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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바다 ㅣ 암실문고
파스칼 키냐르 지음, 백선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6월
평점 :
음악은 음표의 흐름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 아주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사람에 따라 이해가 다르고 음이 주는 여운도 모두가 다르다. 수만가지 가능성이 펼쳐진다. 마치 ‘사랑’같다.
한없이 사랑을 주고자하는 마음,
그 사랑 안에서 유영하듯 떠도는 마음,
사랑 앞에 한 걸음 물러서고 싶은 두려움,
모든 이의 음악은 각자의 마음 속에서
서로 다른 꿈을 꾼다.
모든 이의 사랑 또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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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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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 키냐르의 글은
마치 깊고 푸른 심연 속을 헤엄치는 듯 했다.
도무지 똑바른 길이 보이지 않는다.
혼란속에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도
마치 마법을 부리듯, 글은 이어졌다.
자주 길을 잃었고 그저 앞으로 나아가는건
정답이 아닌것 처럼 보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계속 그 자리에
머물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읽었던 문장을 다시 읽고
한 페이지를 읽고 그 앞으로 돌아가
같은 문장을 다시 읽어본다.
페이지를 넘겨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무의미한 순간이 자주 도래했다.
그들이 연주하는 악기가 가진 고유의 선율처럼,
사물과 현상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선,
여러 번 당황스럽게 했던 관능적인 묘사들,
작가의 깊고 심오한 사유를
어떤 정해진 흐름을 두고 이해하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그저 그 흐름에 몸을 맡기듯,
그의 문장에 내 모든 감각을 맡긴다.
나를 끌고가는 곳을 따라서 흘러가는것 만이
이 책을 읽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나는 과연
누군가와의 사랑을 두고 세월의 침식 속에서
얼마나 단단히 지켜낼 수 있을까.
말할 수 없는 어떤 이유로 지켜내지 못한 사랑도
여전히 제 나름의 빛을 지니고 있는 이 지고지순한 사랑이.
깊고 푸른 바다에 수많은 사랑의 조각들이 떠다닌다.
그들은 어디론가 계속 흘러갈 것이다.
정해진 목적지 없이
그저 지금 이 순간 사랑을 하며. 흘러간다.
이 페이지에 머물러 그의 사유속으로 흘러간다.
우리가 불 밝힌 양초 사이에서 무릎을 꿇고 아직 관 머리맡에 자리하고 있는 동안 우리가 애도하는 사람들은 이승과 지옥을 경계 짓는 물결에 이른다. 이때 음악이 표현하는 슬픔의 잔향은, 마지막 노래의 숨결은, 가련하게 흐느끼는 헐떡임은, 그 파도의 물결은 심연의 육중한 어둠 속으로 소멸한다. 그러는 동안 인간의 그림자들은 영혼이 되고, 영혼은 추억이 되어, 돌 위에 새겨진 글씨가 되어, 보잘것없는 연기가 되어 흩어지고, 아주 빠르게 모든 것에 대한 기억이 지워진다.
끈질기게 남아 있는 모든 윤곽은 조류가 펼쳤다가 불현듯 곱게 빗질하고 그러다 다시 흩트려 놓는 해초처럼 오래도록 저들끼리 얽힌다. 그렇게 길을 잃는다.
모래사장 위를 비추는 공기 속 햇살처럼.
우리는 이름들을 참으로 빨리 잊는다.
p360, 「지옥을 경계 짓는 물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