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카베 악바르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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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어둠 속, 겁에 질린 속삼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과 산들바람에 관한 이야기다, p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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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미국 해군 전함 빈센스호는 이란 민간항공기를 향해 두 발의 지대공 미사일을 발사했다. 적군의 전투기로 오인해 벌어진 일이라지만 비행기와 290명의 승객은 모두 먼지처럼 사라져버린 후였다.

이란에서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던
‘알리’와 ‘로야’ 그리고 이 둘의 아들 ‘사이러스’

미군이 격추한 비행기에 로야가 타고 있었고, 사고 이후로 알리는 모든 희망이 사라진 이란을 도망치듯 빠져나와 사이러스와 함께 미국으로 이주한다.

알리는 양계장에서 일하며 거친 삶을 간신히 버텨내었고, 어머니 로야의 죽음 이후 한 번도 제대로 울어본 적 없던 사이러스는 제대로 된 잠을 잘 수도, 이 생을 왜 계속해야하는지에 대한 의미로 도통 찾을 수 없었다.

약물과 알콜 중독으로 보낸 시간은 늘 죽음과 연결되어 있었고, 그 생각의 고리는 ‘순교자’, 즉 어떤 거대한 숙명을 안고 스스로 죽음을 택한 이들에 대한 궁금증에 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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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프로젝트’
사이러스는 왜 그토록 죽음의 의미에 집착했을까.

그의 어머니가 비행기에 탄 290명 중의 하나로 (마치 지나가는 행인1 처럼) 사라질 것을 알았다면 이 삶을 이대로 끝맺고 싶었을까.

터무니없이 흩어져 버릴 죽음이 이 삶의 끝이라면,
나는 과연 살 이유가 있는 것일까.

그가 순교에 집착했던 이유는 결국 그 순교자 프로젝트의 끝맺음을 자신의 죽음으로 승화시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다양한 역사적 순교자들에 관한 집착에서 나온 목소리로 시를 쓰고 글을 쓰며 그 죽음의 한 켠에 사이러스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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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는 그가 또 한 편의 의미없는 죽음이 되도록 내버려둘 수가 없는 것이다. 무심한듯 장난스럽지만 늘 곁을 지켜주는 사람이 있고, 모난 말을 내뱉을 지언정 서로의 안부를 뭍고 늘 그가 이 삶을 계속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둘러쌓여 있으므로, 그는 죽지 않았다.

그리고 사이러스가 죽음의 의미를 찾아 떠나는 여정에 친구 ‘지’가 함께하고, 이 둘은 뉴욕의 한 미술관에서 진행되는 <죽음-말>이라는 전시를 찾아 당장 죽음을 앞둔 아티스트 ‘오르키데’를 만나 현대 사회의 순교에 대해, 지금 이 순간의 죽음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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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가진 채워지지 않을 공백을,
사이러스는 죽음으로 막아보려 하지만
그의 심연은 결코 죽고싶지 않다고 말하는 듯 하다.
이보다 더 뚜렷하게 살고자 하는 이유를 찾는 여정이 있을까.

그를 가득 채워줄 무언가를 찾아 떠난
브룩클린 미술관에서, 그는 결국 찾는다.
사이러스의 공백은 과연 무엇으로 채워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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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그림자는 늘 우리 곁에 드리워져 있다.
그 공포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부둥켜 안고 애써 버티며 이 삶을 살아간다. 그저 살아간다. 견딘다. 숨을 몰아쉬고 다시 버틴다.

삶의 모든 사소한 순간 조차 우리는
숨겨둔 마음처럼 계속해서 이 삶을 살고자 하는게 아닐까.
깊은 숨을 다시 몰아쉬며, 우리 다시 살자고 한다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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