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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없이 우리가 법을 말할 수 있을까
천수이 지음 / 부키 / 2025년 1월
평점 :
#사랑없이우리가법을말할수있을까
#천수이
#부키
“ 구청 화장실 앞 한 평짜리 법률 상담소
그곳에서 만난 찡하고 짠한 사람과 세상 이야기 ”
다를 수, 다를 이 ’천수이’라는 이름으로
그의 운명은 이미 어느 정도는 정해졌던걸까,
시작부터 남다른 변호사 천수이님의 ‘사람과 세상의 이야기’는 어떤 거창한 재판 사례보다는 바로 우리 곁에서 일어나는, 그것도 어딘가 그늘진 곳에서부터 끌어낸 잊혀질법한 우리의 이야기다.
성폭력과 학대에 시달리다 어렵게 용기내어 찾아오는 사람들, 평생 모은 돈을 사기당하고 변호사 수임료를 낼 형편도 안되어 어렵게 찾아온 그들, 그런 이들이 수소문 끝에 찾아오는 곳, 존재감이 희미한 우리 이웃들의 속사정, 외롭고 하소연할 곳 없는 이들이 주로 그의 상담 테이블을 찾아왔다.
변호사, 법학전문박사 그리고 사회복지사 2급이라는 낯선 타이틀을 한 줄위에 세워둘 수 있는 사람이 어디 흔할까. 그렇게 힘들게 로스쿨을 졸업하고 (비싼 등록금 덕분에 장학금을 받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공부해야 했기에) 첫 직장이 구청 법률상담 변호사라니, 평탄하지 않을 것을 알고도 선택했지만 그가 만나온 수많은 케이스들에 담긴 우리 이웃의 이야기는 믿기지 않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법률 자문 역할이기에 뾰족한 해결책 보다는 두루뭉술한 가능성 뿐인 상담이지만 당사자들에게는 늘 한줄기 빛 같았고 그들의 삶을 지켜주는 든든한 방패막 이었다. 그러면서도 시간이 지날수록 그가 다짐한 한가지는,
“ 직접 겪어 보지 않고는 그 작은 일이 한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 알 수 없다. 그러니 그런 아픔에 가슴 깊이 공감하지는 못하더라도, 그까짓 일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비난하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 한다. 변호사로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느낀 한 가지는 누구의 삶도 내가 감히 쉽게,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 124
누구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 이야기로 평생을 동굴에 갖혀 지낸 이들이 그의 상담 테이블 위에서 울고 웃고 환해진 얼굴로 돌아간다.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법적 다툼의 이면에 숨겨진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일지 모른다.
+ 끊임없이 알려고 노력하고 다양한 케이스 속에서 어떻게 하면 이 사람을 도울 수 있을지 고민하는 모습이 어떻게 이렇게 따뜻한 사람이 있나 읽는 내내 두 눈을 의심해야만 했다. 때로는 쓰디쓴 말을 내뱉어야 하고 도울 수 있는 방법이 고작 말 뿐이라 허탈한 심정들지라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사람들에게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노력으로 가득한 책이다.
법적인 대답 보다는 그간 얼마나 힘들었는지 또 앞으로 얼마나 힘든 날들을 보내야 할지에 대한 공감이 필요하다. | 243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정말 잘 듣는 사람이다. 살아온 세월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보고 들으며 느꼈다. 나를 찾아온 이들 한 명 한 명이 자신들의 이야기 속 주인공이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나 역시 주인공이었다. 이 한 평 짜리 우주 안에서만큼은 누구보다 그들을 위한 변호사였다. 차선이라 생각했던 곳에서 나는 최선을 다했고, 그토록 원했던 진정한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 290
의뢰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변호사이기 이전에 누군가의 딸, 친구, 직장동료로 살아가는 내 이야기와 닮아서 공감하기도 하고, 또 완전히 다른 세상의 이야기여서 놀라기도 했다. 때로는 같고 때로는 다른 이야기들을 파고들면 그 안에는 늘 누군가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정의한 '사랑'은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이다. 누군가를 아끼는 그 마음, 사랑과 신뢰가 깨질 때 문제가 발생하고 법적 분쟁이 시작된다. 그러니 사랑을 이해하지 않고는 누군가의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해 줄 수 없다. 숱한 상담을 하면서, 엄격한 법적 논리보다 진심에서 우러난 이해와 사랑이 보다 나은 답이 되는 순간이 많았다. | 290
(도서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