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 하버드 법대, 젊은 법조인이 그린 법정 실화
알렉산드리아 마르자노 레즈네비치 지음, 권가비 옮김 / 책세상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대학때 한 선배가 '터부'에 관한 논문을 쓴 적이 있었다. 그때 이런저런 터부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예를 들어 근친이 어느 시기에 금기시되었고, 왜 되었는가? 하는)

예전에는 허용되었던 것들이 근대, 현대로 넘어오면서 많은 것들이 금기시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예전에 허용되었던 많은 터부들이 아무런 조건없이 허용되었던 것은 아니다.

인류는 법 이전부터 '윤리'라는 가치관을 가지고 생활해왔다.(기본적으로 섹스는 상호간의 합의에 의해서 행해져야 한다. 그 외의 모든 것은 불법이며 범죄인 것이다. 한 마디로 당신에게 있어서 '사랑'?!이었는지 모르지만 상대방은 'NO'인 것이다. 게다가 어린아이인 경우에는 예스든 노든 그것은 중요치 않다. 그 어떠한 성적 행위도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어린 아이라고 가정했을때 그런 성적인 위협을 받았다면 그것이 정당화될 수 있나 말이다. 그 어떠한 경우에든 어린아이(정신적으로 어린아이인 경우에도 포함됨)에게 행하는 모든 성적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


어제 본 인터넷 기사에 '조두순'이 곧 풀려난다는 이야기에 다시 한번 많은 이들이 그의 출소를 반대하는 청원을 올리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알기로는 우리나라의 소아성애범죄는 범행보다는 범죄 이후의 문제가 더 심각해보인다. 법적인 처벌의 수위-기본적으로 성폭행에 관한 법률이 외국에 비해 열악한 편이다-가 낮고 범죄 예방 차원의 방법-화학적 거세 또는 생물학적 거세- 또한 미미하다. 그저 전자발찌(그것도 쉽게 끊고 도망칠 수 있는)를 차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태반인 것으로 알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소아성애범죄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는 것으로 알고 있다.(경제적으로 낙후하고 열악한 나라의 경우에는 아이들을 사고 팔기도 하고, 아직 어린아이들이 성매매를 불법으로 성행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알려지지 않은 그런 불법적인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인터넷의 어두운 곳에서는 아이들의 사진들(성적인 용도로 쓰이는)이 거래되고 있다.

어쨌든 이런 범죄는 잡을 수 있고, 예방할 수 있는 방법들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우리 옆에 있다.

예전에 성폭력에 관한 책을 읽다가 너무 놀랐던 사실 중 하나가 많은 성폭력이 친족에 의해 행해진다는 사실이었다.

이 책의 저자 또한 어린 시절에 할아버지로 부터 성적학대를 당한 기억이 있다. 참으로 서글펐던 이유는 저자의 부모가 자신의 부모가 행한 폭력을 아무 일도 없던 일로 해버렸다는 사실이었다.(자신의 아이가 학대당한 사실을 알고 행한 일은 그저 학대한 당사자와 학대당한 아이가 둘만 있지 않게 하는 일밖에 없었다) 그 일로 인해 저자는 오랫동안 그 일이 트라우마가 되어 섭식장애를 앓게 되었고, 마침내 자신만이 해결해야만 하는 일임을 깨닫고는 할아버지를 찾아가 당신이 행한 일들을 고발한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대답은 어처구니 없었다.

용서하라는 말도, 죽이라는 말도 없이 그저 그래서 어쩌라는 말이냐, 라며 자신 또한 자신의 부모에게 당하고 살았다라는 말로 얼버무린다.


이 책은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법조인 부부(저자의 아버지, 어머니 모두 변호인이다) 사이에서 태어난 한 아이가 자신의 할아버지에게 성적학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부부는 그 죄를 감춘다는 사실이었다(체면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아무리 그래도 그들의 부모이기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저자는 오랫동안 감춰왔던 일들을 들추고, 캐내고, 인정하며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나아가려고 한다.

