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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의 미학 - 죽음과 소외를 기억하는 동시대 예술, 철학의 아홉 가지 시선
한선아 지음 / 미술문화 / 2025년 1월
평점 :
“ 죽음과 소외를 기억하는 동시대 예술, 철학의 아홉가지 시선 ”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는 ‘애도’. 누군가의 죽음은 마지막까지 찬란한 빛을 받으며 그 가치가 드높여질 때, 누군가는 소리소문없이 죽어간다. 찬 서리를 맞으며 어둠 속으로 사라져가는 죽음에 대해 사람들은 오래 관심을 두려 하지 않는다. 그저 그 사람의 불행을, 이 우연한 사고를 안타깝다고 말할 뿐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알려지지 않은 고통과 상실을 정말 안다고,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 왜 어떤 죽음은 다른 죽음에 비해 유독 많이 보이는가? 왜 어떤 사람들은 더욱 쉽게 죽어가며, 때로는 그 죽음이 셈해지지도 않은 채로 소멸하는가? 왜 우리가 아닌 그들이 죽어야 했으며, 그 죽음은 언제, 어디서, 또 어떻게 반복되는가? (p194)
<애도의 미학>은 전쟁에서의 무차별 살인, 이민 정책 갈등, 아동 학대, 젠더 폭력 등 해마다 반복되는 사회적 문제 그리고 피해자인 약자들의 삶을 철학자 9인과 예술가 14인의 시선으로 분석한 예술 에세이로, 잔인하고 소외된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소외된 죽음을 다양한 예술적 방식으로 재조명하는 사람들과 그 기저에 깔린 철학적 사유, 문학적 견해를 폭넓게 제시한다.
그들의 작품은 사회적으로 어떤 반향을 일으켰는지, 또는 아무도 관심갖지 않고 사라졌을지라도 이렇게 책 속의 문장으로 다시 태어난 글은 독자로 하여금 낯설고 황망한 죽음을 의식속에 깊이 각인시킨다.
- 시시각각 폭력의 위협에 시달리는 취약하고도 위태로운 존재의 삶, 애써 기억하지 않으면 아무도 애도하지 않을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묵념이다. (p24)
전시 공간을 가득 채운 비눗방울.
천장에서부터 떨어지는 비눗방울은 소리 없이 파열하고, 공기 속에 미세한 분진을 남겨준 채 사라진다. 사람들은 이 작고 연약한 파열이 아름답다고 느낀다. 이내 작가는 이 비눗방울들 하나하나가 하나의 신체라고, 누군가의 시신이라고 말한다. “어째서죠?” 왜냐하면, 부검할 시신을 닦은 물, 그것으로 만들어진 비눗방울이기 때문이다. 이 예기치 못한 테러에 비눗방울은 아래를 향해 조용히 하강하고, 웃음은 사라진다. (테레사 마르골레스의 <공기 속에서>)
그제야 사람들은 피부 위에 닿는 누군가의 죽음을 인식한다. 나의 것이었을지도 모를 죽음을 누군가 감내했다는 것, 우리가 살리지 못했던 죽음을, 다시는 재회할 수 없는 죽음을 인식하면서 우리는 천천히 연결의 감각을 느낀다.
- 세상은 언제나 이렇게 뒤늦게 다정해서 무력하게 아름답다. 그 안에서 갈피를 못 잡는 우리, 흔들리는 시야, 머뭇거림과 주저, 마침내 결단을 하기도 하고 물러나기도 하는 사람들. 우리는 모두 비눗방울의 흔들리는 궤적을 따라 걸어간다. (p28)
생소한 사건 속에 파뭍힌 억울한 죽음들을 읽어나가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왠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다. 아무런 설명 없이 그 예술가의 작품을 봤다면 아마 나는 이토록 깊이 조응하는 감각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천천히 글 속으로 스며들어가 마주하는 잔인함은 더이상 피하고 싶지만은 않은, 두려움 너머의 ‘연결된’ 세계를 보여주었다.
- 기억하고, 되찾고, 기록하고, 옮겨담음으로써 체화되는 어떤 존재들의 흔적을 부각하는 일. 그렇게 연약한 몸이 떠난 후에도 오래도록 남겨지는 물건과 그 물건을 종이 위로 붙잡은 이중의 흔적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더 이상 이곳에 없지만 사실은 모든 곳에 있었던 당신을 되찾는다. (p137)
- 자율성 없는 체계 속을 굴레처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다정해지는 것, 알아차리는 것, 그럼으로써 누군가를 살려내는 것이다. 거창하지 않은 그 마음이 간절한 마음으로 구원을 기다리는 자를 살게 한다. 시선 하나, 손짓 한 번 사이에서 이뤄지는 연명. 온도 높은 손의 어루만짐으로 살아갈 힘을 얻는 인간은 이다지도 취약하며 강인하다. — p9
애도의미학
한선아
미술문화출판사
(도서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