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사람 열린책들 한국 문학 소설선
고수경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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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지 않아,
하지만 여전히 나와는 상관없는 타인, ‘옆사람’.

그는 나의 친구이기도 하고, 배우자 이기도,
나의 학생이기도, 가족이기도, 이웃이기도 하다.
마음을 모두 내어줄듯 늘 가까운 것 같지만
한 걸음만 물러나면
관계의 깊이는 어느새 납작해져 버린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한없이 깊어지다가도
어떤 한계에 부딪히면 너무 쉽게 산산조각이 나고,
우리는 그렇게 조각난 관계의 파편 속을 살아간다.

이미 꺼져버린 촛불을 바라보며,
이 자리에 빛이 나고 있었지.. 떠올리는게 고작인데,
희붐하게 눈가를 맴도는 빛은
여전히 남아있는 어떤 감정을 떠오르게 한다.

잊고 있었던 나의 감정.
어떤 선의에서 우러나는 감정일수도 있고,
관계에 대한 불편한 감정일수도 있다.

고수경의 글은 이 사소한 감정들을
아주 얇은 종이처럼 만들어서
수많은 레이어로 재탄생시킨다.

서로 다른 색과 이미지가 놓여진 종이들을
겹치고 겹쳐 한 데 모으며,
갈수록 오묘한 빛을 띠는 작품을 보는 듯,
익숙한 상황 속에서 자주 생각해왔던 것들이
거짓말처럼 글 속에서 재현된다.

그리고 나는 이제서야 나의 마음을 살펴본다.
옆사람을 곁에 두느라 정작 소홀했던 내 마음이
엉엉 우는 소리를 이제서야 듣는다.

“ 잘 모르고 지나친 오래된 마음,
그것이 꺼지지 않고 보내오는 신호,
이를 알아차렸을 때의 후련한 상태 ” | p262

이 낡고 지친 마음을 들고
다시 한 번 숨을 불어넣어본다.

그래서 이 관계의 끝은 해피엔딩일까.

‘내 마음을 외면하지 않은 채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해석하는 일.’(p263)을 위해,
우리는 또 한번 관계의 바다로 기꺼이 빠지고만다.

+ 문장들,

이건 내 탓은 아니야. | 242, 옆사람

어차피 다 똑같아. 어디든 비슷할 거야. 나는 이런 곳 하나만 있으면 돼. 지우와 윤아에게는 이곳이 세 시간짜리 에어비앤비였던 거라고, 이제야 강은 생각했다. 바꿀 수 없는 것들을 피해 숨을 수 있는 방 한 칸. 그중에는 모텔이 아닌 곳도 한 군데는 있었다. 강은 거기서 본 지우의 뒷모습을 기억했다. | 33, 새싹 보호법

윤아야, 미안한데, 너희가 정말 괜찮을까? 괜찮지 않은 거라면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지우가 아무것도 아니에요, 하고 돌아갔을 때 강이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 버린 것 같았다.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고개를 내밀자 한 블록 너머에 스쿨 존 표지판이 보였다. | 41, 새싹 보호법

매일 아침에 반 층의 계단을 내려가고 저녁에 반 층의 계단을 올라오면서 여기에 내 하루가 들어 있다고 생각하곤 했다. 누구에게 아는 척하고 말을 걸기에는 일곱 칸의 계단이 너무 짧다고. | 110, 이웃들

지영이 온 이유는 다정한 사람이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지영은 은희가 그 공을 버리는 걸 보고 싶었다. 그 모습을 보면 이전의 일들은 중요하지 않고, 우리는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144, 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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