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되는 순간들 - 이제야 산문집
이제야 지음 / 샘터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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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에 머무른 마음의 모양이 같아서 그 자리에는
같은 마음이 뭉게뭉게 불어날 지도 모르겠구나.
우리가 모두 다른 시간을 살고 있다는 외롭고 고독한 그 이유가
우리를 시의 시간으로 모이게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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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자신의 시를 믿지 못하여 독자들에게 그들 마음 속의 시를 들려달라 청하였다. ‘시를 읽는 사람들’은 시인의 시집을 빼곡하게 채워 넘치도록 많은 순간들을 시인에게 돌려주었다. 서로 다른 시간을 사는 우리는 어쩜 이리도 서로 같은 단어로 서로의 손을 단단히 붙잡는지. 그렇게 이제야의 시를 읽는 우리는 시의 시간으로 하나 둘, 모여든다.

서로 다른 고통이 하나의 시에 모인다.
서로 다른 마음이 모여 같은 단어 위에 내려앉는다.
다르다는 착각은 이내 같다는 믿음이 된다.

“ 영원히 살아볼 수 없는 존재의 이름은 그리움이겠습니다.
더 사랑하기 위해, 더 고마워하기 위해 그리움은 우리의 역할이 되지요. 살아볼 수 없는 과거의 시간을 꼭 한 번은 살아보고 싶을 때 시가 탄생합니다. 살아 볼 수 없어서 짐작만 하는 게 아니라 살아볼 수 없어서 짐작조차 할 수 없을 때. 시는 현실에서 쓰는 기록이지만 어쩌면 시를 쓰는 순간은 이미 끝난 순간을 쓰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그리움이라고 믿으며 잘 받아 씁니다. ” |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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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는 순간은 늘 가까운듯 멀다.
손에 잡힐 듯 또 다시 뒷걸음질 치며 멀리 달아나지만 나는 그 모습을 오래 지켜본다. 그러다가 문득 어느 시의 한 구절이 나의 삶을 관통하고, 나는 그대로 가슴에 구멍이 뚫려버린다. 또 다시 어느 시를 만나기 전까지, 뚫려버린 마음을 잘 접어두고, 시가 되는 순간을 기다린다. 나는 그것을 잊는다. 그 순간은 잊혀진다. 잊었다고 착각한다. 불쑥 찾아오기를 기다린다.

이제야 시인은 이런 순간들이 그리 멀리 있지 않다고 말한다.
아주 특별하고 찬란한 순간이기 보다는 오히려 너무 흔해서 지나쳐버리게 되는, 초라하고 남몰래 무너져내리고 어디론가 숨고 싶어지는 순간들 속에 ‘시’가 숨겨져 있다고 말한다.

그 보석같은 순간의 말들을 하나씩 꺼내자고,
우리 모두의 시간이 사실은 이토록 빛나더라고,
작고 초라해도 그 안에 오롯이 삶의 의미가 담겨있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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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되기까지 지난한 시간 속에 뭍어나는 진중함과 섬세함, 유려하게 풀어내는 그의 언어들 속에서 내가 찾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그저 ‘나‘라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서로 다르지만 같은 우리를,
시인의 삶이 담긴 시가
어느새 나의 시가 되기를 기대하면서.
모든 순간은 시였다.

+
같은 슬픔과 아픔이었다면 그저 위에 겹겹이 쌓이고 말았을 마음들이 다른 슬픔과 아픔을 만나 몸집을 키워가며 큰 모양을 만듭니다. 그 모양이 눈덩 이만큼 커져 다시 묵묵히 삶을 구르겠지요. 우리는 이것을 시가 되는 순간이라고 기억하면서요. | 30

나를 가둠으로 대화가 시작되고 그 대화로 시를 쓰며 가장 고요하고 묵묵한 속사정을 기록하는 순간. | 55

아주 작은 진실로 사랑을 한다면 그것은 거짓일까, 아주 작은 허구로 사랑을 한다면 그것은 진실일까. 그 무엇도 공평할 것이라는 약속 은 없었다. 시를 쓰는 일은 시가 되는 순간은 세상의 모든 진실과 허구가 만나, 이곳에 없는 세상이 탄생하는 때. |118

돌아보지 않는 시간을 나누어주고 싶은 계절에 사랑하는 이들이 모여 짧은 마음을 나누어주었다
다정한 마음들 사이에 고단한 마음 하나가 있었다
마음을 주다가 마음의 자리에 대해 생각했다. | 153

모든 시간으로 가려면 건너는 법을 알아야지
오지 않은 아침의 말들에게 물었다.
놓아준 적 없는 햇빛에도 마음이 그을린다
위로되지 않는 여름날 우정처럼 | 189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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