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선택한 남자 스토리콜렉터 66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이한이 옮김 / 북로드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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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온 에이머스 데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데커시리즈 제 3탄 '죽음을 선택한 남자'(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괴물이라 불린 남자, 죽음을 선택한 남자... 남자 시리즈로 제목 컨셉을 정하신듯. ^^;;;)


지구상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 중 한 곳이자, 전 세계 FBI의 거점 후버 빌딩. 그 앞에서 한 백인 남성이 한 여성을 총으로 쏜 후 자신도 그 총으로 자살한다. 그 모든 것을 지켜본 에이머스 데커.

과연 왜 남자는 여자를 죽이고, 자신도 죽었는가?!

데커는 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여성을 죽인 남자는 모든 것을 갖춘 (부유한 집, 자상한 아내, 장성한 딸들, 국가 기밀을 다루는 잘 나가는 사업 등) 남자였다. 그와 가까운 사람들은 그가 자살했다는 것도 누군가를 죽였다는 것도 믿을 수가 없다.

게다가 대브니(여성을 죽이고 자살한 남자)가 죽인 여성(앤 버크셔)과 어떠한 접점도 없었고, 대브니는 말기암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또한 앤 버크셔의 신원을 조회해보니 10년 전의 기록들이 전무했는데 과연 앤 버크셔는 누구였고, 대브니는 왜 그녀를 죽였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데커 일행.

그런 데커 일행에게 수사를 중단하라는 이야기를 하는 하퍼 브라운(그녀의 직업은 DIA 국방정보국 소속이다)의 등장으로 단순하게 보였던 사건이 거대한 사건으로 번진다.

과연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데커는 이 사건의 진실에 도달할 수 있을까?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던 에이머스 데커 시리즈 제3탄 '죽음을 선택한 남자'는 헤닝 만켈의 발란더 시리즈의 '불안한 남자' 편이 생각나게 했다.

게다가 이번 '죽음을 선택한 남자'에서는 단순히 사건에 집중한 것만은 아니다.

2편 괴물이라 불린 남자 에서 나온 멜빈 마스가 등장한다.(재미슨과 데커의 집주인으로)

무척이나 반가웠고 내용도 핑크빛?이어서 좋았다.

또한 재미슨과 데커(서로를 파트너로 인정하는 시간이었다)의 캐미를 보는 것도 즐거움 중 하나였다.

아무리 감정이 메말라버린 사람이라도(데커는 미식축구를 하다 다친 이후로 과잉기억증후군에 걸린 이후 감정적으로 다른 사람이 되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공감각이 작아진 것이다.) 누군가와 부딪히고 살고 관계하다 보면 '인간성'이라는 것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물론 사이코패스는 열외로 치고) 분노하기도 하고 무언가를 잊어먹기도 하고, 미안해하기도 하고 말이다.

여튼 에이머스 데커는 그를 애정어린 시선으로 지켜보는 친구들로 인해 점점 인간미가 갖추어지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된다.


[누군가를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김국환의 노래 '타타타'의 -내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의 가사처럼 우리는 과연 타인을 잘 알 수 있을까?

사실 나 자신 또한 일에서의 모습과 가정에서의 모습이 다르다. (학창시절에 부모님 면담이 있었는데 그때 엄마가 면담을 마치고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너는 학교에서는 그렇게 말도 잘하고 잘 웃고 잘 놀면서 집에서는 왜 반대이니?! 라고. 사실 사춘기시절에는 친구랑 노는게 가장 즐겁지 않았을까? 하고 지금에는 생각하지만 그때 엄마의 물음에 나는 당돌하게도 이렇게 대답했다. "별로 즐겁지도 않은데 그럼 광대처럼 매번 웃어야해?"라고. 생각해보면 참 싸가지가 없었던 듯...ㅜㅜ 여튼 그만큼 아무리 자신의 배속으로 낳은 자식이래도 알 수가 없다는 이야기다.)


