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캐리어안에든것 🗝️“ 그게 예술의 기능이야. 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니나》를 썼기 때문에 수많은 러시아 여자가 철로에 몸을 던지지 않아도 되었던 거라고. 모든 건 한 번이면 충분해. 아름답고 결정적인 한 방. 그러니 너희들은 이제 다른 길을 가. 인간 경험의 폭을 넓혀, 어른이 되라고. ” | 102, <항상성>-시공간을 아우르는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해진 미래. 더이상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우리는 여전히 인간다움을 찾아 과거로의 여행을 계속한다.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미래의 모습은 어딘가 서늘했다. AI에 정복당한 채 모두가 파멸해버린 세계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과거를 바꾸기 위한 끊임없는 시도였다. 이 지옥같은 세상에 더 이상 인간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에 그들은 기어코 그 인간다움을 지켜내려 몸부림친다. “ 도대체 순수한 인간이 뭔가요? 왜 우리가 그런 게 되어야 하는데요? ”이 두 문장이 듀나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이유는 ‘인간’의 자리에 ‘문학’ ‘SF’ ‘한국인’ ‘인종’ ‘성별’ 등을 넣어도 상관없기 때문이다. 듀나는 ‘어떤 것’으로 규정되는 것을 거부하며 역설적으로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움켜쥔다. 이게 바로 듀나가 장르와 소재, 세계를 향유하는 방식이다.| 책 소개 중에서번뜩이는 아이디어와 기발한 소재가 가득했고 전에 상상해본 적 없는 미래의 모습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오지 않았으면 하는 모습이랄까? 하지만 그 안에서도 여전히 인간다운 면모(좋은 의미일수도, 나쁜 의미일수도)를 잃지 않은 것을 보면 인간의 본성이란 수세기를 관통하면서도 여전히 어리석고 쉽게 바뀌지 못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 표제작 <파란 캐리어 안에 든 것>의 도입부에는 2024년 12월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어 내가 아는 지금의 한 장면 속에 듀나작가가 그리는 미래의 한 장면이 겹쳐지는 묘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같은 시공간에 존재하며 이렇게나 서로 다른 경험과 생각을 갖고 산다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겠지만) 생경하면서도 마치 다른 차원의 여행을 한 것처럼 짜릿했다. -아쉬웠던 점은 역시 단편 소설이 극복할 수 없는 ‘길이‘의 문제랄까? 이 짧은 이야기 속에 온갖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담겨있다보니 독자의 입장에서 그 속도에 맞춰 따라가기가 버거웠다. 자주 무슨 말인지 헤아리려 애써야 했고 이제 겨우 시작했는데 서둘러 끝나는 느낌이라 읽고나면 뭔가 아쉽다는 느낌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이 재밌는 소재를, 제발 이게 끝이 아니기를! 그래서 파란 캐리어 안에 뭐가 들었냐면……더보기-시간 제국주의라고들 했다. 첨단 무기로 무장하고 기술적으로 뒤진 시대의 사람들을 정복하는 행위였으니 정확한 기술이다. 하지만 엄마와 엄마를 따르던 사람들은 그걸 당연히 해방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를 노비군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자신이 탄압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잘 못한다. | 171그리고 네 말이 맞아. 크게 보면 다를 게 없어. 우린 그냥 게임을 하고 있을 뿐이야.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어. 정말 아무것도. 우린 미리 만들어진 무한하게 갈라진 미로 속에서 길을 찾는 개미 떼에 불과해. | 179통로 저편의 세상은 황량했다. 밤이었다. 하늘은 검은 구름으로 덮여 있었고 색깔이 있는 건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게 검거나 희거나 회색이었다. 하지만 공기는 숨을 쉴 수 있었다. 다른 곳은 여기보다 덜 죽어 있다는 뜻이겠지. | 182우린 이런 우연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의미 없는 우주 안에서 우리만의 의미를 찾으려 하지. 만약 우리가 그때 다른 지역에서 살아남은 다른 아이를 발견해 구출했다면 우린 또 다른 의미를 가진 다른 이야기를 그렸을 거야. 아마 화옥이 죽고 그 다른 아이가 살아남는 다른 시간선도 있겠지. 우린 지금 화옥을 소중하게 여기듯 그 아이를 소중하게 여겼을 거야. | 189우린 아름다움과 별로 어울리지 않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렇게 그걸 갈망하는 게 아닐까. | 207(도서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