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지음 / 래빗홀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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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유토피아는…
1부터 10까지…
이 책을 읽고나면 자연스레 귓가에 맴돌게 될 말. 너의 유토피아는. 1부터 10까지. 도무지 어떤 기계인지, 어떤 역할을 했던 것인지 알 수 없는 망가져버린 기계가 반복해서 ‘나’에게 뭍는다. 여전히 낯선 ‘유토피아‘에 대해서.

형식은 전형적인 SF소설이지만 정보라 작가만의 다양한 문체가 살아있어 ‘글 읽는 맛’이 있다고 해야할까? 어떤 작품에서는 쉴 새 없이 쏘아부치고, 어떤 작품에서는 깔깔거리며 웃게 하고, 어떤 작품에서는 기계라고는 전혀 생가하지 못할 만큼 상실에 대한 아픔, 연민을 간직한 기계의 생각을 읽는다. 시대적인 배경과 사건만 아니라면 현재를 살아가는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미래의 그들. ’사람‘이라는 존재는 더이상 유일무이하지 않다. 오히려 사람은 진화와 돌연변이를 통해 또 다른 생명체로 변해버린 미래의 사회. 하지만 그들이 그다지 낯설지 않았다. 여전히 사람다운 고민과 사람다운 감정을 간직한 채 해체되어가는 세상을 살아간다.

‘우리는 모두, 여전히, 다 같이, 싸우고 있다.’
작품속의 존재들은 여전히 싸우고, 분투하며, 이겨내고, 슬퍼하고, 그리워하고, 연민하며 살아간다. 단 하나의 씨앗이라도 싹을 틔우기를 간절히 염원하는 마음으로, 진화의 끝은 오히려 대자연으로의 회귀라는 믿음을 간직한 채로. 글을 읽는 내내 우리가 결코 그리 멀지 않다는 믿음이 있었다. 생각보다 가까이에서, 서로를 지지하고 연대하며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위를 따뜻하게 달구는 햇살처럼, 그 위에 앉아 잠시간 숨을 돌리는 내가. 그리 외롭지 않은 내가. 그런채로 살아가는 내가 있었다.

“ 나와 당신은 더 좋은 세상을 위해서 아주 조금씩이라도 함께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 것이다. 생존하고 기억하고 애도하며. ”
p363

-Maria, Gratia Plena
-씨앗
-너의유토피아
-그녀를 만나다
-One More Kiss, Dear


나는 다른 기계의 일부가 되고 싶지 않다. 나는 충전하기 위해서, 통신하기 위해서 생산되지 않았다. 나는 느리고 약하고 지적인 존재를 내 안에 태우고 멀거나 가까운 거리를 빠르고 자유롭게 이동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나는 이동하는 존재이다. | 77, 너의 유토피아

인간은 어째서 노화하고 어째서 죽어야만 합니까? 인간은 어째서 기계가 아닙니까?
그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습니다.
어째서입니까?
인간 스스로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 228, One More Kiss, Dear

절대 잊지 않는 건 그 순간순간의 감정이었다. 기억도 논리도 이성도 인간의 모든 지적 활동이 다 사라져도 마지막까지 남는 것이 감정이다. 그 분노와 공포와 충격과 슬픔과 원한과 거대한 상실감만은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건 내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 246, 그녀를 만나다

기억은 거기서 끝난다. 그녀의 두뇌 안에 저장된 장면과 사건들이 어디까지 현실이고 어디서부터 꿈이나 환각인지는 알 수 없다. 사람의 뇌는 현실의 경험과 환상의 경험을 구분해서 저장하지 않는다. | 278, Maria, Gratia Plena

그게 원래 자연의 방식입니다.
해는 당신들의 허가를 받고 뜨지 않습니다. 비도 당신들 허가를 받고 내리지 않습니다. 당신들이 기업을 만들고 특허를 내고 이윤에 혈안이 되고 훨씬, 훨씬 전부터 자연은 자연의 방식으로 존재해왔습니다. 우리는 그 방식대로 사는 겁니다. | 346, 씨앗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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