이 책을 읽으면서 누군가를 잘 안다고 이야기하면 안되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나 또한 다른 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보여주길 바라니까. ^^


점점 스산해지고 있는 가을로 가는 시간 안에서 데이비드 발다치의 에이머스 데커의 시리즈를 추천한다. 재미와 감동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으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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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오거스트의 열다섯 번째 삶
클레어 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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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소설 중에서 내가 가장 친하지 않은 것은 판타지와 sf 쪽이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는데 장르소설만 줄창 읽게 된지도 10년이 훌쩍 지나갔음에도 아직도 읽을 스릴러물이 넘쳐나서 그런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 sf 영화쪽도 좋아하는 편이라 읽을만 한데도 인연이 없었던 것인지 잘 접하질 못했다. 그런데 올해는 왠지 이쪽과 친해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한달 전쯤 매트 헤이그의 '시간을 멈추는 법'(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sf물은 아니지만) 을 읽게 되면서 이쪽에 훅, 쏠리는 감각이 생겼고, 이번에 클레어 노스의 '해리 오거스트의 열다섯 번째 삶'을 읽으면서 이쪽의 책들을 마구마구 읽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해졌다.

그만큼 좋았다는 이야기.

한순간도 지루하지 않았다. 일하고 밥먹고, 자야하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 하지만 일하고 밥먹고, 자야한다.



[해리 오거스트는 1919년 1월 1일, 기차역 화장실에서 태어났다. 하녀인 어머니 리사는 해리를 낳다 사망했고, 그녀를 강간한 주인 로리 헐너의 가문은 해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해리는 헐너 가문의 과리인 부부에게 입양돼 성장했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1989년 70세의 나이로 외롭게 숨을 거둔다. 여기까지는 흔히 볼 수 있는 인생이었다. 그러나 1919년 1월 1일, 다시 기차역 화장실에서 태어났을 때, 해리는 예전 삶의 기억을 모두 갖고 있었다. 어린아이 몸에 어른 정신을 가지고 있는 마치 할머니가 비키니를 입은 것과 같았다. 해리는 결국 정신병원으로 보내지고, 거기서 자살하고 만다. 세번째 삶부터는 달랐다. 그는 이제 앞으로 닥쳐올 일을 알고, 이에 대비할 수 있었다. 그는 반복되는 인생의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세 번째 삶에서 종교를, 네 번째 삶에서 의학을, 여섯 번째 삶에서 물리학을 탐구한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고, 미래를 아는 해리의 능력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게다가 열한 번째 죽음을 앞두고, 파란색 교복을 입은 일곱 살 소녀가 나타나 이렇게 말한다. "세계가 끝나고 있어요. 이 메시지는 아이에게서 어른으로, 아이에게서 어른으로, 천 년 후 미래의 세대로부터 거슬러 전달된 거예요. 세계가 끝나고 있고 우리는 종말을 막을 수 없어요. 그러니까 이제 박사님께 달려 있어요." 소녀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모르는 채로 해리는 열한 번째의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이제 열두 번째 삶부터 해리의 인생은 극적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세계 종말의 음모란 대체 무엇인가?]

-이 책의 표지에 있는 줄거리 발췌


대부분의 인류는 선형적인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해리와 같은 순환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왜?! 라는 질문을 해리는 끊임없이 던지지만 해답을 구할 수 없다. 그저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돕고, 혹여나 이 세상에 악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만약 내가 해리와 같은 삶을 산다면 얼마나 정신적으로 괴로울까, 라는 생각을 한다. 다행히 선형적인 삶을 사는 나는 안도한다.

여러번 삶을 산다면 지루하거나 할일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보면 매번 다른 삶을 살려고 하는 해리를 보니 너무 바쁘게, 치열하게 사는 것 같아 안쓰럽기도 했다.

해리의 여러 삶의 이야기와 갈등, 그리고 숙적? 빈센트와의 대결은 숨가쁘게 달려간다. 600페이지가 넘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할 틈이 없었다. 빈센트와의 만남이 해리의 삶 또한 바꾸어놓았다.

세계를 바꾸려는 빈센트와 세계를 그저 흘러가는 물처럼 바라보려는 해리.


]"당신의 존재 의미는 뭡니까. 오거스트 박사님? 이 모든 게 그저 꿈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케임브리지의 내 방에서 벌어진 빈센트와의 언쟁.

"우리는 또한 자네가 전쟁의 시련에서 구할 수도 있는 평행우주를 상정하기도 했지. 우리는 심지어 자네가 자네 자신으로서 앞서 말한 평화의 기쁨을 누릴 수도 있는 세계를 가정하기도 했어. 패러독스는 차치하고 말이야."

