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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 ㅣ 열림원 세계문학 4
헤르만 헤세 지음, 김길웅 옮김 / 열림원 / 2023년 12월
평점 :
“ 인도 브라만 계급 출신의
청년 싯다르타가 친구 고빈다와 함께
깨달음을 얻기 위해 걷는 다양한 구도의 길 ”
- 싯다르타와 고빈다
이 두 사람은 같은 뜻을 가지고도 서로 다른 길을 선택했다.
공허를 넘어 자신으로 향하는 길을 걷고자 했지만 싯다르타는 이 끝없는 사유, 번뇌의 본질을 정면으로 마주했고, 고빈다는 둘레길로 빙 둘러가는 길을 택했다.
| 그 어떤 가르침도 더 이상 받고 싶지 않아. 나 자신에게서 배울 거야. 나 자신의 제자가 되고, 나 자신을 알고 싶어. 싯다르타라는 비밀을 알고 싶어.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치 처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처럼 세상은 아름다웠다. 세상은 다채로웠다. 세상은 기이했고, 수수께끼 같았다. 파란색이었다가, 또 노란색이 되고, 또 초록색이 되었다. 하늘은 흐르고, 강과 숲은 멈춰 있었다. 산은, 산은 온통 아름다웠다. 모든 것이 수수께끼 같고 마법 같았다. 그 안에서 깨어난 자, 싯다르타는 자기 자신에게로 향하는 길을 걷고 있었다. | p65
- 반면, 고빈다는 늘 깨달음을 갈구했다.
싯다르타가 속세에서 직접 부딪히고 경험하는 동안, 고빈다는 숲속 사문(수도승)의 길을 택하여 그들이 ‘전하는’ 진리를 깨닫는데 매진했다.
오랜 시간이 흘러 그 둘이 다시 만났을 때, 고빈다가 먼저 물어본 것은 그래서 너의 깨달음은 무엇이냐, 그 깨달음을 나에게도 전해주면 기쁘겠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나는 ‘말로 전해진 깨달음’의 진정성에 대해 의문이 생겼다. 자기 안에서 솟아나지 않은 깨달음, 앎이라는 것을 그토록 시간과 공을 들여 갈고 닦아도 결코 채워지지 않는 것일까?
자아의 의미와 본질, 모든 의문이 나 스스로에서부터 뻗어나오지 않는다면, 아무리 넓고 깊은 지혜를 갈망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는 너무나도 ‘나’같는 보통 인간의 모습같았다.
- 싯다르타는 오히려 속세에 내려와 모든 욕망 앞에 자기 자신을 내던졌고 때로는 도박에, 성적 쾌락에, 부를 채우는 일에빠져들었다. 수많은 경험 뒤에는 속세를 떠나 강가에서 뱃사공 노릇을 하며 자연으로부터 삶의 이치를 배웠고 이런 정신적, 육체적 경험의 시간들은 때로는 기쁨을, 때로는 고통을 안겨주었지만 그 자체로 깨달음의 토대가 되었다.
그러나 고빈다는 평생을 속세와 단절된 채 진리를 찾아 떠돌았음에도 끊임없이 진리를 갈구하는 모습은 어쩐지 내 안에 자리잡은 깊은 공허감 같았다.
| 세상은 불완전한 것이 아니야. 세상은 비록 긴 여정 속에 있지만 완전함을 향해 나아가고 있어. 그래, 세상은 어느 순간이든 완전해. 모든 죄도 그 안에 은총을 담고 있고, 모든 어린 아이들도 이미 그 안에 백발노인의 모습을 담고 있어. 그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에게서 그가 자기가 갈 길을 얼마나 많이 갔는지를 알아낼 수는 없는 거야.| p213
| 고빈다야, 사랑이야말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해. 세상을 꿰뚫어보고, 세상을 설명하고, 세상을 경멸하는 것은 위대한 사상가가 할 일인지 모르겠어. 내게 중요한 것은 세상을 사랑하는 것, 세상을 경멸하지 않는 것, 세상과 나를 미워하지 않는 것, 세상과 나와 모든 존재를 사랑과 경이로운 마음과 경외심을 관찰하는 것, 이런 것이야. | p218
나에 대한 이해, 나의 내면, 의식의 뒤에 감춰진 무의식이 결국 다른 이가 아닌 ‘나’ 자체라는 인식. 시간의 흐름과 선과 악, 과거와 현재, 기쁨과 절망, 모든 것을 가르듯 그어진 ‘선’. 이분법적인 선의 무용함… 인간은 스스로를 커다란 틀 안에 가두고 그 안에서 진리를 갈망하는지 모르겠다. 때로는 너무 많은 지식이, 가르침이 소음이 되어 나를 가둔다, 마치 고빈다 처럼.
- 삶은 결국 강물과 같다는 이야기를 간직하며,
한 해의 끝자락에 다른 어떤 것도 아닌
나와 마주보는 시간은 이 책이 선물해준 소중한 기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