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더링 하이츠 (리커버) 을유세계문학전집 여성과 문학 리커버 에디션
에밀리 브론테 지음, 유명숙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워더링 하이츠‘의 언쇼가와
언덕 아래의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의 린턴가.

이 두 가문의 네 남녀와, 이들과 달리 존재의 뿌리를 알 수 없지만 이 모든 것을 손에 넣는 남자, 히스클리프.

“그는 사랑하든 미워하든 마음속에 감춰 둘 것이며, 사랑이든 미움이든 되돌려 받는 것을 일종의 무례함으로 치부할 것이다.”
p13

‘히스클리프’는 태생적으로
항상 존재를 부정당했던 사람이다. 부모에게 버려저 길거리를 떠돌았고, 언쇼가에 들어와서는 그 집안 핏줄이 아니기 때문에 몸은 집 안에 있을지언정 그의 영혼은 내내 황폐해져갔다. 캐서린 언쇼와의 인연도 결국 신분의 차이를 이겨내지 못하고 부셔져버리자 그는 ‘각성’했다. 가질 수 없다면 그 누구도 갖지 못하게 부셔버리자.

사실 캐서린의 오빠, 힌들리 언쇼의 행동도 잔인하고 끔찍했지만 히스클리프도 그의 날카로운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나를 지치게 했다. 캐서린에 대한 사랑 그 한가지만 빼면 그는 그 어디에도 없을 악의 대명사 격이다. 이런 히스클리프를 사랑했다면, 그가 또 다른 그녀 자신이라고 생각한 캐서린 또한 정상은 아닐 것이다.

“모든 것이 소멸해도 그가 남는다면 나는 계속 존재해. 그러나 다른 모든 것은 있되 그가 사라진다면 우주는 아주 낯선 곳이 되고 말 거야,”
p131

“ 넬리, 내가 바로 히스클리프야. 그는 언제나 언제까지나 내 마음속에 있어. 기쁨으로서가 아니야. 나 자신이 반드시 나의 기쁨이 아닌 것처럼, 나 자신으로서 내 마음속에 있는 거야.”
p132

이 젊은 네 남녀의 ‘미친’ 사랑에 지쳐갈때 쯤,
다시 한번 나를 돌아보게 만든건 이들의 2세, 헤어턴 언쇼와 캐시 린턴이었다.
하녀 넬리가 이 둘을 볼때면 유독 글의 분위기가 봄날의 싱그러운 햇살같고 마치 코 끝에 꽃바람이 간지럽히는 듯한 안정과 따뜻함이 가득했다.
헤어턴은 친부(힌들리 언쇼)에게도 학대당하며 자랐고 교육을 받은 적도 없이 모든 재산을 히스클리프가 가로챈 뒤 마치 그 집안의 하인처럼 자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스클리프가 떨어지던 아기를 받아냈던 순간, 아기에게는 그 기억이 남아있었을까. 목석같은 시체가 된 히스클리프 옆에서 따뜻한 눈물과 키스로 애도한 자는 그 어렸던 아기, 헤어턴 뿐이었다.

“가장 못할 짓을 당한 가엾은 헤어턴만이 진정으로 아주 슬퍼했지요. 헤어턴은 밤새껏 시신을 지키고 앉아 북받치는 울음을 참지 못했습니다. 망인의 손을 만지기도 하고, 누구든 쳐다보기를 꺼리는 그 비꼬는 듯한 험악한 얼굴에 입을 맞추는 거예요. 그리고 단련된 강철처럼 완강하기는 하나 너그러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슬픔으로 그의 죽음을 애도했어요.”
p536

어쩌면 그 누구도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줄 몰랐던 바보같은 네 사람. 그래서 더욱 먼 길을 돌아 황야를 떠돌아야했던 사람들을 앞에 두고, 새로운 세대인 헤어턴과 캐시는 비로소 솔직하게 서로를 바라보며 같은 목표를 향하게 되었다. 어쩌면 가장 쉬운 그것.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그것을.

“그러나 두 사람의 마음은 같은 목표를 향하고 있었지요. 한 사람은 상대방을 사랑하고 인정해 주기로 마음먹었고, 다른 한 사람 역시 사랑하고 인정받으려고 마음먹었던 거예요. 애쓴 결과, 그들은 그 목표에 도달하게 되었답니다.”
p504

마음을 어지럽히던 그 어떤 증오와 복수도,
깨어진 유리조간에 살갗을 베이는 듯한 고통도 모두 사라지고 처량한 경사면의 비석 세 개로만 남겨졌다. 그 어디에도 흔적도 없이. 그저 비석 사이로 지는 해의 붉은 노을이 비출 뿐이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 누군가 심어둔 씨앗에서 싹이 자랐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언젠가 그 외롭고 차가운 손을 가진 유령이 나타난다면, 그저 한번 더 손 잡아주겠다고 생각해본다. 더이상 내쳐지지 않도록. 황야를 떠도는 것을 그만 멈추도록.

++ 조지프영감 잔소리할때는 나조차도 너무 듣기싫고 지겨워져서 별 하나 뺐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번역이 정말 감탄스럽다. 그 시골스러운 투박하고 딱딱한 성격을 고스란히 사투리 섞인 언어로 전달한 것이 아닌가! 다시 한번 번역가 유명숙 선생님께 박수를. :)

(을유문화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후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