낙관적인 기분일 때는 내가 살았던 모든 생애에, 내가 한 모든 선택에 결과가 따른다고 믿는 쪽을 택한다. 한 사람의 해리 오거스트가 아니라 수많은 해리 오거스트들이라고, 평행우주의 삶을 넘나들며 깜박이는 정신이고 내가 죽으면, 내 행위들로 인해 변화되고 내 존재의 흔적을 품은 채로 세계는 나 없이 계속될 거라고 믿는다.

그러다가 내가 한 행위들을 본다. 아니, 아마 하지 않은 일들을 보게 되는 게 더 중요할 것이다. 그런 생각들이 떠오르면 우울해져서 아까 했던 가정은 부당하다고 치부하게 된다.

나의 존재 의미는 무엇인가?

세계를 바꾸거나 아예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거나, 둘 중 하나다. 세계를 바꾼다면 아주, 아주 많은 세계들이 달라질 것이다. 내가 살아가면서 하게 되는 선택들 하나하나가 모두 영향을 미칠테니까. 모든 행위에는 결과가 따르고 사랑과 슬픔에는 진실이 따르니까.

낯설기만 한 타인이 레닌그라드로 향하는 기차를 탄다.]

                              -p 227~228 중에서


누구나 살면서 자신의 '존재의미'를 묻는다. 특히나 해리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지 않을까. 왜,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

마지막까지 해리와 빈센트의 대결은 손에 땀을 쥐게 했다.


해리의 수많은 삶에서 해리는 리차드라는 선형적 삶을 사는 사람을 살해한다. 이 리차드라는 사람은 해리와 동거하던 한 여성을 잔인하게 죽였고, 또 다른 여성들을 죽인 사이코패스이다. 음 리차드를 만났을 때에 해리 또한 이 리차드를 뒤쫓다 리차드에게 살해당한다. 하지만 모든 삶을 기억하는 해리는 다음 생에서 리차드를 찾아내 여자들을 살해하기 전에 죽인다. 마치 마이너리티 리포트처럼, 범행을 저지르기 전에 범인을 죽이는 해리. 리차드는 해리에게 죽기 전에 이렇게 이야기한다. "제발, 살면서 잘못한 일도 없단 말이에요."

(물론 어느 몇 번째의 삶에서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리차드를 죽이지 못했는데 그 삶에서 리차드는 여러명을 죽이는 사이코패스의 삶을 산다.)

나는 여전히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과연 범행 전에 사람을 죽이는 것이 정당한지, 아닌지에 대해서.

우리 자신이 데스노트의 주인이 되어서는 안되지 않을까, 라고 막연하게 생각할 뿐이다. (물론 심정적으로는 범행을 미리 차단한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있겠는가, 라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책을 덮으면서 여러가지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준 책이었다.

타임루프?의 소설을 좋아한다면 정말로 강력 추천하는 바이다.

게다가 얼마나 섬세하게 감정의 선을 그렸는지 해리가 처한 상황이 눈 앞에 그려진 것처럼 생생했다. (클레어 노스의 책들이 더 많이 번역되어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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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방 1
카린 지에벨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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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린 지에벨을 알게 된 것은 '그림자'라는 소설을 읽으면서였다. 그 책을 읽으면서 참으로 독특한 느낌을 풍기는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나라마다 각기 자신들의 고유 정신?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것은 사람에게도 해당되지 않나 싶다.

서양사람들은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을 보면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솔직히 외모로는 구별이 되기 힘들다) 하지만 이 세 나라의 국민들은 아마도 영어를 사용하여(그것도 원주민처럼 유창하게 이야기한다고 가정한다면) 서로에 대해서 몇분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누가 어느 나라의 사람인지 금방 구별해내지 않을까? 그만큼 한 나라의 국민은 그만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카린 지에벨의 책 또한 그런 느낌을 풍긴다. 프랑스적인.

북유럽의 스릴러책들이 우울하고 어둡고 차갑다고 느끼는 것처럼.

프랑스 스릴러책들(알렉스의 작가 피에르 르메트르, 악의 영혼의 작가 막심샤탕 등-사실 기욤 뮈소가 대표적인 프랑스 장르소설가이지만 한 권도 읽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판타지적인 장르소설을 좋아하지 않아서인지. 이번에 브루클린의 소녀를 샀는데 아직 손을 못대고 있다.ㅡㅡ)은 냉정하고 동정(연민)이 없다. 게다가 가차없이 잔인?하다.