그 계기는 저자 또한 법조인으로 첫발을 내딛으며 본 비디오때문이었다. (그 비디오는 한 남성이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인터뷰였다.)

리키 랭글리.

그는 어린 아이를 좋아하는 소아성애자로 몇번의 아동추행으로 감옥에 갔었다. (그는 간수에게도 호소한다. 자신을 석방하지 말아달라고. 감옥 밖을 나가면 자신의 의지로 그 어떠한 것도 막을 수 없다면서) 하지만 형기를 채우고 출소했고, 그는 작은 마을에 세들어 조용히 살다가 결국 이웃집 아이를 살해하기에 이른다. (처음엔 사형을 언도받았으나 나중에는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저자는 리키 랭글리의 비디오 인터뷰를 보고는 그의 생애와 가족, 그리고 피해자의 이야기까지 10년에 걸쳐 읽고 조사한다.

그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와 함께 엮은 책이 바로 이 책 '나는 기억하지 못합니다'이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것은 소아성애자에 대한 이해가 아니다.

어떠한 첨부없이 기록하고 이야기함으로써 사실 그대로를 보여준다. 판단은 개인몫으로 남겨둔다.

(개인적으로는 소아성애자에게는 화학적 거세와 생물학적 거세를 동시에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방법밖에 없지 않을까? 피해자 아동인 경우에는 생명을 잃을 뿐만 아니라 운좋게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정신적인 트라우마로 인해 평생 죽음에 이르는 고통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성폭력은 정신적 살인이라고 이야기한다.)


사실 그대로의 기록이야말로 어쩌면 우리가 누군가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닌가 한다.



[그가 내게로 걸어오는 동안 나는 기다리면서 혀로 아래 입술을 핥았다. 오래된 습관이었다. 그렇게 하고 입술이 젖은 걸 확인했다. 그리고는 늘 그러듯이 깜짝 놀라 몸을 움츠렸다. 내가 무심결에 이런 행동을 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이건 할아버지가 그림 그리는 데 집중할 때 하던 행동이었다. 할아버지가 내게 그림 그리는 법을 가르칠 때 그런 행동을 하는 걸 보았다. 나는 그 기억을 내 몸 속 어딘가 내가 조절할 수 업는 곳, 그 기억이 어디 있는지 찾아내어 편집할 수조차 없는 곳에 지니고 있다. 나는 여전히 그 기억을 잘라내고 싶다. 여전히 그 기억에서 자유롭고 싶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알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방식으로 매여 있는 몸이라는 사실을. 사람은 자기를 자기로 만든 경험을 지니고 다닌다.

내 맞은 편에 리키가 앉아 있다. 오늘의 과제, 이 만남의 과제, 내 안에 있던 이 이야기를 시작하게 한 과제. 그 과제를 끝낼 길은 이 말밖에 없다. 내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저 사람은 한 인간이다. 그는 절대로 이것 아니면 저것, 어느 한 가지로만 규정될 수 없다. 이야기만 그렇게 될 수 있다. 사람은 절대로 아니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 과거에 등 돌리는 대신, 과거에서 도망가는 대신, 오히려 손을 내밀었다. 과거에게 말을 걸었다. '그렇다면 같이 가자. 내가 사는 동안엔.'

"안녕하세요, 리키." 내가 말했다.]

                                                                                           -p 492~493 중에서 발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행복의 히나타 식당
우오노메 산타 지음, 한나리 옮김 / 애니북스 / 2018년 9월
평점 :
품절


도쿄의 작은 동네 히키후네에 어느날 자그마한 식당이 문을 열었다.

다섯살 아들 간타와 돌 지난 아기 히나코를 홀로 키우고 있는 엄마 데루코가 운영하는 '히나타 식당'.

이 식당은 하루에 한가지 정식만을 정성스레 내놓는다.

