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이전의 아이히만 - 대량학살자의 밝혀지지 않은 삶
베티나 슈탕네트 지음, 이동기.이재규 옮김 / 글항아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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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거짓말로 사람들을 조종하고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었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투명성을 만들고 아이히만을 그가 있어야 할 자리에 두는 것이지, 그가 쏟아내는 말에 놀라 말문이 막혀버리는 것이 아니다. ” p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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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역사적인 대량학살을 조직했던 아돌프 아이히만이
유대인 학살 지시자로 지목되어 예루살렘의 법정에 세워졌다.

한 민족을 상대로 ‘최종해결’, ‘절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더 많은 유대인 이 땅에서 사라지게 할 수 있는지에 골몰했던 그에 대해,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주었다. 법정에 세워진 그는 근면한 나라의 일꾼으로, 그 누구보다 독일이라는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자로 둔갑하여 카리스마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초라한 인물로 이 세상에 비춰졌다.

독일인들은 이 프레임을 좋아했다.
이 얼빠진 젊은이 하나가 민족 살해라는 ‘버튼’을 잘못 누르는 바람에 그런 치욕의 역사가 새겨졌으니, 이는 독일 민족 전체의 잘못은 아니라고, 악의 평범성의 탈을 쓴 어느 성실한 근무자의 헛된 욕망으로 치환하기 아주 적절했던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눈을 감고 싶어했다.
치욕의 역사를 저 안쪽 깊은 곳에 묻어두고,
조용히 잊혀져 가기만을 바라왔다.
하지만 진실이라는 것은 늘 그 빛을 발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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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베티나 슈탕네트는 예루살렘 법정에서의 그의 모습과 그의 진술 보다는, 그가 어떻게 그 자리에 서게 되었는지, 예루살렘으로 납치되기까지의 그의 행적과 그에 대해 남겨진 모든 녹취록, 인터뷰, 기록들을 살폈다. 그리고 그에 대한 결론은,
악은 전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비범했다.

‘사유의 결핍이 낳은 도덕 불감증’
법정에서의 아이히만이 고의적으로 초라한 증언자가 되어 자신은 실질적인 권력이 없었고 다른 사람들의 지목에 의해 이 자리에 세워졌을 뿐이라고 증언했고, 오랫동안 누군가를 심문해왔던 그는 그 누구보다 훌륭하게 이 심문 당하는 역할을 수행해냈다.

이 책은 한나 아렌트의 사유를 반박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예루살렘 법정에서의 아이히만은 한나 아렌트가
악의 평범성이라는 적확한 표현으로 다시 구현해 냈으니,
이제 예루살렘 이전의 그가 진실로
한낱 일꾼에 불과했는지를 살펴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슈탕네트가 발견한 기록들은
그가 단지 명령을 따르는 사람은 아니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는 숫자에 연연했고(얼마나 많은 유대인을 죽일 수 있는가) 더 높은 지위를 갈망했으며, 도피 신세가 되어서도 그곳에서 다시 세력을 모아 혁명을 도모하고자 했다. 자신이 직접 쓴 기록을 수도 없이 남겼고, 언론이 밝혀낸 사실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박해왔으며, 어느 한 순간도 그는 누군가의 지시만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사람이었고,
스스로 권력을 손에 넣으려 ‘노력’한 사람이었다.
그는 전혀 평범하지 않은 의지를 갖고
한 민족을 말살하려 한 악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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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비범한 악인의 이미지를 오늘날까지도 눈앞에서 마주해야 했다. 2024년 12월 3일이 가슴에 새겨진 우리에게, 4월 4일 금요일 11시 22분, 탄핵이 인용되던 그 순간, 그제서야 차가웠던 겨울이 끝이 났다.

우리가 지켜봐왔듯, 그 어디에도 ‘무사유’는 없었다. 오히려 계엄이라는 아주 적극적인 방식으로 우리를 억압하려 했던 그를, 우리는 방관하지 않았으며 끊임없이 옳은 것을 향해 걸어갔다.

슈탕네트는 어쩌면 이런 모습을 보고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던 잔인한 민족 말살 자행한 사람을 아무런 꾸밈 없이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상처를 그대로 드러내보이는 것. 그것이 아물때까지 함께 연대하고 극복하며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는 것.

오늘 그 역사를 마주했기에 나는 이 책이 더 뜻깊었다.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거짓으로 치장을 해도 진실은 드러난다. 우리가 그 진실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고 있으므로.

#도서제공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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