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이 바람 될 때 (100쇄 기념 리미티드 에디션)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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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는 서서히 걸음을 옮겨 영원한 산의 정상에 오르리라. 그곳의 바람은 시원하고, 풍경은 장엄하리라. — p261

/ when breath becomes air,
이것은 그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불안정한 호흡을 이어가던 폴은
소생 치료를 거부하고 가족들 곁에서
마지막으로 깊은 숨을 내쉬었다.

/ 그가 희망한 것은 가능성 없는 완치가 아니라,
목적과 의미로 가득한 날들이었다.
생과 사는 떼어내려고 해도 뗄 수 없으며,
그럼에도, 혹은 그 때문에 우리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인생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폴에게 벌어진 일은 비극적이었지만,
폴은 비극이 아니었다.
— p262

스탠퍼드 대학 병원 신경외과 레지던트 ’폴 칼라니티’는 졸업 마지막 해를 앞두고 폐암 4기 선고를 받는다. 그의 입장에서 의사는 항상 ‘주어‘의 자리에서 ’목적어‘인 환자를 살리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었지만, 병실에 누워 담당 의사를 기다리는 동안 그는 처절하게 통감했다. 더이상 자신은 이 삶의 주어일 수 없고, 누군가의 목적어가 되어 눈 앞에 마주한 고통과 싸워야 한다고.

그의 삶에서 마지막 2년 여의 투병 기록은 병세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에 대한 회고이다. 어쩌면 그가 죽을 당시 8개월이었던 딸 케이디에게 남기는 아버지에 대한 기록일지도 모르겠다. 책은 1부와 2부로 나뉘는데 1부에서는 그의 성장 과정과 문학과 생물학 전공을 거쳐 어떻게 신경외과 의사가 되었는지, 2부에서는 폐암 진단을 받은 후 치료 과정과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까지 각고의 노력의 과정에 대한 기록이었다. 그리고 2부의 후반 즈음에,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암이 뇌로 전이되면서 의사에서 환자로 또 다시 역할을 바꾸며 그가 겪었던 상실감에 대한 생각을 나누던 참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이야기가 끝이 난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 낯선 느낌이 뭘까 내내 궁금했다. 아직 그의 이야기가 더 남아있을 것 같은데, 이제 막 삶의 이유를 찾았던 참인데 이야기는 어떻게 맺어지는 것일까, 그러나 2부를 끝으로 더는 폴의 글을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이야기는 다시 그의 아내, 루시 칼라니티가 쓴 에필로그로 이어지는데 그제서야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이 책은 그렇게 불완전한 채로 끝나지만 그것 자체로 폴의 삶이었던 것이다. 그는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었고, 스스로 호흡을 할 수도 없이 농도 짙은 진통제를 맞으며 간신히 깊은 숨을 내쉬고 있었다.

이 다정하고 따뜻한 남자의 곁에는 위기의 순간마다 서로의 몸을 맞추고 누워 그의 곁을 온건하게 지키는 아내 루시가 있었다.
이 글은 폴 칼리니티와 그의 아내, 그리고 이제 막 옹알이를 시작한 딸 케이디가 함께 완성한 삶에 대한 하나의 작품이다.

암세포 덩어리에 정복당한 몸으로도
다시 일어섰던 의사로서의 의지와,
마지막 수술을 마치고 병원 생활을 정리하며
끝내 차오르는 눈물을 숨기지 못한
어느 환자의 통곡이 담긴 글이다.

I can’t go on. I’ll go on.
할 수 없지만 할 것이다.
할 수 없지만 다시 일어서서 나는 계속 할 것이다.


/ 궁극적인 진리를 향해 열심히 나아가되 거기에 닿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걸, 혹은 가능하다 해도 확실히 입증하는건 불가능하다는 걸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결국 우리 각자는 커다란 그림의 일부만 볼 수 있을 뿐이다. 의사가 한 조각, 환자가 다른 조각, 기술자가 세 번째, 경제학자가 네 번째, … 목사가 열 번째 조각을 보는 것이다. 인류의 지식은 한 사람 안에 담을 수 없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 맺는 관계와 세상과 맺는 관계에서 생성되며, 결코 완성되지 않는다. 그리고 궁극적인 진리는 이 모든 지식 위 어딘가에 있다.
—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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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 (100쇄 기념 리미티드 에디션)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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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에서 환자로, 주어에서 목적어의 역할로 삶이 바뀌면서 어쩔수 없는 상실감을 받아들이며 그는 끝까지 이 글을 썼다. 어쩌면 자신의 마지막일지 모를 이 순간을 간직하며, 삶을 되돌아보고 덤덤하게 써내려간 글. 자신의 딸에게 남기고 싶었던 마지막 이야기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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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장편소설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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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작가의 글을 시작하기 좋은 소설. 소설의 틀이지만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본 기분이다.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다. 그리고 아직도 더 많이 널리 읽히기를 바라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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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은 작은 목소리로
마쓰우라 야타로 지음, 신혜정 옮김 / 북노마드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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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은 작은 목소리로‘는
큰 소리를 내는 것조차 슬퍼서 들릴 듯 말 듯 아주 작게 속삭이는 소리 같은 것이다. 만남의 ‘안녕’이 아닌, 헤어짐의 ‘안-녕’. 무슨 마음인지 ‘안‘과 ’녕‘사이에 작은 침묵의 순간(-)을 넣고 싶은 그런 마음. 마치 우리 둘만의 비밀처럼, 서로의 귓가에서만 맴도는 목소리로. 그 안에는 헤어짐이 아쉬운 어린아이의 그렁그렁 한 눈빛도, 길모퉁이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던 선생님의 희미한 미소도 여전히 담겨있다.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조심스러운 날이었지만, 이미 여러 달 전부터 이날만을 기다려온 터라 썩 유쾌하지만은 않은 발길로 약속 장소로 향했다. 힘껏 뒤흔들려버린 일상에서 다시금 중심을 찾아 한걸음 한걸음 옮겨본다. 가볍게 조금씩, 그래도 마음을 다해 읽고 싶었던 책을 들고, 의자에 앉아 천천히 페이지를 넘긴다. 다시 나의 자리로 돌아오는 방법 또한 ‘책’ 이었다.

