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이닝
욘 포세 지음, 손화수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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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저녁,
좁은 길을 따라 무작정 차를 몰고 가는 남자.
그는 떠나야했다.
그리고는 갖혀 버렸다.
차를 돌렸어야했나,
그러나 이미 와버렸다.
눈이 내린다.

그가 왜 숲에 들어왔는지,
오늘 이전의 삶은 중요치 않다. 그는 숲에 와있고 뒤로 돌아가는 대신 더 깊은 숲 안쪽으로 들어가보기로 결정한다.


그를 이 숲으로 이끌었던 선택은
마치 한 사람의 삶의 모습같다. 누구나 인생의 길에서 어느 방향으로든 스스로 선택하여 앞으로 나아간다. 그 길이 쉬운 길일지, 험난한 길일지는 모른 채 말이다.

그렇게 깊이, 더 깊이 들어가던 중에
그는 어떤 존재들을 마주한다.
연로하신 부모님과 사방으로 밝에 빛나는 순백색의 존재, 그리고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
그것은 두려움에 뿌리를 둔 환상이었을까, 도움의 손길이었을까. 아니, 그저 ‘죽음’일 뿐이었을까.


“ 나는 아주 조용히 서 있다. 사방이 완전히 고요해졌으면 좋겠다, 나는 고요함의 소리를 듣고 싶다. 침묵 속에서는 신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적어도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내 귀에 들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
p 59



숲은 공허와 무의 상징이었지만
어느새 자기 자신의 세계로 변모한다.
‘ 폐쇄된 공간임과 동시에 무한하게 열려 있는 공간 ’
그 공간 속으로 그는 천천히 걸어간다.
그러면서 더이상의 두려움도, 후회도 없이
그는 그 자체로 빛나는 존재가 되어간다.

눈 내리는 한 밤의 꿈같은 이야기일지,
누군가에게는 깨달음의 숲이 될지,
작가는 수많은 가능성을 우리에게 열어둔 채
그렇게 글을 마무리한다.
아무런 경계도 없고,
한계가 없는 침묵의 숲속으로 우리를 인도한 채, 어느새 우리는 우리 존재 자체로 남겨진 채,

그렇게 끝이 난 이야기가
당신의 손 위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당신은 어떤 끝맺음을 하고 싶은가?


나는 그가 내민 손을 잡고, 그 순간 반짝이는 하얀빛이 나를 감싼다, 안개 같은 그 빛은 매우 부드럽고 아주 희미하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선명하고, 나는 그 선명함 속에 있다,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가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그는 숲 밖으로 나가려하는 것 같지만, 그곳이 어딘지는 알 수 없다,
p 78


개인적으로, 이 이야기와 함께 책의 끝 부분에 실린 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연설문 <침묵의 언어>라는 글도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싶다.

“ 두려움이 내게서 언어를 빼앗아간 것 같았기에, 나는 빼앗긴 언어를 다시 되찾아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려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오롯이 내 힘으로 해야 했습니다. ”
p 87

고독의 방에 머물며 끊임없이 자신의 언어를 되찾고자 했던 노력이 오늘의 욘 포세와 그의 수많은 작품으로 남겨졌다.

“ 내게 글쓰기는 귀를 기울여 듣는 일입니다. 글을 쓸 때 나는 결코 사전에 준비를 하거나 계획을 세우지 않습니다. 오직 듣기만 할 뿐입니다.
글쓰기는 행위를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그것은 바로 듣는 행위여야 합니다. ”
p 95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어느새 침묵의 언어를 읽고, 명상의 하듯 숲 속에서 어떤 희미한 존재와 마주한다. ‘읽는 행위’는 어느 순간부터 나의 내면을 ‘듣는 행위’가 되어간다. 작가는 그렇게 내면의 작은 소리를 들어볼 것을 권한다. 글이라는 것은 아무런 계획도 필요치 않고, 대단한 서사를 갖지 않더라도 그렇게 내면에서 솟구치는 목소리를 듣는 것, 그 목소리를 향해 내가 더 깊이 파고드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덧) 길지 않은 이야기이고 어쩌면 단조로운 구성에 기운이 빠질수도 있으나, 나는 그 여백이 좋았다. 무언가로 꽉 채워져있지 않고 어딘가 비어버린 공간에 읽는 사람의 생각을 끝없이 채워나갈 수 있으니 말이다. 읽고 나서 한번 더 나 스스로 그 이야기를 떠올렸을 때 더 많은 울림이 느껴졌다. 그것이 이 책의 매력일지도.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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