흑백만화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정성스런 음식을 충분히 맛볼 수 있음에 놀랐고, 손님들의 우울함, 고민까지도 날려버릴 정도의 따뜻함의 음식이라니! 보는 내내 그녀의 음식만큼이나 따뜻하고 마음이 훈훈해지는 책이다.


일본만화를 무척이나 즐겨보았던 시절에(지금은 현 트랜드-이계, 판타지 등등-를 따라가지 못하는지 내가 즐겨읽던 소재들은 별로 없고, 혐한 작가들의 만화는 안보다보니 몇 년째 일본만화를 안본 것 같다) 일본만화의 부러웠던 장르가 요리장르였다. 요새는 우리나라도 식객의 성공으로 인해 웹툰에서도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음식문화를 소개하기도 했지만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음식만화가 없었다. 미스터초밥왕은 너무 대결구도로 치우친 면이 있었지만 그래도 초밥에 관해서는 충실한 요리만화였다. 하지만 내가 즐겨읽었고, 꾸준히 읽었던 요리만화는 맛의 달인이었다.(찾아보니 111권까지 나왔다고 하니 헐, 대단하긴 하다. 나는 팔십몇권에서 끝을 냈다.) 맛의 달인이 좋았던 이유는 요리의 사연이라든지, 요리의 기원이라든지 여튼 요리에 참으로 충실한 만화였다고 하나, 여튼 그랬다. 요리만화는 지루할 것이라는 편견을 깨고 본다면 즐겁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여튼 이 책은 또 하나의 요리만화라고 해야 할지, 요리의 탈을 쓴 감동이야기 만화라고 할지 헷갈리기는 하다.

왜냐하면 총천연색의 요리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를 실망시켰으나(요리법도 거의 나와 있지 않다. 주로 재료소개정도. 하지만 자신의 입맛대로 충분히 만들어볼 수 있을 듯. 이번에 나도 한번 해먹어보고 싶은 음식들이 많았다.) 몇장 읽어보자마자 감동의 쓰나미까지는 아니더라도 잔잔하고 따뜻한 이야기들로 채워져있어 무척이나 만족스런 책이었다.


우리는 때로 어느 이름없는 음식점에서 소박하고 정성스런 밥상을 우연찮게 만나 그 따뜻함을 먹다보면 괜시리 코끝이 찡해지면서 '엄마밥'이 생각나지 않는가.(물론 '아빠밥'일 수도 있고, 할머니, 할아버지 밥 일 수도 있다.)

책을 읽고 난 후에 뜨끈한 밥을 후후, 불며 사랑하는 가족과 둘러앉아 먹고 싶은 생각이 나는 책이었다.(반찬이 별로 없어도 ^^)


'히나타 식당'을 열고 사람들의 사연과 함께 성장하는 간타와 점점 강한 여성으로 삶을 살아가는 데루코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녀의 사연은 울컥, 하게 만들었다. 그녀와 아이들이 행복하기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동트기 힘든 긴 밤 추리의 왕
쯔진천 지음, 최정숙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류가 집단생활을 하게 되면서부터 시작되었을까. 그 넘의 비리와 권력은. 아니면 인류가 '규칙(법)'을 만들기 시작하면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이 책의 첫 시작부터 심상치 않다.

술에 만취한 노숙자차림의 한 남자가 커다란 여행가방을 무겁게 끌고 지하철을 타기 위해 보완검색대로 가면서 시작된다.

여행가방을 열라는 공안의 명령에 불복종하며 커다란 소란이 일어나며 주위에 있던 많은 이들이 실시간으로 인터넷을 이용해 게시판에 올린다. 남자는 가방안에 폭탄이 들어있다며 더욱더 큰 소란을 피우고, 결국 폭탄제거반까지 등장해 가방 안을 여는데 그 속엔 알몸의 상태인 시신이 들어있었다. 이 사건은 전국적으로 뉴스화되었고, 그 소란을 피우고 시체를 유기하려 한 범인이 유명한 형사변호사인 장차오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욱더 세간의 이목을 끌게 된다.

