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태고의 시간들 ㅣ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22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4월
평점 :
‘태고’라는 마을을 중심으로,
게노베파, 미시아와 이지도르, 아델카 그리고 크워스카와 루카, 평범하고도 독특한 서사를 간직한 이들의 84개의 에피소드로 태고의 시간들이 이어진다.
평범한 인간의 이야기인듯 하다가도
크워스카라는 인물은 인간이기도, 동물이기도, 신화적인 존재이기도 한 면모를 보여주는데 이런 부분 때문에 중간중간 지루하지 않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한 가지의 이야기의 줄기가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과 사건, 사물에 따라 제각각 떠도는 이야기들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제법 집중력을 요구하기도 하지만 이게 작가의 필력으로 모두 커버가 된다고 할까? 거대한 나무의 가지처럼 뻗어나가던 이야기는 굳건한 한 줄기의 흐름을 가진 채 흘러가기 때문에 결국 그 끝은 한 곳으로 모여들 수밖에 없다.
신화적 요소들이 넘쳐나는 곳,
평범한 공간 속에서 환상적인 요소들이
예고없이 튀어나와 자연스럽게 현실과 뒤섞이는 곳.
인간과 동식물, 사물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살아있는 유기체. 태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고 죽고 살아있는 동안 저마다의 고민과 번뇌, 좌절과 희망을 골고루 경험한다. 그 어디에도 인간의 선택은 없다. 그저 주어진 삶의 조건 속에서 안간힘을 다 해 살아가는 것 뿐.
그 안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간의 모습은 저마다에게 주어진 시간을 저마다의 방법으로 살아간다. 탄생과 성장, 노화, 죽음에 이르는 생의 과정을 지나가며 이야기는 끊임없이 탄생하고 소멸하고 다시 부활한다. 시간속을 살아가며 우리가 하는 일은 영원히 반복된다. 영원히 우리는 살고 죽는다는 어쩌면 아주 단순하고도 깊이 있는 이야기가 바로 태고의 이야기이다.
+
크워스카의 눈에 비친 세상은 하나의 덩어리였다. 싹을 틔우고, 죽고, 다시 태어나기 위해 다양한 모습을 가진 한 명의 거대한 인간 혹은 한 마리의 거대한 짐승이었다. 크워스카 주위의 모든 것은 한 몸이었고, 그녀의 육신조차도 그 거대한 몸의 일부였다. 그 몸은 장대하고 전능하며,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막강했다. | 37
신은 모든 과정 안에 있다. 신은 모든 변형 속에서 박동한다. 어떤 때는 있고, 어떤 때는 조금만 있고, 때로는 아예 없을 때도 있다. 신은 그가 거기에 없는 순간에도 현존하기 때문이다. | 194
‘하느님 맙소사‘는 아직 어리고 미숙했지만, 동시에 태초부터, 아니 그보다도 먼저 존재해왔다(마치 ‘하염없이’나 ‘한결같이’처럼) 만물을 포용하는 조화로운 존재였지만(마치 ‘하모니‘처럼), 특별하고 독보적인 존재이기도 했다(마치 ’하나‘처럼). 그리고 모든 생명체에게 꼭 필요한 것이기도 했다(마치 ’해‘처럼). 어디에나 존재하지만(마치 ’하늘‘처럼), 막상 찾아내려 하면 그 어디에도 없었다(마치 ’허상‘처럼). ’하느님 맙소사‘는 사랑과 기쁨이 넘쳤지만, 때로는 잔인하고 위협적이기도 했다. 이 세상의 모든 성향과 속성이 그 속에 담겨 있었다. 그리고 모든 시공간과 대상을 아우르고 있었다. 창조하고, 파괴했다. 아니면 창조한 대상이 스스로를 파괴하도록 만들었다. ’하느님 맙소사‘는 너무도 당연하게 자신의 존재를 확고히 했다. | 355
세상 어디에도 머물지 말고, 얼른 떠나렴. 다시 돌아오라는 꼬임에도 절대 넘어가선 안 돼. | 446
(서평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