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 하버드 법대, 젊은 법조인이 그린 법정 실화
알렉산드리아 마르자노 레즈네비치 지음, 권가비 옮김 / 책세상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대학때 한 선배가 '터부'에 관한 논문을 쓴 적이 있었다. 그때 이런저런 터부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예를 들어 근친이 어느 시기에 금기시되었고, 왜 되었는가? 하는)

예전에는 허용되었던 것들이 근대, 현대로 넘어오면서 많은 것들이 금기시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예전에 허용되었던 많은 터부들이 아무런 조건없이 허용되었던 것은 아니다.

인류는 법 이전부터 '윤리'라는 가치관을 가지고 생활해왔다.(기본적으로 섹스는 상호간의 합의에 의해서 행해져야 한다. 그 외의 모든 것은 불법이며 범죄인 것이다. 한 마디로 당신에게 있어서 '사랑'?!이었는지 모르지만 상대방은 'NO'인 것이다. 게다가 어린아이인 경우에는 예스든 노든 그것은 중요치 않다. 그 어떠한 성적 행위도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어린 아이라고 가정했을때 그런 성적인 위협을 받았다면 그것이 정당화될 수 있나 말이다. 그 어떠한 경우에든 어린아이(정신적으로 어린아이인 경우에도 포함됨)에게 행하는 모든 성적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


어제 본 인터넷 기사에 '조두순'이 곧 풀려난다는 이야기에 다시 한번 많은 이들이 그의 출소를 반대하는 청원을 올리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알기로는 우리나라의 소아성애범죄는 범행보다는 범죄 이후의 문제가 더 심각해보인다. 법적인 처벌의 수위-기본적으로 성폭행에 관한 법률이 외국에 비해 열악한 편이다-가 낮고 범죄 예방 차원의 방법-화학적 거세 또는 생물학적 거세- 또한 미미하다. 그저 전자발찌(그것도 쉽게 끊고 도망칠 수 있는)를 차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태반인 것으로 알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소아성애범죄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는 것으로 알고 있다.(경제적으로 낙후하고 열악한 나라의 경우에는 아이들을 사고 팔기도 하고, 아직 어린아이들이 성매매를 불법으로 성행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알려지지 않은 그런 불법적인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인터넷의 어두운 곳에서는 아이들의 사진들(성적인 용도로 쓰이는)이 거래되고 있다.

어쨌든 이런 범죄는 잡을 수 있고, 예방할 수 있는 방법들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우리 옆에 있다.

예전에 성폭력에 관한 책을 읽다가 너무 놀랐던 사실 중 하나가 많은 성폭력이 친족에 의해 행해진다는 사실이었다.

이 책의 저자 또한 어린 시절에 할아버지로 부터 성적학대를 당한 기억이 있다. 참으로 서글펐던 이유는 저자의 부모가 자신의 부모가 행한 폭력을 아무 일도 없던 일로 해버렸다는 사실이었다.(자신의 아이가 학대당한 사실을 알고 행한 일은 그저 학대한 당사자와 학대당한 아이가 둘만 있지 않게 하는 일밖에 없었다) 그 일로 인해 저자는 오랫동안 그 일이 트라우마가 되어 섭식장애를 앓게 되었고, 마침내 자신만이 해결해야만 하는 일임을 깨닫고는 할아버지를 찾아가 당신이 행한 일들을 고발한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대답은 어처구니 없었다.

용서하라는 말도, 죽이라는 말도 없이 그저 그래서 어쩌라는 말이냐, 라며 자신 또한 자신의 부모에게 당하고 살았다라는 말로 얼버무린다.


이 책은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법조인 부부(저자의 아버지, 어머니 모두 변호인이다) 사이에서 태어난 한 아이가 자신의 할아버지에게 성적학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부부는 그 죄를 감춘다는 사실이었다(체면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아무리 그래도 그들의 부모이기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저자는 오랫동안 감춰왔던 일들을 들추고, 캐내고, 인정하며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나아가려고 한다.

그 계기는 저자 또한 법조인으로 첫발을 내딛으며 본 비디오때문이었다. (그 비디오는 한 남성이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인터뷰였다.)

리키 랭글리.

그는 어린 아이를 좋아하는 소아성애자로 몇번의 아동추행으로 감옥에 갔었다. (그는 간수에게도 호소한다. 자신을 석방하지 말아달라고. 감옥 밖을 나가면 자신의 의지로 그 어떠한 것도 막을 수 없다면서) 하지만 형기를 채우고 출소했고, 그는 작은 마을에 세들어 조용히 살다가 결국 이웃집 아이를 살해하기에 이른다. (처음엔 사형을 언도받았으나 나중에는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저자는 리키 랭글리의 비디오 인터뷰를 보고는 그의 생애와 가족, 그리고 피해자의 이야기까지 10년에 걸쳐 읽고 조사한다.

그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와 함께 엮은 책이 바로 이 책 '나는 기억하지 못합니다'이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것은 소아성애자에 대한 이해가 아니다.

어떠한 첨부없이 기록하고 이야기함으로써 사실 그대로를 보여준다. 판단은 개인몫으로 남겨둔다.

(개인적으로는 소아성애자에게는 화학적 거세와 생물학적 거세를 동시에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방법밖에 없지 않을까? 피해자 아동인 경우에는 생명을 잃을 뿐만 아니라 운좋게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정신적인 트라우마로 인해 평생 죽음에 이르는 고통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성폭력은 정신적 살인이라고 이야기한다.)


사실 그대로의 기록이야말로 어쩌면 우리가 누군가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닌가 한다.



[그가 내게로 걸어오는 동안 나는 기다리면서 혀로 아래 입술을 핥았다. 오래된 습관이었다. 그렇게 하고 입술이 젖은 걸 확인했다. 그리고는 늘 그러듯이 깜짝 놀라 몸을 움츠렸다. 내가 무심결에 이런 행동을 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이건 할아버지가 그림 그리는 데 집중할 때 하던 행동이었다. 할아버지가 내게 그림 그리는 법을 가르칠 때 그런 행동을 하는 걸 보았다. 나는 그 기억을 내 몸 속 어딘가 내가 조절할 수 업는 곳, 그 기억이 어디 있는지 찾아내어 편집할 수조차 없는 곳에 지니고 있다. 나는 여전히 그 기억을 잘라내고 싶다. 여전히 그 기억에서 자유롭고 싶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알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방식으로 매여 있는 몸이라는 사실을. 사람은 자기를 자기로 만든 경험을 지니고 다닌다.

내 맞은 편에 리키가 앉아 있다. 오늘의 과제, 이 만남의 과제, 내 안에 있던 이 이야기를 시작하게 한 과제. 그 과제를 끝낼 길은 이 말밖에 없다. 내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저 사람은 한 인간이다. 그는 절대로 이것 아니면 저것, 어느 한 가지로만 규정될 수 없다. 이야기만 그렇게 될 수 있다. 사람은 절대로 아니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 과거에 등 돌리는 대신, 과거에서 도망가는 대신, 오히려 손을 내밀었다. 과거에게 말을 걸었다. '그렇다면 같이 가자. 내가 사는 동안엔.'

"안녕하세요, 리키." 내가 말했다.]

                                                                                           -p 492~493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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