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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늑대의 피
유즈키 유코 지음,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8월
평점 :
오랜만에 일미 느와르 경찰소설을 읽었다.
읽는내내 어둠이 추적추적 내리는 뒷골목에서 야쿠자들과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는 오가미가 눈에 그려지는 듯했다.
구레하라 동부서 수사 2과 반장 오가미 쇼고는 폭력단을 단속하는 형사이다. 하지만 그는 기존의 형사들과는 달리 자신만의 스타일로 수사를 하고 온갖 소문을 달고 다닌다. 심지어는 야쿠자들과도 상당히 친해보이는데. 그의 밑으로 배속된 히오카 슈이치는 자신의 가치관마저 흔드는 오가미 쇼고에게 반감과 동시에 신뢰를 보낸다.
하지만 폭력단 계열 금융회사 직원의 실종사건이 큰 사건으로 번지자 금방이라도 구레하라 시는 야쿠자들의 항쟁으로 인해 민간인들까지 휘말릴 가능성이 커져가는데, 과연 고독한 늑대 오가미는 이 사태를 피해없이 마무리할 수 있을까?
'필요악'
욕망에 가득한 인간들이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더러운 일들을 하는 인간들이 존재하는 것일까?
인간이 만들었으면서도 결국 그 존재가 인간을 위험에 빠지게 하거나 통제하지 못해서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결국 끌려가는 상황이 우리에게는 얼마나 많은가.
["자신의 밥줄을 완전히 끊어버리겠다고? 폭력단이 사라지면 우리 밥줄도 끊겨."
억지 논리다. 히오카는 입술을 깨물었다.
오가미는 담배를 피우면서 말을 이었다.
"폭력단은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아. 인간은 말이지. 밥을 먹으면 똥을 눠야 해. 밑을 닦을 휴지가 필요하다는 말이지. 그러니까 폭력단은 화장실 휴지 같은 거야."
히오카는 할 말을 잃었다. 기껏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저급한 농담 따윈 듣고 싶지 않았다.
오가미가 술병을 들어 히오카의 잔을 채웠다.
"우리의 임무는 야쿠자가 민간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감시하는 일이야. 나머지는 도를 넘는 녀석들을 없애기만 하면 돼."]
- p 213~214 중에서
내가 중,고등학교때 홍콩느와르 영화가 붐이었다. 우리나라의 첫 컬트현상이라고 할 정도로(길거리엔 이쑤시개를 입에 물고 바바리코트를 휘날리며 걷는 이가 얼마나 많았던가?) 홍콩느와르 영화는 대부분 몇번씩 보았을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조금 비뚤어진 성격(지금은 많이 둥글둥글해졌다) 탓에 유일하게 본 홍콩느와르 영화가 열혈남아 하나였다. 그 뒤 우리나라에서도 조폭?영화가 마구 만들어졌고, 일본문화가 개방되면서 일본 야쿠자 영화도 상영했다. 뭐 그전에 일본 야쿠자 만화도 등장했지만서도.
여튼 나는 기본적으로 '폭력'을 싫어한다.
그 '폭력'을 정당화하는 '의리'라는 말에도 진절머리를 낸다.
10층에서 떨어져 죽으나 15층에서 떨어져 죽으나 죽는 것은 매한가지인 것처럼 말이다.
그 어떠한 '폭력'도 정당화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이가 점점 들어가면서 내가 생각하는 '폭력'의 개념을 달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무장항쟁단체를 결성해 일본에 대항했던 수많은 우리나라의 독립군들의 모습을 일본의 우익단체나 우리나라의 몰상식한 인간들이 폭력단체로 깎아내리는 것처럼.
모든 '폭력'이 '잘못'인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그 '폭력'이 '무엇'을 '지키려'하는 것인지에 따라서 달라진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말이다. 많은 성인들이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키려고 했던 것을 '비폭력'으로 지켜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이 그것을 '폭력'으로 지켰다고 해서 그 일이 비난받을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말'은 '인간'에게만 통용되는 것이다.)
좀 거창하게 되었지만 나는 이 책 '고독한 늑대의 피'를 읽으면서 자신만의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 더러운 일도 서슴치 않는다면 그것을 무엇이라 말해야 할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참으로 위험한 다리를 건너는 것이다.(예를 들어 전세계적으로 내부고발자는 '배신자'로 낙인찍혀 어려운 생활을 한다. 하지만 내부고발자는 대부분 사회와 나라와 사람들을 위해서 내부고발을 한다. 오히려 영웅 대접을 받아야 할 그들이 과연 '배신자'인가?!)
이 책은 야쿠자에 대해서도, 경찰에 대해서도 그 어떤 연민과 동정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읽고 난 후에 오가미 반장이 너무 그리웠다.
이번 년도에 읽은 일미 중 최고의 작품이 아닌가 싶다. (물론 개인적으로 ^^;;;)
스산한 가을날 고독한 늑대 오가미 반장을 만나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