장차오는 처음과는 달리 공안에 붙잡혀 들어가자 얌전히 자신이 '장양'(세간에 장양이라는 사람은 유망한 검찰원이었으나 뇌물수수로 감옥에 갔다 오고 백수처럼 지내면서 도박과 폭력인생을 살았다고 알려져있었다)이라는 제자를 우발적으로 죽였다고 자백하면서 이 사건은 세간의 관심으로부터 점점 멀어진다.

하지만 이 사건에 대한 첫 재판이 시작되면서 장차오는 처음의 자백과는 달리 자신은 무죄, 즉 장양을 죽이지 않았다고 이야기하면서 다시 한번 세간의 관심을 받게 된다.

장양이 죽은 시점에 장차오는 다른 곳에 있었다는 완벽한 알리바이로 인해 공안의 무리한 강압수사로 인해 장차오가 누명을 쓴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특별조사팀이 꾸려지면서 사건의 내막에 접근하게 된다.


쯔진천의 '동트기 힘든 긴 밤'은 권력과 비리로 얼룩진 범죄를 밝혀내기까지 얼마나 긴 밤을 보내야하는지를 처절하게 보여준다.

(사람들은 처음에 범죄를 저지를때는 권력을 쳐다보지 않지만 어느 순간 권력에 빌붙게 되면 손쉽게 범죄를 행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더 큰 힘, 더 큰 이득을 위해 전세계는 권력에 아부한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권력은 어느 순간 바뀌지만 돈의 힘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권력과 손잡은 돈은 돌고 돌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놀랬던 점은 이러한 책(공안권력과 경제사범의 비리와 범죄가 거리낌없이 쓰여져있다는 것)이 중국에서 출간되었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암흑기시절을 생각해보라, 그때에는 TV는 물론 소설에서도 함부로 다룰 수 없었던 이야기들이 많았다. 스스로를 검열하는 사태까지 있었다. 어쨌든 중국이 많이 변화되었다고는 해도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내는 소설이 반갑지는 않을 것이다.(한 예로 중국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비판하는 소설을 쓰기로 유명한 예렌커라는 소설가는 거의 모든 소설들이 중국에서 출간되지 못했다.) 물론 이 책을 내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고 한다(지명을 바꾸고, 옌랑이라는 캐릭터가 전작에서와 달리 가상대학의 교수로 바뀐다든지 등). 게다가 중국 현지내에서도 이 책에 대한 반응이 뜨거웠다한다.(책을 읽으면서 모방송국에서 한 '비밀의 숲'이 생각이 났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로 돈과 권력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건가하는 서글픔마저 느껴진다.) 아마도 누구보다도 정의롭고 청렴한 '포청천'을 그리워하는 마음때문이 아닐까? 게다가 눈부시게 경제적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중국 또한 권력형비리에 몸살을 앓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에서도 언급하지만 '침묵'한다고 해서 그것이 '동의'라는 말은 아니다.

사는 것에 급급해서, 용기가 없어서, 두려움이 커서 등등 이러한 이유때문에 앞으로 나서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모두가 용기있는 사람들은 아니니까.

그렇게 뒤에서 침묵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들의 '침묵'이 비리와 범죄를 눈감아주라는 뜻은 아니지 않은가.

