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은의 가게
이서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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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를 던지는 게 아니라 공을 굴린다고 생각해. 힘껏 굴리면 그 방향으로 가겠지 하지만 언젠가 멈출 거야. 그때 다시 힘껏 굴리면 돼. 어디로든 갈 수 있어. 방향은 정하지 마. ”
| p 116

#마은의가게
#이서수
#문학과지성사

‘먹고살 게 없는 서른일곱이 된’ 공마은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모아 ‘마은의 가게’를 창업했다. 권리금 없는 점포, 가장 저렴한 월세를 찾아 가게를 연 것 부터가 잘못된 단추였을까. 얼마 되지 않는 예산으로 가게를 꾸려야 했기에 그 무엇도 넉넉치 못했던 그녀의 작은 가게. 손님 조차도 넉넉히 채우지 못했던 그녀의 애닳는 공간.


자영업자 중에서도 여성 자영업자가 겪는 두려움과 자괴감을 그려보이고 싶었다던 작가의 말처럼 나는 글 속의 마은이 이렇게 까지 어둡고 침울해야하는건지 읽는 동안 조금 답답했다. 공마은이 내동생이었으면 가게에 ‘텐트’를 친다는 그 순간 등짝 스매싱을 날렸을지 모르고, 😤 비상벨을 달라고 달라고 해도 왜 그렇게 안달아 도대체! (자세한 이야기는 책 속에서.. ㅋㅋ)

여성은 왜 어디를 가도, 어떤 상황에서도 성적인 문제 앞에서 한없이 나약한 존재여야 하는지. 내가 답답함을 느꼈던 것 자체가 작가의 의도이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만큼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라고 관심을 촉구하는 답답함.

그리고 우리의 공마은,
이렇게 무너지지 않으리라 믿었다. 난 이서수 작가를 믿었다. 그리고 그녀만의 방식으로 서서히 풀어져가는 엉킨 실타래들.
그렇게 책은 끝이 났고 나는 또 한 권의 아릿한 배움을 얻었다. 상처 또한 사람이고 치유 또한 사람이고, 우리 곁에는 늘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들의 연대가 우리를 숨쉬게 하는 푸른 숲이 되어주리라는 것도.

마치 어딘가 가까운 곳에 마은의 가게가 있을 것 같다. 내일은 우리 동네에 여사장님이 운영하시는 작은 빵집에 꼭 들려봐야겠다. 그녀가 만든 소세지빵이 이 동네에서 최고라고 치켜세워드릴 작정을 하며 책을 덮는다



나는 여성 자영업자들의 내밀한 세계를 처음으로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은밀히 느끼던 두려움이 가시화되었을 때 도리어 안도감이 드는 건 왜일까. 우리는 한 송이 꽃 안에 솟아난 세 개의 암술처럼 머리를 맞대고서 도란도란 얘기했다. 결코 도란도란하지 않은 이야기를. | 131

하지만 여긴 내 가게이고, 나는 이제 그만 울고 싶었다. 그만 억울해하고 싶었다. 그 누구도 나에게 입을 다물라고 말하지 못하는 공간에서 내가 누군가에게 입을 다물라고 말하고 싶었다. 내가 나에게 최대한 상처 주지 않는 방향으로 상황을 정리할 수 있을 때까지. | 180

가게에서 멀리 벗어났다가 다시 돌아올 때마다 나는 아주 조금씩 단단해졌고, 가게는 그런 나를 말없이 품어주었다. 우리는 볼품없는 서로의 존재를 점점 애틋하게 느끼고 있었다. 나는 가게의 마음을 알았고, 그건 나의 마음이 투영된 결과였지만 그래도 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생각이 같고, 모양새도 같고, 무엇보다 마음이 같다고. 그렇게 마은의 가게와 함께 고통스러운 겨울을 천천히 보냈다. | 206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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