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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오거스트의 열다섯 번째 삶
클레어 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장르소설 중에서 내가 가장 친하지 않은 것은 판타지와 sf 쪽이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는데 장르소설만 줄창 읽게 된지도 10년이 훌쩍 지나갔음에도 아직도 읽을 스릴러물이 넘쳐나서 그런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 sf 영화쪽도 좋아하는 편이라 읽을만 한데도 인연이 없었던 것인지 잘 접하질 못했다. 그런데 올해는 왠지 이쪽과 친해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한달 전쯤 매트 헤이그의 '시간을 멈추는 법'(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sf물은 아니지만) 을 읽게 되면서 이쪽에 훅, 쏠리는 감각이 생겼고, 이번에 클레어 노스의 '해리 오거스트의 열다섯 번째 삶'을 읽으면서 이쪽의 책들을 마구마구 읽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해졌다.
그만큼 좋았다는 이야기.
한순간도 지루하지 않았다. 일하고 밥먹고, 자야하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 하지만 일하고 밥먹고, 자야한다.
[해리 오거스트는 1919년 1월 1일, 기차역 화장실에서 태어났다. 하녀인 어머니 리사는 해리를 낳다 사망했고, 그녀를 강간한 주인 로리 헐너의 가문은 해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해리는 헐너 가문의 과리인 부부에게 입양돼 성장했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1989년 70세의 나이로 외롭게 숨을 거둔다. 여기까지는 흔히 볼 수 있는 인생이었다. 그러나 1919년 1월 1일, 다시 기차역 화장실에서 태어났을 때, 해리는 예전 삶의 기억을 모두 갖고 있었다. 어린아이 몸에 어른 정신을 가지고 있는 마치 할머니가 비키니를 입은 것과 같았다. 해리는 결국 정신병원으로 보내지고, 거기서 자살하고 만다. 세번째 삶부터는 달랐다. 그는 이제 앞으로 닥쳐올 일을 알고, 이에 대비할 수 있었다. 그는 반복되는 인생의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세 번째 삶에서 종교를, 네 번째 삶에서 의학을, 여섯 번째 삶에서 물리학을 탐구한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고, 미래를 아는 해리의 능력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게다가 열한 번째 죽음을 앞두고, 파란색 교복을 입은 일곱 살 소녀가 나타나 이렇게 말한다. "세계가 끝나고 있어요. 이 메시지는 아이에게서 어른으로, 아이에게서 어른으로, 천 년 후 미래의 세대로부터 거슬러 전달된 거예요. 세계가 끝나고 있고 우리는 종말을 막을 수 없어요. 그러니까 이제 박사님께 달려 있어요." 소녀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모르는 채로 해리는 열한 번째의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이제 열두 번째 삶부터 해리의 인생은 극적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세계 종말의 음모란 대체 무엇인가?]
-이 책의 표지에 있는 줄거리 발췌
대부분의 인류는 선형적인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해리와 같은 순환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왜?! 라는 질문을 해리는 끊임없이 던지지만 해답을 구할 수 없다. 그저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돕고, 혹여나 이 세상에 악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만약 내가 해리와 같은 삶을 산다면 얼마나 정신적으로 괴로울까, 라는 생각을 한다. 다행히 선형적인 삶을 사는 나는 안도한다.
여러번 삶을 산다면 지루하거나 할일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보면 매번 다른 삶을 살려고 하는 해리를 보니 너무 바쁘게, 치열하게 사는 것 같아 안쓰럽기도 했다.
해리의 여러 삶의 이야기와 갈등, 그리고 숙적? 빈센트와의 대결은 숨가쁘게 달려간다. 600페이지가 넘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할 틈이 없었다. 빈센트와의 만남이 해리의 삶 또한 바꾸어놓았다.
세계를 바꾸려는 빈센트와 세계를 그저 흘러가는 물처럼 바라보려는 해리.
]"당신의 존재 의미는 뭡니까. 오거스트 박사님? 이 모든 게 그저 꿈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케임브리지의 내 방에서 벌어진 빈센트와의 언쟁.
"우리는 또한 자네가 전쟁의 시련에서 구할 수도 있는 평행우주를 상정하기도 했지. 우리는 심지어 자네가 자네 자신으로서 앞서 말한 평화의 기쁨을 누릴 수도 있는 세계를 가정하기도 했어. 패러독스는 차치하고 말이야."
낙관적인 기분일 때는 내가 살았던 모든 생애에, 내가 한 모든 선택에 결과가 따른다고 믿는 쪽을 택한다. 한 사람의 해리 오거스트가 아니라 수많은 해리 오거스트들이라고, 평행우주의 삶을 넘나들며 깜박이는 정신이고 내가 죽으면, 내 행위들로 인해 변화되고 내 존재의 흔적을 품은 채로 세계는 나 없이 계속될 거라고 믿는다.
그러다가 내가 한 행위들을 본다. 아니, 아마 하지 않은 일들을 보게 되는 게 더 중요할 것이다. 그런 생각들이 떠오르면 우울해져서 아까 했던 가정은 부당하다고 치부하게 된다.
나의 존재 의미는 무엇인가?
세계를 바꾸거나 아예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거나, 둘 중 하나다. 세계를 바꾼다면 아주, 아주 많은 세계들이 달라질 것이다. 내가 살아가면서 하게 되는 선택들 하나하나가 모두 영향을 미칠테니까. 모든 행위에는 결과가 따르고 사랑과 슬픔에는 진실이 따르니까.
낯설기만 한 타인이 레닌그라드로 향하는 기차를 탄다.]
-p 227~228 중에서
누구나 살면서 자신의 '존재의미'를 묻는다. 특히나 해리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지 않을까. 왜,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
마지막까지 해리와 빈센트의 대결은 손에 땀을 쥐게 했다.
해리의 수많은 삶에서 해리는 리차드라는 선형적 삶을 사는 사람을 살해한다. 이 리차드라는 사람은 해리와 동거하던 한 여성을 잔인하게 죽였고, 또 다른 여성들을 죽인 사이코패스이다. 음 리차드를 만났을 때에 해리 또한 이 리차드를 뒤쫓다 리차드에게 살해당한다. 하지만 모든 삶을 기억하는 해리는 다음 생에서 리차드를 찾아내 여자들을 살해하기 전에 죽인다. 마치 마이너리티 리포트처럼, 범행을 저지르기 전에 범인을 죽이는 해리. 리차드는 해리에게 죽기 전에 이렇게 이야기한다. "제발, 살면서 잘못한 일도 없단 말이에요."
(물론 어느 몇 번째의 삶에서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리차드를 죽이지 못했는데 그 삶에서 리차드는 여러명을 죽이는 사이코패스의 삶을 산다.)
나는 여전히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과연 범행 전에 사람을 죽이는 것이 정당한지, 아닌지에 대해서.
우리 자신이 데스노트의 주인이 되어서는 안되지 않을까, 라고 막연하게 생각할 뿐이다. (물론 심정적으로는 범행을 미리 차단한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있겠는가, 라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책을 덮으면서 여러가지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준 책이었다.
타임루프?의 소설을 좋아한다면 정말로 강력 추천하는 바이다.
게다가 얼마나 섬세하게 감정의 선을 그렸는지 해리가 처한 상황이 눈 앞에 그려진 것처럼 생생했다. (클레어 노스의 책들이 더 많이 번역되어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