우리가 그 추운 겨울날 침묵을 깨고 거리로 나왔듯이 이 책에서도 그 '침묵'을 깨기를, 그 '침묵'이 곪아터져 입밖으로 터져나오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한 사람의 힘으로는 바꾸기는 힘들지만 많은 이들의 힘으로는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과의 썩은 부분은 도려내야지 남은 부분이라도 먹지, 손대기 싫다고 그대로 방치하면 결국 그 사과는 먹지 못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토닥토닥, 숲길 - 일주일에 단 하루 운동화만 신고 떠나는 주말여행
박여진 지음, 백홍기 사진 / 예문아카이브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렸을 적에 시골에서 살았던 행운덕에 나는 걷는 것에는 이력이 나 있었다.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뒷동산으로, 들로 나가서 수많은 식물들과 곤충들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았었다. 그때만 해도 아스팔트는 커녕 시멘트 길도 없었던 시절이었다. 도시를 가본적이 없었던 터라 모든 길이 그렇게 흙과 돌로 이루어졌을 거라 막연하게나마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레 시멘트와 아스팔트가 깔리고 난 후 나는 처음으로 내 몸이 얼마나 땅과 맑은 물과 공기에 위로받았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지금의 나의 발과 몸은 시멘트와 콘크리트와 아스팔트와 미세먼지에 쩔어서 매일매일 피곤하고 지쳐있다.

물론 나뿐이겠는가. 현대인이라면 모두들 삶에, 현실에, 사람에, 건물에 치여 매일매일 어항 속의 금붕어처럼, 새장 속의 새처럼 밖을 그리워하고 눈물 흘리는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찰나에 이 책 '토닥토닥, 숲길'은 나에게 아주 쉬운 힐링방법이 있음을 알려주었다.

필자는 많은 돈과 시간이 필요치 않는 산책을 알려준다.

가볍게 그냥 마치 잠시 이웃집에 마실가듯 쓩, 하니 나가 터벅터벅 길을 따라 걷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자 아주 오래전부터 얼마나 내 자신이 숲을, 나무를, 흙을, 강을, 호수를, 비를, 낙엽냄새를.... 그리워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어렸을 적엔 당연하게 내 곁에 있을 줄 알았던 그 모든 것들이 지금은 시간과 돈을 들여서 찾아가야만 하는 것이 버렸다는 것이 너무 서글펐다.

(춘천만 해도 그렇다. 고등학교와 대학시절을 보냈던 춘천은 - 지금은 부모님이 계시는- 내가 사랑하는 곳 중 하나인데 춘천의 가장 좋은 점은 새벽의 고요함이었다. 게다가 차없어도-버스나 택시도 포함해서- 터벅터벅 걸어서 다닐 수 있는 작은 도시 중 하나였다. 얼큰하게 취해서 새벽에 그 고요한 춘천의 거리를 걷노라면 '적막'이 얼마나 필요한지 깨닫게 해주었다. 또한 이 책에서도 풍물장터가 나오는데 원래는 약사풍물거리였다. 하지만 도로확장공사때문에 몇십년을 장터가 있었던 곳을 온의동쪽으로 이동시켰다. 그래서인지 사실 춘천시민들은 예전의 약사풍물거리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 또한 마찬가지이고. 그리고 이제는 춘천의 변두리쪽에 아파트와 상가들이 들어차서 더이상 터벅터벅 걷기에는 너무 넓어졌다. 가장 아쉬운 점이다. 배를 타고 갔던 중도 또한 이제는 길이 생겼고. 청평사가는 길 또한 많이 상업적으로 변하고.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왼발이 디딘 땅은 오른발이 나갈 수 있느 힘이 되고, 오른발이 밀어낸 오르막길은 왼발이 지탱할 길을 다져준다. 두 발이 쉼 없이 움직이며 과거에서 걸어 나와 미래로 들어가게 한다. 이 걸음은 인생을 지탱해주는 힘이다.] -p 10


요즘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이 책을 읽노라니 당장이라도 신발을 신고 밖으로 뛰쳐나가 노랗고 빨갛게 변한 낙엽들을 밟으며 깊은 나무의 향을 맡으며 걷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짝꿍과 여행가기 위해 모아두고 있는 돼지저금통을 아쉽게 바라보며 바쁜 일이 일단락되면 가까운 곳이라도 산책을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트] 더 포스 1~2 세트 - 전2권
돈 윈슬로 지음, 박산호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9월
평점 :
절판


