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묻는다
정용준 지음 / 안온북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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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는 아이들이 더는 울지 않게
슬픈 아이들이 더는 슬프지 않게 ” | 77

다큐 프로그램 작가 ‘유희진’은 아동학대를 다루는 에피소드를 촬영하며 한 목사 부부와 그들의 두 아이를 만났다. 목사는 못난 질그릇을 수려하고 빼어난, 쓸모있는 그릇으로 만드는 ‘토기장이‘가 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며, 그 과정에는 늘 고통과 인내가 수반된다고, 아이들은 그것을 참고 견디며 이 세상과 주님의 뜻에 부합하는 아름다운 그릇으로 다시 태어날 것 이라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그 뜻에 깊이 감응한 몇몇 신도들은 자신이 낳은 ’못난 토기‘를 빼어나게 정련하느라 기도하고 꾸짖고 열과 성의를 다해 그들의 자식을 ‘깨뜨렸다’. 자신이 하는 일이 신성하다고 믿었다. 죄 지은 자의 구원이며 사랑이라 믿었다.

” 때문에 고행은 계단입니다. 한 발 한 발 올라가면 그 분께 닿을 수 있죠. 고통이 필요합니다. 흘리는 눈물의 양 만큼 마음이 씻겨지는 법. 더 많은 눈물. 더 많은 고통. 거룩하고 깨끗한 그릇이 되어가는 과정입니다. 나는 딸에게 그것을 가르치고 있는 겁니다. “ | 57

어떤 이유에서인지 유희진은 부모의 학대로 고통받다가 희미해진 불꽃처럼 사라져버린 아이들을 놓아버릴 수 없었다. 방송이 나간 후에도 추가적인 취재를 이어가던 어느 날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 몇몇 학대 부모들이 돌연 사라져버린 것. 그중 하나는 강물에 투신한 변사체로 발견되었고, 부검 결과가 놀라웠다. 물고문의 흔적과 몸 속에서 검출된 락스 성분. 이건 죽은 자가 그의 자식에게 했던 학대의 방식이었다.

도대체 누가, 왜?
이들을 심판하고 있는 것일까?



<너에게 묻는다>는 못나고 약해빠진 인간의 내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것이 너의 얼굴이라고 들춰내는 것 같았다. 한 번도 마주하고싶지 않았던, 그러나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약한 모습들. 어쩌면 이것은 또한 사랑에 대한 질문일 것이다. 당신이 지금 믿고 있는 것이 사랑이 맞느냐고, 슬퍼도 웃는 아이와 기뻐도 우는 어른은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놓여진 이들이 정말 사랑을 하는 것이 맞느냐고.

“ 사랑이 차올랐다가 사라진 자리. 그 무게와 부피만큼 움푹 팬 기억을 오래도록 바라봤다. 처음엔 정리된 나의 대답을 들려주려 했지만 나중엔 너에게 묻고 있었다. 사람이 무엇이냐고. 사랑이 무엇이냐고. ” | 347 작가의 말

+ 아동학대를 다루는 글이라서인지 격한 감정 이입에 읽는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학대를 당하면서도 엄마를 사랑하기 때문에 참아내고 죽을 결심까지 하는 아이를 보며 내가 사는 세상이, 그리고 부모로서 내가 사랑이라고, 사랑해서 그런 것 이라고 정의하는 그 모든 것들이 정말 사랑이 맞는지 마음 한 켠에 서늘한 냉기가 돌았다. 내 아이는 충분히 사랑 속에 자라고 있을까. 화를 낼 때 나의 표정을 본 아이가 깜짝 놀라거나 움츠려들 때, 나는 거울을 들어 내 얼굴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여기 이 거울 안에 갖힌 나를, 아직도 다 자라지 못해 떼를 쓰며 어르고 달래주길 바라는 아이같은 나를.

+ 성경에서 욥의 이야기나, 분명 하나님의 뜻인데 그것이 폭력의 근거가 되는 잘못된 믿음, 이단, 그리고 기도.. 종교적인 관점에서 이게 정말 맞느냐고 묻고 있는 듯한 글이 깊이 와닿았다. 정용준 작가의 에세이에서 성경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흥미롭게 읽었는데 이 책에서는 그 생각이 구체적으로 소설 속에 녹아있는 것 같아 이게 작가의 세계관인가 싶었다.

오래된 기도에 대한 생각. 기약없는 기다림,
누군가는 이 어둠 속에서 나를 꺼내줄 것이라는 믿음.
하지만 세상이 변하고 내가 변하기 시작한 이유는
‘내가’ 움직여 스스로 어둠을 뚫고 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전지전능한 신의 구원 보다
나의 의지가 늘 한 걸음 앞에 있다.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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