린은 결국 죄책감으로 인해 자살을 하고, 럴린은 언니의 죽음 이후로 사람들 심지어 자신의 남편까지한테도 진실을 말하지 않은채 어떤 일을 하는데...
인종차별에 맞서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었다.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오래전 흑인들은 백인들과 같은 버스에 타지 못했다. 지금은 어떠한가. 물론 흑인들 뿐 아니라 수많은 인종들이 백인들과 같이 걷고 버스에 타고 지하철을 탄다. 그렇다고 인종차별이 없어졌을까? 흑인들과 다름없는 대접을 받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또한 우리나라에 머물고 있는 흑인들과 백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같은지 묻고 싶다.-다문화가족이 많아지는 세월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자신과 다른(우습지 않은가?! 무에가 다르냐 말이다. 개도 고양이도 아닌 인간인데 말이다.) 피부색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차별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기울어져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혐오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할까? 그 답을 럴린이 우리에게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엉뚱한 사람을 가리키며 거짓말을 했던 노린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 손가락 반대편 끝에 있던 젊은 남자, 책을 들고서, 인형을 들고 가던 소녀를 향해 미소 짓던, 한 인간이 또다른 인간을 대하듯 친절하게 그녀를 대했던, 너무도 드문 일이라 기억에 남는 대우를 해준 그 사람을 위해서였다.
이것은 그를 위한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모든 이들을 위한 일이 될 것이다. 잘해야 명단에 오른 이름이 되고, 최악의 경우 엽서가 되는 그와 같은 모든 이들을 위한 일이 될 것이다.
그녀는 할 수 있는 한 이일을 할 것이다. -p359]
우리 또한 그녀처럼 그래야하지 않을까, 잘못된 일은 잘못된 것이라고. 그저 방관하고 모른 척 하지 말고, 나만 아니면 돼 라고 하지 말고.
고 김대중 대통령님의 말씀
"행동하지 않는 정의는 악의 편입니다"
처럼 말입니다.
쓸쓸하고 찬바람이 가득찬 늦가을 밤에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과 함께 소설가들의 멋진 소설들을 읽기를 강추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