[당신이 겪은 일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다른 동료 경찰들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건 나도 이해해. 당신네 경찰들은 모두 프레디 그레이나 마이클 베넷을 죽였다고 비난받는 것이 괴롭고 억울하겠지. 하지만 자신이 프레디 그레이거나 마이클 베넷이라서 비난을 받는 건 어떤 느낌인지 당신은 절대 몰라. 당신은 당신 직업 때문에 사람들이 당신을 증오한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나라서 사람들이 나를 증오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잖아. 당신은 그 파란 경찰 재킷을 벗을 수 있지만, 난 이 피부 속에서 하루 24시간 일주일에 7일을 이렇게 살고 있어. 당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건, 당신이 백인이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건, 이 나라에서 흑인으로 산다는 것의 ....... 무게야....... 그 어마어마하게 진이 빠지는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고 눈을 피곤하게 해서 가끔은 그냥 걷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들고 아파.]

                                                                                -p 더 포스 1권 239 중에서


지금 이 세계는 거대한 '혐오'의 바다에 빠져있는 듯하다. 물론 개인적인 내 생각이긴 하지만.

남성 혐오, 여성 혐오, 젊은이 혐오, 노인 혐오, 어린이 혐오, 맘 혐오, 아줌마 혐오, 아재 혐오, 노동자 혐오, 정치인 혐오, 이슬람 혐오, 성소수자 혐오 등등. 셀 수 없이 많은 혐오에 갇혀 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버거운데 오히려 제자리에서 맴돌다못해 뒤로 돌아가고 있으니 뿌리깊은 오해의 늪에서 빠져나올 생각조차 없다.

아, 어느 순간 시간이 지나면 다 잊혀질거야, 괜찮아질거야, 라고 하기에는 미디어에서 당당하게 쏟아내는 비열하고 혐오섞인 발언들은 듣고 있기엔 참을 수 없을 정도이다. 또한 그 혐오의 마음을 이용하는 무리들. 그리고 그 혐오의 마음으로 인해 대통령까지 된 미국이라는 나라.

사실 40대를 보내고 있는 나로서는 어렸을 적엔 국민 전체가 마치 아메리칸 드림에 빠져있었더랬다.

마치 미국에 가면 무슨 길바닥에 금이라도 깔려있는듯이 말이다.

하지만 사실 미국이라는 나라는 '혐오'로 세워진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아닐까?

수많은 인종들이 살지만 그들은 처음에는 아메리카의 주인인 인디언들을 몰살했고, 그 다음에는 아프리카에 가서 평화롭게 사는 사람들을 끌고가 자신들의 노예-이들에게 노예란 인권도 인간존엄성도 없는 존재였다. 그저 물건처럼 사고 팔고, 죽을때까지 소유하는 재산인 것이다. 마치 우리나라의 옛 시절의 노예와 같은 위치였다.-로 삼았고, 그들이 자신들도 인간임을 주장하자 전쟁을 벌였고, 죽였고, 그 후로도 여전히 그들에 대한 혐오를 멈추지 않았다.

고등학교때 '뿌리'를 읽고서(드라마도 있었지만 소설이 더 좋았다) 미국의 이중성(자신들이 민주주의의 수호자이자 영웅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얼마나 피로 얼룩진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지금은 무기와 달러의 권력으로 지구촌의 모든 나라들을 자신의 발 아래로 놓고 공기놀이를 하고 있지 않은가. 결코 자신들이 지지 않는 게임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혐오로 세워진 나라답게 그 안은 얼마나 썩고 곪아있는지 많은 학자들이 미국의 미래는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다.(미국이라는 국가가 없어지고 각 주마다 국가가 되어버리는 상태가 된다는 식의 이야기가 있었다)


여튼 너무 사족이 길었는데 이번 책 돈 윈슬로의 '더 포스'는 뉴욕의 할램가를 담당하는 경찰 데니 멀론의 이야기이다.