-뭐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고, 이 생각을 고정적으로 가지고 싶지는 않다. 내가 이 세상의 장르소설을 다 읽은 것은 아니니까. 아직도 여전히 해변가의 모래 한덩이만큼 읽지 않았던가...ㅡㅡ;;;

 

여튼 이 책 '독방'은 읽으면서 한번도 지루하지 않을 정도로 매순간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아마도 너무도 매력적인 캐릭터 '마리안'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마리안은 3세 때 부모가 비행기사고로 사망한 이후 조부모에게 맡겨진다. 무슨 귀족?가문인 것 같은데 체면을 중시하는 조부모는 마리안을 너무나 엄격하게 키운다. 너무 오냐오냐도 문제지만 사랑없이 엄격한 규율로 키우는 것도 문제인 것이다. 결국 마리안은 가출을 하고 토마라는 남자친구와 강도행각을 벌이다가 노인을 죽인다.-무쇠팔 마리안, 한대 쳤는데 이빨이 몽땅 나가다니. 도대체 그녀의 엄청난 힘이란, 상상을 초월한다. 사실 마리안은 분노조절장애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가라테를 배웠고, 가라테 주니어 챔피언까지 오르고, 그녀의 꿈은 가라테 사부일 정도로 무술실력이 뛰어나다-토마와 달아나다 교통사고로 토마는 죽고, 마리안은 자신을 추격하는 경찰 한명을 죽이고, 한명을 휄체어신세로 만든다. 결국 17세에 무기수(20년동안 가석방없는)가 된 마리안은 교도소 생활도 만만치 않게 치르게 된다.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는 마리안은 사고뭉치이지만 아무도 그녀의 '이유'를 듣지 않는다. 그저 그녀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살인자일 뿐인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4년이 흐른) 형사들이 찾아와 마리안에게 '자유'를 담보로 '살인'을 의뢰한다.

과연 마리안은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

자신의 자유를 담보로 또다시 '살인'을 저지를 수 있을까?

 

1권은 마리안의 교도소이야기라면 2권은 마리안의 사랑과 탈옥과 함께 형사들과의 이야기이다.

사실 1권은 별 네개반이었는데 2권을 덮는 순간 다섯개가 될 만큼 좋은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세상이 수많은 사람과 수많은 나라들로 이루어졌고, 특히 선진국 유럽은 복지도 좋고 살기 좋은 나라라는 동경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많은? 유럽의 책들을 읽거나 영화를 보면서 내가 너무 모르고 있거나 선입견을 가지고 유럽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 책 또한 나에게 그러했다.

인간이 사는 곳은 다 똑같다고.

비겁하고 야비한 권력은 자신의 야만을 감추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국민들의 눈을 가린다고.

어느 곳이든 그런 권력은 존재하며, 그런 권력은 참으로 오랫동안 살아남는다고.

그것은 감옥 안이든, 감옥 밖이든 똑같다는 사실. 그 사실이 너무도 가슴아팠다.

한번 잘못 꿴 단추는 끝까지 채우면 안된다. 빨리 알아차려서 다시 꿰매야지 끝까지 채우면 그만큼의 시간이 더 걸린다는 사실을 깨달아야한다.

 

이 책이 좋았던 가장 큰 이유는 주인공 '마리안'에 대한 설정이었다.

마리안의 감정, 이야기에는 어떠한 연민도 없었다. 담담하고, 냉정하게 그려진 마리안의 이야기(오히려 주변 인물들의 감정을 자세히 설명해 놓았다)는 그저 내가 그녀를 아무런 선입견도 없이 바라보게 만들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나는 '마리안'을 응원하고, '마리안'이 '자유'로워지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로린을 구하기로 선택한 건 내 자유죠.]

                                 -p489 독방 2권 중에서

 

 

"한 나라의 문명 정도를 판단하려면 그 나라의 감옥을 방문해보아야 한다."

