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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연습한 시간 - 엄마의 책장으로부터
신유진 지음 / 오후의소묘 / 2024년 11월
평점 :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함께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 p13
“ 나의 처음 ”
신유진 작가님을 이야기하려면 나는 ‘처음’이라는 말을 빼놓을 수 없다. 용기를 내어 타인과 함께 책을 읽기로 마음먹은 것도 ‘처음’, 책을 읽으며 끊임없이 던져지는 질문에 나의 이야기를 끌어낸 것도 ‘처음’, 그 이야기를 다른 이들 앞에서 내 목소리로 들려주었던 것도 ‘처음’. 나의 ‘처음’을 이토록 특별하게 지어준 사람. 그를 생각하면, 그날의 이미지와 그 주변으로 어떤 빛의 아우라 같은 것이 피어난다. 그의 책을 읽을 때면 귓가에 나지막하고 편안했던 그 목소리가 솟아올라 책을 읽어준다. 나의 ‘처음’을 이끌어주었던 이의 책은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는 이미 두꺼운 보호막에 둘러쌓여 태어난 존재이다. 그러니 나는 객관적일 수 없을 것이고 그것 또한 필연이다.
| 어린 토카르추크는 어머니에게 슬픔의 이유를 물었다고 한다. 어머니의 대답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딸을 그리워하느라 슬퍼했다는 것. 토카르추크의 어머니는 그리워하면 그 사람이 거기 존재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워하면 존재하게 되는 것. 그 말을 생각하면 건넌방과 내가 들었던 모든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곳에서 내게 세계는 믿음으로만 존재했고, 그 믿음의 첫 번째 조건은 ‘있었다’였다. | p11
엄마가 들려주던 옛날 이야기, 어려서부터 책을 통해 엄마와 나누었던 교감, 책을 읽으며 책 속에서 갈망과 존재의 이유를 찾고자 했던 엄마의 끊임없는 몸짓은 고스란히 어린 ‘유진’의 사유가 되어 자라났다. 엄마는 마음이 이상하다고 했다. 기쁘다는 뜻일까, 슬프다는 뜻일까, 엄마는 무엇을 찾고 있을까. ‘유진’의 해독은 근사치의 이해밖에 될 수 없을테지만 그렇게 시작된 글쓰기는 20년의 세월만큼 깊어졌고 무르익었다. 그리고 이제 애타게 답을 찾던 엄마에게 자신만의 답을 내어보일 수 있게 되었다.
‘사랑을 연습한 시간’
이 책은 엄마에게 보내는 그녀가 찾은 답이다. 물론 완벽한 정답이 아닐 수도 있고 그럴 필요도 없다. ’유진‘이 찾은 답은 엄마의 이야기에 뿌리를 두고 세상을 향해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그것은 수 많은 글이 되어 어느새 타인들을 그 글 속으로 초대하기에 이른다. 나는 기꺼이 그 초대에 응한 사람이고, 엄마의 손을 잡고 걷던 ‘유진’이 이루어낸 글이라는 세계에 기꺼이 빠져 헤엄치고 허우적거리기를 원한다. 그것은 어느 순간 나의 이야기가 되고, 나를 설명하는 말들이 되어 ’여성의 텍스트‘로 새롭게 탄생한다. 표면적인 뜻의 여성이 아닌, 세상에 존재하는 ’나‘라는 ‘고유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 고민하며 수십번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는, 수줍은 목소리로 읽어냈던 나만의 이야기 같은 것들 말이다.
1년 전 겨울, 내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늘 어딘가 멈춰 선 사람 같았다. 너무 오래 멈춰서서 더 이상 내가 알던 사람은 이 곳에 남아있지 않고, 뿌리내리지 못한 채 발 딛고 서 있는 이 곳은 여전히 낯설기만 했다. ’멈춰 선 사람‘은 저 멀리 보이지 않는 곳에 무엇이 있을까 ‘생각한다’. 이제는 내가 발을 떼도 될까 ‘생각한다’. 그리고 ’유진‘이 말한다. 내가 멈춰 서 있던 시간이 ’사랑을 연습한 시간‘이었다고. 그 시간은 영원히 흩어져 사라지는 대신 늘 나를 일어서게 한다고. 시간을 거슬러 지금의 내가 그 겨울의 내가 되기도 한다. 우리가 공유한 시간 속에서 나는 그의 말을 읽으며 나를 읽는다. 그 사소하고 소중한, 별거 아닌 별것을 읽는다.
| 어쩌면 나는 내 존재의 빈칸을 타인의 이야기, 그 안에 담긴 믿음으로 채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존재가 타자의 그리움에 대한 응답이라면, 나는 타자의 믿음으로 온전해질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사랑이 아니면 무엇일까. 누군가의 그리움과 슬픔을 기쁨으로 환원할 수 있는 게 나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나도, 내 삶도, 내 글도 존재해야할 이유를 확인하게 된다. | p13
(도서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