-선을 어떻게 넘을 수 있냐고? 한 발 한 발 가다보면.-


중독과도 비슷하지 않을까? 데니 멀론은 경찰인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경찰이 되었다기보다는 어느 순간 자신의 천직은 경찰밖에 없다고 생각했기에 경찰이 된 케이스이다.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은 소방관이 되었지만 불행히도 911테러때 죽었다. 그 때 이후부터였을까? 아니면 그것이 계기가 되었을까? 데니 멀론은 좋은 경찰이 되고 싶었다. 처음 어느 가난한 노파를 턴 강도를 체포했던 것처럼 그저 멀론은 좋은 경찰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한번의 공짜 커피, 한번의 공짜 샌드위치가 점점 굴려지는 눈덩이처럼 커져만 갔다.

좋은 경찰이 되고 싶었던 멀론이 정반대의 '부패경찰'이 되어버린 계기는 특별수사대(마약폭력범죄전담반)가 설립된 초기 멀론의 정보원인 내스티 애스(그의 삶 또한 너무 서글펐다.)가 신고한 사건이었다.

온 가족(부모와 어린 세자녀)이 죽어있었다. 처형방식으로. 멀론은 그 사건을 개인적인 방식으로 처리했다. 멀론 스스로 그의 영혼이 죽게 된 사건이 되었다.

아무리 마약상들을 가두고 쫓아내도 또 다른 마약상들이 멀론의 세상으로 들어왔다. 멀론은 그저 어린 아이들이 죽지 않고 서로 총을 쏘아 죽이지 않기를 바랬다. 결국 멀론은 시민들을 위한다는 명분아래 마약범들과 타협을 하고 정치인과 검사와 변호사와 협상을 했다. 게다가 자신과 팀원들의 미래의 돈까지 챙기는 수고까지. 마약범에게 돈을 받아 시장과 시의원과 시청공무원과 경찰 내 간부들에게까지 돈을 찔러주기까지 한다. 이른바 '부패경찰'이 되어버린 멀론.

하지만 너무 많은 선을 넘은 멀론은 마지막 '선'까지 넘어버리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지금 이 나라에서 일어나는 많은 부패들(심지어 유치원에서까지. 하긴 옛말에 이런 말이 있었다. 작은 마을의 작은 구멍가게도 비리가 있다고 말이다.)이 오버랩 되었다.

모두들 처음에는 그랬을 것이다. 어느 누가 처음부터 비리를 저지르려고 마음을 먹었겠는가.(물론 사이코같은 인간도 있겠지만)

깨끗하고 공정한 사회.

아마도 모두들 바라는 사회일 것이다.

전쟁도 없고, 부패도 없고, 굶주림도 없는 평화로운 사회.

하지만 우리는 너무 많이 그 길에서 벗어나있다. 다시 되돌아가려면 인류가 멸망해야 가능하지 않을까?

아니, 인간이기에 결코 그러한 사회는 이루어내지 못하는 그저 이상향으로 끝나지 않을까?


결국 '적정선'을 넘지 말아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너무 맑은 물에 물고기가 살지 못하는 것처럼 인간이 사는 곳에는 부패와 비리가 깨끗함과 공정함 속에 같이 공존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렸을 적엔 그것이 뇌물이라면 '콩' 한쪽도 받아서는 안된다고 난리를 쳤겠지만 지금은 모르겠다.

그 '콩' 한쪽을 받아서 상대방의 마음이 편해지고, 또 다른 누군가를 구원해준다면 그것을 단순히 '나쁘다'고만 말할 수 있을까?


그래서인지 나는 더 포스의 왕 데니 멀론을 좋은 경찰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나쁘다'고 말할 수도 없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은 감상을 소설가 장강명씨의 말을 빌린다.


[정말 X나게 재밌지 않은가.

이게 바로 돈 윈슬로다! 폭력과 간지의 폭풍 카리스마 ........ 그의 작품을 읽을 때면 늘 불X이 쪼그라드는 느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