                                      -도스토옙스키

 

-오래전 누군가는 인간으로서의 자유로운 삶을 위해 투쟁하다가 모진 고문과 협박, 한평남짓한 감옥에서 단 한번의 잘못된 재판으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자신이 원하고자 했던 모든 것을 가졌던 누군가는 '나라'와 '국민'을 소유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잘못된 생각임을 알려주기 위해 감옥에 보냈지만 여전히 그 누군가는 감옥이란 그저 잠시 머물다가는 호텔방처럼 생각해 커다란 방을 요구하고, 변기를 바꾸고, 벽지도 새로해서 자신의 거울방처럼 편안하게 생활하고 있다. 선한 인간들은 하나의 티끌때문에 자신을 내던지는데 악한 인간들은 결코 반성하지 않는다. 아마도 죽을때까지....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지 못할 것이다. 아니, 깨닫고 싶지 않기 때문에 모르는 것일지도.

(예전에 '실종느와르 m'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그 여섯번째 에피소드 '예고된 살인'은 사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가족 중 여대생의 마지막 대사가 나를 울렸었다. 저번주내내 나는 그 대사가 내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아빠가 죽은 것도 삼촌들이 죽은 것도 나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도저히 버틸 수도 살 수도 없었어요. 그런데 그들은 정말 잘못이 없을까요? 사람이 죽는데 아무도 귀 기울여 주지 않잖아요. 그래서 죽기 전에 제가 그릴 수 있는 마지막 그림을 그렸어요. 아빠의 죽음도, 아저씨들의 자살도 결국은 결국은 살인이니까 기억해 주세요. 이 죽음들을... 이제 죽지 말아요."

이제 더 이상 선한 이들이 '죽지'않기를, '죽음'에 이르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내가 너무도 아끼고 사랑했던-한번도 그대를 직접 만나 이야기는 나누지는 못했지만- 우리 회찬씨를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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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의 속삭임 원더그라운드
존 코널리 지음, 전미영 옮김 / 오픈하우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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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코널리의 '모든 죽은 것'을 읽고서 "아, 대박!"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임팩트도 컸고, 재미있었다. 스릴러와 추리와 오컬트가 뒤섞인 한편의 음산한 공포스릴러영화를 본 듯했다.

알고 보니 '모든 죽은 것'은 존 코널리의 데뷔작이며 찰리 파커(주인공 이름) 시리즈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이 시리즈가 인기가 없을 것 같았는지, 아니면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 모르나 이 시리즈는 순서대로 출간되지 않았다.

나는 '무언의 속삭임'이 두번째로 출간되었기에 당연히 이 시리즈의 두번째라고 생각했다.(아니 사실 정확하게 두번째는 아니더라도 한참 후의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찰리 파커 시리즈 9번째라니, 너무 하지 않은가?!

그 후에 다크 할로우와 킬링 카인드가 출간되었는데 다크 할로우는 시리즈 2번째였고(아, 정말이지. 미리 알았더라면 이것부터 읽는 거였는데 ㅜㅜ), 킬링카인드는 시리즈 세번째 작품이다.

가끔 국내에 출간된 시리즈물이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

사실 넬레 노이하우스의 '백설공주에게 죽음을'도 마찬가지였다. 이것도 시리즈 중 재밌는 것을 골라서 먼저 출간했는데 너무 인기가 좋았던지 나중에 시리즈가 모두 출간된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요네스뵈의 '해리홀레 시리즈'도 마찬가지이다. '스노우맨'은 영화화가 될 정도로 인기가 있어서 이것먼저 출간되었는데 나중에 시리즈가 출간된 케이스이다. 그러다보니 사실 1년에 한권이나 두권 정도 나오는 시리즈물들은 맥락을 따라잡기가 쉽지는 않다.

이번의 '무언의 속삭임' 또한 '모든 죽은 것'에서 딸과 아내를 잃은 찰리 파커는 결국 범인을 잡은 것 아니었나?라고 생각했는데 '무언의 속삭임'에서는 여전히 그 범인을 쫓고 있는 것이었다.-그렇다면 '모든 죽은 것'에서의 범인은 진범이 아니었나?! 게다가 새로운 캐릭터들도 보이고.(하지만 책 속에서는 그전부터 아는 사이...ㅜ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너무 재미있었고, 흥미로웠다.

여전히 매력적인 찰리파커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커플? 앙헬과 루이스의 등장도 좋고.-앙헬과 루이스를 보면 로버트 크레이스의 엘비스 콜 시리즈에 나오는 조 파이크가 생각난다. ^^

 

'무언의 속삭임'은 이라크전쟁의 군인들의 이야기가 주 내용인 만큼 우울하고, 어둡고, 씁쓸하다.