“ 사람은 아름다워지기 위해 살아간다. ”
<생활의 수첩> 전 편집장
마쓰우라 야타로가 건네는
아름다운 삶의 자세


작가가 지금껏 여행을 하거나, 일상 속에서 영감을 얻어온 수많은 인연들과 그들과 나누었던 대화를 통해서 얻은 삶에 대한 통찰이 마치 작은 메모지 뭉치를 건네받아 한 장 한 장 그 사람의 메모를 읽어가는 듯했다. 사소하다면 사소할 수 있지만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기록하며 차분하게 쌓아온 이야기는 오로지 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들일 것이다. 나이 듦에서만 나올 수 있는 원숙한 단정함 같은 것들이랄까? 난 그 사람의 말이 듣기 좋았다. 차분하게 자신이 할 일을 해내면서, 일상을 돌보고,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들이 주는 자신감 속에서, 하마터면 잃을 뻔했던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는 시간.


타인의 힘으로 좌지우지될뻔했던 일상을 되찾고 보니 그저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하던 일을 하며 나의 일상을 단단하게 다져가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를 사는 내가 그들에게 할 수 있는 나만의 언어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하던 일을 계속할 것이고, 앞으로 나아가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고, 그 누구도 마음대로 침범할 수 없도록 서로에게 단단한 울타리가 되어줄 것이므로. 나의 일상은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돌아가지만 우리의 기억에는 아무 일이 없지 않았다. 그 사실을 바뀌지 않을 것이다.

+
피할 수 없는 일은 많잖아요. 그래도 인간은 신기한 존재라서 피하지 못한다면 견뎌내게 돼요. 그러니까 도망칠 필요는 없어요. 달아나면 달아날수록 뒤쫓아 오는 것도 사실이니까요. | 20

일이란 매일 실험이지. 기분도 기술도 실험이라는 이름으로 도전의 연속이야. 다른 사람과 충돌할까봐 실패할까봐 비판받을까봐 매일의 실험을 멈추는 순간에 자신의 성장은 멈춰버린다고 생각해. 일하면서 성장이 멈추는 것만큼 불행한 일은 없어.
오늘의 실험이 떠오르는지 어떤지가 일의 본질이라고 나는 생각해. 그것이 생각나지 않게 되면… 그녀는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말을 멈췄다. 내가 다음 말을 기다리자 숨을 들이쉬고 나서 “생각날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일까?” | 70

나는 그 책을 탐하듯이 읽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시와 문장이 많았지만 여기에는 '진짜'가 있다고 강하게 느꼈다. 부모님이나 학교 선생님, 어른들이 답해주지 않는 자신이 모르는 것, 알고 싶은 것, 거짓이 아닌 진실이 여기에는 쓰여 있다고 생각했다. | 167

자기가 믿었던 것,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것을 언제까지나 같은 기분을 계속 느낌으로써 얻는 소소한 자신감이 있다. 무엇이 생겼다는 것은 아니지만 한 가지 가슴을 펴고 할 수 있는 말은 좋아하게 된 것. 소중히 여기고 싶었던 것에 대해 줄곧 지금까지 마음이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아니, 바꾸는 일 따위 할 수 없지만 그런 스스로의 마음이 기쁘게 느껴진다. | 171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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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은 작은 목소리로
마쓰우라 야타로 지음, 신혜정 옮김 / 북노마드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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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하다면 사소할 수 있지만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기록하며 차분하게 쌓아온 이야기는 오로지 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들일 것이다. 차분하게 자신이 할 일을 해내면서, 일상을 돌보고,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들이 주는 자신감 속에서, 하마터면 잃을 뻔했던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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