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빛과 멜로디
조해진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8월
평점 :
이런 생각을 해보자,
“ 살마의 남동생은 그때 고작 일곱 살이었다. 함자, 라는 이름의 그애는 세살 때부터 시리아 정부군에 포위된, 반군 점령 도시인 알레포에서 살아왔으므로 언제라도 폭격기나 탱크가 집과 건물을 무너뜨릴 수 있는 곳, 사람들이 끊임없이 피 흘리며 죽어가는 그런 곳이 세상의 전부라고 여긴 채 짧은 생애를 마감한 셈이었다.
함자는, 그런 풍경에만 익숙했을 뿐 물놀이를 할 수 있는 해변과 놀이기구가 가득한 테마파크 같은 것은 끝내 경험해보지 못했다. 소리가 나는 장난감, 아이스크림으로 만큼 케이크, 피아노나 바이올린 선율 같은 것도 그는 알지 못했다. “ (p58)
지금 내 앞에서 한참 레고 장난감을 만들고 있는 나의 아이도 7살이다. 내가 평온하게 책장을 넘기는 이 시간에도 누군가는 죽어가는 아이를 붙잡고 울부짓고 끝나지 않는 공습의 공포속에서 떨고 있겠지.
각각의 삶이 흘러가는 동안 누군가는 스노우볼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로부터 삶으로 이어지는 가느다란 희망 한 가닥을 붙잡고 있다. 누군가는 그 외로운 이를 향해 자신의 수줍은 손을 내민다.
/ 부모에게 버림받고 방치된 아이였던 ‘권은’은 같은 반 반장이었던 ‘승준’에게 선물받은 카메라를 통해 다시 삶으로 연결된다. 시간이 흘러 권은은 주로 분쟁지역을 다루는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승준은 기자가 되었다. 시리아 내전을 촬영하던 권은은 왼쪽 다리를 잃게 되고, 이제 막 한 아이를 기르게 된 승준은 다시 기억 속의 권은을 떠올리며 그녀의 삶 속으로, 사람을 살리는 일과 기억되어져야만 하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 조해진작가는 늘 따뜻한 글을 쓴다. 적어도 내 기억에는 그렇다. 생각하지 못했던 어두운 곳을 애써 들춰내서 내 시선이 그 곳에 닿도록 하고는 어느새 따뜻한 빛을 그 곳에 비춘다. 어느 한 광고에서나 봤던 전쟁 지역의 참상이 떠오르게 하며 어딘가에서 고통받을 누군가에 대해 기도하게 한다. 내가 그들에게 보내는 이 작고 하찮은 관심을 ‘호위’라고 칭해도 될지는 모르겠다.
승준이 권은에게 준 카메라 처럼
장 베른이 알마에게 준 악보 처럼
그렇게 한 조각의 사랑이 모이기를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기를 바라게 되는건
나도 어쩔 수가 없는 마음이다.
기억속의 장면들이 눈송이로 수렴되어 가고,(12)
마음은 또다시 난폭하게 헝클어진 채, (15)
감당하기 힘든 슬픔으로 응결될 테지만, (54)
이런 문장을 지어내는 사람의 글이라면
이 온기를 세상에 전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나는 내 앞의 글자가 흐릿해져 더는 읽지 못할 때까지 끊임없이 그녀의 글을 찾을 것이다.
“ 세상이 지금보다 황폐해져
네가 기대어 쉴 곳이 점점 사라진대도,
네가 그것을 잊지 않는 한,
너는 죽음이 아니라 삶과 가까운 곳에
소속돼 있을 거야.
아무도 대신 향유할 수 없는
개별적이면서 고유한 시간 속에…
네가 어디에 있든.
언제까지라도. ”
| p247
(도서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