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방 1
카린 지에벨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카린 지에벨을 알게 된 것은 '그림자'라는 소설을 읽으면서였다. 그 책을 읽으면서 참으로 독특한 느낌을 풍기는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나라마다 각기 자신들의 고유 정신?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것은 사람에게도 해당되지 않나 싶다.

서양사람들은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을 보면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솔직히 외모로는 구별이 되기 힘들다) 하지만 이 세 나라의 국민들은 아마도 영어를 사용하여(그것도 원주민처럼 유창하게 이야기한다고 가정한다면) 서로에 대해서 몇분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누가 어느 나라의 사람인지 금방 구별해내지 않을까? 그만큼 한 나라의 국민은 그만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카린 지에벨의 책 또한 그런 느낌을 풍긴다. 프랑스적인.

북유럽의 스릴러책들이 우울하고 어둡고 차갑다고 느끼는 것처럼.

프랑스 스릴러책들(알렉스의 작가 피에르 르메트르, 악의 영혼의 작가 막심샤탕 등-사실 기욤 뮈소가 대표적인 프랑스 장르소설가이지만 한 권도 읽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판타지적인 장르소설을 좋아하지 않아서인지. 이번에 브루클린의 소녀를 샀는데 아직 손을 못대고 있다.ㅡㅡ)은 냉정하고 동정(연민)이 없다. 게다가 가차없이 잔인?하다.

-뭐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고, 이 생각을 고정적으로 가지고 싶지는 않다. 내가 이 세상의 장르소설을 다 읽은 것은 아니니까. 아직도 여전히 해변가의 모래 한덩이만큼 읽지 않았던가...ㅡㅡ;;;

 

여튼 이 책 '독방'은 읽으면서 한번도 지루하지 않을 정도로 매순간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아마도 너무도 매력적인 캐릭터 '마리안'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마리안은 3세 때 부모가 비행기사고로 사망한 이후 조부모에게 맡겨진다. 무슨 귀족?가문인 것 같은데 체면을 중시하는 조부모는 마리안을 너무나 엄격하게 키운다. 너무 오냐오냐도 문제지만 사랑없이 엄격한 규율로 키우는 것도 문제인 것이다. 결국 마리안은 가출을 하고 토마라는 남자친구와 강도행각을 벌이다가 노인을 죽인다.-무쇠팔 마리안, 한대 쳤는데 이빨이 몽땅 나가다니. 도대체 그녀의 엄청난 힘이란, 상상을 초월한다. 사실 마리안은 분노조절장애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가라테를 배웠고, 가라테 주니어 챔피언까지 오르고, 그녀의 꿈은 가라테 사부일 정도로 무술실력이 뛰어나다-토마와 달아나다 교통사고로 토마는 죽고, 마리안은 자신을 추격하는 경찰 한명을 죽이고, 한명을 휄체어신세로 만든다. 결국 17세에 무기수(20년동안 가석방없는)가 된 마리안은 교도소 생활도 만만치 않게 치르게 된다.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는 마리안은 사고뭉치이지만 아무도 그녀의 '이유'를 듣지 않는다. 그저 그녀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살인자일 뿐인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4년이 흐른) 형사들이 찾아와 마리안에게 '자유'를 담보로 '살인'을 의뢰한다.

과연 마리안은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

자신의 자유를 담보로 또다시 '살인'을 저지를 수 있을까?

 

1권은 마리안의 교도소이야기라면 2권은 마리안의 사랑과 탈옥과 함께 형사들과의 이야기이다.

사실 1권은 별 네개반이었는데 2권을 덮는 순간 다섯개가 될 만큼 좋은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세상이 수많은 사람과 수많은 나라들로 이루어졌고, 특히 선진국 유럽은 복지도 좋고 살기 좋은 나라라는 동경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많은? 유럽의 책들을 읽거나 영화를 보면서 내가 너무 모르고 있거나 선입견을 가지고 유럽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 책 또한 나에게 그러했다.

인간이 사는 곳은 다 똑같다고.

비겁하고 야비한 권력은 자신의 야만을 감추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국민들의 눈을 가린다고.

어느 곳이든 그런 권력은 존재하며, 그런 권력은 참으로 오랫동안 살아남는다고.

그것은 감옥 안이든, 감옥 밖이든 똑같다는 사실. 그 사실이 너무도 가슴아팠다.

한번 잘못 꿴 단추는 끝까지 채우면 안된다. 빨리 알아차려서 다시 꿰매야지 끝까지 채우면 그만큼의 시간이 더 걸린다는 사실을 깨달아야한다.

 

이 책이 좋았던 가장 큰 이유는 주인공 '마리안'에 대한 설정이었다.

마리안의 감정, 이야기에는 어떠한 연민도 없었다. 담담하고, 냉정하게 그려진 마리안의 이야기(오히려 주변 인물들의 감정을 자세히 설명해 놓았다)는 그저 내가 그녀를 아무런 선입견도 없이 바라보게 만들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나는 '마리안'을 응원하고, '마리안'이 '자유'로워지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로린을 구하기로 선택한 건 내 자유죠.]

                                 -p489 독방 2권 중에서

 

 

"한 나라의 문명 정도를 판단하려면 그 나라의 감옥을 방문해보아야 한다."

                                      -도스토옙스키

 

-오래전 누군가는 인간으로서의 자유로운 삶을 위해 투쟁하다가 모진 고문과 협박, 한평남짓한 감옥에서 단 한번의 잘못된 재판으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자신이 원하고자 했던 모든 것을 가졌던 누군가는 '나라'와 '국민'을 소유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잘못된 생각임을 알려주기 위해 감옥에 보냈지만 여전히 그 누군가는 감옥이란 그저 잠시 머물다가는 호텔방처럼 생각해 커다란 방을 요구하고, 변기를 바꾸고, 벽지도 새로해서 자신의 거울방처럼 편안하게 생활하고 있다. 선한 인간들은 하나의 티끌때문에 자신을 내던지는데 악한 인간들은 결코 반성하지 않는다. 아마도 죽을때까지....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지 못할 것이다. 아니, 깨닫고 싶지 않기 때문에 모르는 것일지도.

(예전에 '실종느와르 m'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그 여섯번째 에피소드 '예고된 살인'은 사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가족 중 여대생의 마지막 대사가 나를 울렸었다. 저번주내내 나는 그 대사가 내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아빠가 죽은 것도 삼촌들이 죽은 것도 나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도저히 버틸 수도 살 수도 없었어요. 그런데 그들은 정말 잘못이 없을까요? 사람이 죽는데 아무도 귀 기울여 주지 않잖아요. 그래서 죽기 전에 제가 그릴 수 있는 마지막 그림을 그렸어요. 아빠의 죽음도, 아저씨들의 자살도 결국은 결국은 살인이니까 기억해 주세요. 이 죽음들을... 이제 죽지 말아요."

이제 더 이상 선한 이들이 '죽지'않기를, '죽음'에 이르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내가 너무도 아끼고 사랑했던-한번도 그대를 직접 만나 이야기는 나누지는 못했지만- 우리 회찬씨를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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