모든 전쟁이 그러할지도 모르지만 이라크 전쟁도 베트남 전쟁도(그러고보니 미국이 일으킨 전쟁은 하나같이 명분도 실리도 없는 그저 희생자만이 넘쳐나고, 증오만 키운 전쟁이 아닌가한다. 결국 무기상만 배부른, 혹은 권력자에게만 좋은 전쟁이 아닐까?!) 결국 일어나지 말아야 할 전쟁이었다. - 더이상의 이 지구상에 전쟁이 없기를...

 

책 속의 여성이 찰리 파커에게 이런 말을 한다. 그들은 모두 아프다고.

겉모습이 멀쩡해보인다고 해서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라는 말이 맞다. 또한 전쟁은 모두에게 상처를 남긴다. 살아남은 자든 죽은 자든.

 

 

존 코널리의 '찰리파커 시리즈'는 사설탐정으로 일하는 찰리 파커의 이야기이지만 과학적이거나 분석적이거나 논리적이라기보다는 조금은 오컬트적인 느낌이 있는 시리즈이다. 나오는 인물들의 '죽음' 또한 그러하다.

그래서 이런 느낌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즐겁게 읽을 듯.

 

여전히 무더운 이 여름밤, 으스스한 느낌을 받고 싶다면 이 시리즈를 추천한다. ^^ 나 또한 나머지 출간작들을 여름안에 읽을 계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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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완벽에 가까운 결혼
미셸 리치먼드 지음, 김예진 옮김 / 시공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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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결혼 생활을 위한 아주 특별한 모임 '협정'에 가입하시겠습니까?]


이제 막 결혼한 앨리스와 제이크는 피니건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선물을 받게 되는데 바로 '협정' 가입 신청서였다. 이 '협정'은 결혼생활을 행복하고 온전하게 유지하는 것을 바탕으로 둔 계약인데(예를 들어 파티에 부부동반으로 의무적으로 참석해야하며, 한달에 한번 서로에게 선물을 주어야하며, 여행 또한 주기적으로 가야하며, 상대방의 전화를 반드시 받아야하며 등등. 엄청난 두께의 보험약관같은 '협정' 메뉴얼 책자가 첨부되어있다) 앨리스와 제이크는 당연히 자신들의 결혼생활을 행복하고 완전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라는데 반대할 이유가 있었겠는가. 당근 유쾌하게 '협정'회원이 되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협정'은 그들의 생활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가정일에 소홀히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겠는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가?) '협정'의 규칙에 자신들의 생활 자체가 구속되는 것까지는 감수한다고 하더라도 만약 '협정'의 규칙을 지키지 못할 경우에 제재(벌)를 받기까지 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뒤늦게 앨리스와 제이크는 자신들이 이상한 곳에 발을 내딛뎠다는 것을 깨닫지만 '협정'은 마치 조폭의 세계처럼 한번 들어가기는 쉬워도 나오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두려워하며 '협정'을 벗어나기 위해 고분군투하게 된다.


과연 앨리스와 제이크는 '협정'을 벗어날 수 있을까?

과연 '협정'은 진실로 완벽한 결혼 생활을 위한 가이드인가?


생각 외로 엄청난 책의 두께(총 607페이지)에 놀랬고, 의외로 빨리 읽혀서 더 놀랬다. ^^


주인공 제이크는 친구들과 함께 상담사무실을 운영하는 상담사이다. 그래서 그런지 제이크는 시종일관 자신의 감정, 혹은 행동을 분석하고 정리한다. 또한 타인의 행동과 감정, 말도 분석하고 정리해서 이해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제이크 또한 완전하지 못한 불완전한 인간이기 때문에 그 또한 항상 모든 것을 이해하지 않는다. 특히 자신의 아내 앨리스에 관해서는 집착하고, 질투하는 평범한 남편에 불과하다. 그의 인간적인 모습은 책 곳곳에서 발견되는데 위선적인 인간이라기보다는 솔직한 사람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너무 사랑하는 아내 앨리스를 독차지 하고 싶다는 욕망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아내 앨리스가 자유롭게 살아기길 원하는 마음이 수시로 부딪친다. 아마도 인간이기 때문이 아닐까? 언제나 감정은 동전의 양면같은 성질을 띄기 때문에. ^^;;;)

가끔 제이크는 너무 책이나 통계, 이론 따위를 늘어놓아 자신들의 결혼생활이나 자신에게 상담을 하는 부부들에게 대입하는데 그것은 어리석어 보였다.

통계라는 것이 '참'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마치 혈액형 성격처럼 말이다. 단 몇백명?만 조사해서 통계낸 성격이 무슨 모든 사람들을 구분해내는 부적처럼 쓰이는 것이 말이 되는가.)

사람의 지문이 다르듯이(일란성 쌍둥이도 DNA는 같아도 지문은 다르다고 하지 않는가?) 성격 또한 다른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타인을 이해하는 것에 지독히도 인색하다.(반대로 타인은 자신을 이해하는 것에 이타적이기를 원하고)

부부 혹은 연인관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20~30년 혹은 더 많은 시간을 서로 다른 환경에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들 대부분의 헤어짐의 이유를 대라면 '성격차이'를 이야기한다. 아니 당연히 성격이 차이가 나지 똑같으면 그건 인간이 아니라 그저 인간을 흉내낸 자신의 입맛대로 만든 로봇과 다를바 없지 않을까.

결국 결혼이나 연인관계(개인적으로 가족관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를 오래도록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에 대한 성실함과 이해도에 따라서 비례한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협정' 또한 이러한 '선의'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 사람, 두 사람, 여러 사람들이 모이면서 '협정'의 규칙은 점점 늘어났을 것이고, 서로의 주장들이 마찰을 빚었을 것이다. (모임은 처음은 선의로 모이다가 어느 순간 덩치가 커지면 선의를 갖지 않은 사람들도 들어오게 되고 결국 엇나가게 되고 무너지게 만든다.)


[나는 음악을 사랑하지만 어머니가 늘 말했듯이 음치였다. 그 소리를 듣고 있자니 내가 마치 동네 사람들의 사적인 이야기를 슬그머니 엿듣는 외국인이 된 듯 소외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듣고 싶었다. 앨리스가 이렇게까지 즐겁게 음악을 하고 있는데 그것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들의 목소리는 너무나 잘 어울렸고 앨리스의 목소리는 남자의 목소리 주위를 자전하다가 정확한 순간 함께 어우러져 완벽한 화음을 이루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여기 이 자리, 계단에 앉아 노래가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것을 듣고 있으니 눈물이 고였다.

나는 이 순간 결혼에 대해 최근 몇달 동안 했던 생각보다 훨씬 더 깊이 생각했다. 도대체 결혼이라는 게 뭘까? 우리가 어렴풋이 생각하던 보편적인 결혼의 개념은 두 명이 모여서 함께 사는 것이다. 하지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 사람 다 그동안 쌓았던 삶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 아닐까? 자연스럽게 예전의 자기 자신을 버려야만 하는 걸까? 한때는 우리에게 몹시도 중요했던 무언가를 결혼의 신에게 제물로 바쳐야 하는 게 아닐까?]

                                         -p 311 중에서 발췌


철학 수업 중에 이런 이야기들을 나눈 적이 있었다.

나는 '어제의 나'가 아니라 '오늘의 나'이다.

(선생님 중의 한 분이 교수실 전화기 음성대기에 이렇게 녹음하셨다. -안녕하세요. 저는 녹음된 OOO입니다. 삐~소리가 나시면....-)

논리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1초전의 우리가 아닌 것이다. ^^;;;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또한 과거의 우리가 우리가 아닌 것도 아니고. ^^;;;

여튼 과거의 자신도 현재의 자신을 형성하긴 하지만 새로운 무언가?가 현재의 자신을 존재하게 만든다라는 이야기인데, 결국 결혼이나 동거는 우리를 서로 오랜 시간을 타인으로 살다가 같은 공간에 같은 시간을 공유하게 된 동반자로서의 '자신'을 새롭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이 책에서도 그렇지만 제이크와 앨리스가 신중했든 신중하지 못했든 간에 '협정'을 선택한 것은 자신들의 의지였다. 그리고 마지막 선택도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의지였듯이.


오랜만에 '완벽'과 '결혼'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된 책이었다. 물론 재미있게 읽었고. (약간의 아쉬움은 너무나 뻔한? 결말에 반전은 없었다. 물론 끝부분에 드러난 반전은 조금 급하게 마무리진 듯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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