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말하지 않는 법 암실문고
마리아 투마킨 지음, 서제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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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하기 꺼려지는 것들에 대하여.
누군가의 죽음, 그로 인한 충격, 그 모든 고통의 순간에 대하여,
보기 좋게 꾸며진 ‘고통’이 아닌, 고통의 그 이면으로,
그 자체를 면밀히 들여다 보는 작업을 하게 될 것이다.
비로서 우리는 고통을 ’고통‘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된 순간이다.

이 글은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그 점이 내 안에서 마치 쿵 떨어지는 심장과 같았다.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라는 것, 작가의 목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메아리가 귓가에 천천히 맴돈다.


하루가 끝나는 시간을 잊지 마세요,
그 무렵은 ‘보편적 인간성’이라는 상상의 산물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이 얼핏 눈에 들어오는 때이기도 하다. 어떤 죽음은 그 무렵을 닮았다. 하루가 끝날 무렵이 완연히 드러내는 것들, 아무런 장식 없이 벌거벗은 그대로 완전한 외로움 속에 버려진 사람들. | 179

자살, 총기 폭력, 홀로코스트, 대량 학살, 가난, 빈곤, 소외된 사람들… 이 모든 낯선 일들, 낯설지만 언제 어디서나 일어나고,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고통받고 있을 일들에 대한 나의 작은 연민이 산산히 부셔져 내린다.
마리아 투마킨은 이 모든 죽음에 근접한 일들의 한 가운데로 걸어 들어가 그것의 실체를 하나씩 꺼내보인다. 그러면서 내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그 공감이, 연민이 얼마나 부질없고 이기적이기까지 한 일이었는지를 상기시켰다. 나는 내가 그동안 감히 공감하고 기억해야한다며 눈물짓던 일들에 과연 진심이 있기나 했던걸까. 내가 감히 그 고통을 이해한다니. 이해라니…

— 책소개에서
저자 마리아 투마킨은 고통스러운 사건을 겪었거나 겪고 있는 이들과 대화하고 이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자살 생존자, 마약 중독자, 나치 집단 수용소 생존자, 홈리스, 가정 폭력 피해자... 이들의 실제 상황은 모두 이들을 향한 통념과 다르다. 책이 진행되는 동안 통념을 배반하는 고유한 서사, 혹은 실상을 배반하는 통념의 사례가 반복해서 쌓인다. 이 과정을 통해 드러나는 한 가지의 진실은 우리가 타인의 고통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첫번째 이야기, 시간은 모든 상처를 치유한다

“5년 동안 프랜시스가 쓴 모든 글은 동생에 관한 이야기였다.” | p15

프랜시스가 12학년이었을 때,
동생 케이티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남겨진 가족들, 특히 케이티가 죽어있던 것을 처음 발견한 프랜시스는 그 후 5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그날의 일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동생의 자살 이후의 학교 생활은 그녀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교실에 앉아 내내 눈물지었고, 눈길이 닿는 모든 곳에 동생의 흔적이 있었다.

작가는 청소년 자살에 대한 기관의 역할과 남겨진 이들의 변화에 대하여 말한다. 꽤 흔한 빈도로 일어나고 있지만 늘 황급히, 분주하게 감춰지는 그것. 학교는 이런 아이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었을까? 누군가의 죽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겪은 아이들의 상처는 학교에서 더욱 여실히 들어났다. 부모에게는, 가족에게는 미처 말하지 못했던 것들이 선생님 앞에서, 친구들 앞에서는 날 것의 그 자체로 들어났기 때문이다.
상실을 마주한 아이들에게 학교는 작은 포용의 공간이 되어갔다. 누구도 말로 꺼내기 두려운 일이었지만, 슬픔은 온당하게 그 모습 그대로 존중받아야 하며 서로의 곁에서 충분히 슬퍼할 시간이 주워져야만 했다. 이 특별한 상실을 기억하고 추모하기로 변화가 시작된 순간 학교는 그 어느 곳 보다 따뜻한 안식처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그것, 시간은 모든 상처를 치유한다.

그런데, 치유라는 것.
그 상처가 정말 완전히 아물고 사라졌을까?
상실 이후에 남겨진 이들은 그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갈 뿐이다. 완전한 무결점의 상태로의 회귀는 불가능하다. 상처를 상처 그대로 기억하고 추억할 수 있도록 기억을 변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가 그들을 살려 놓으려 애쓰는 건 그들을 우리 곁에 두기 위해서다. 그리고 나는 우리가 우리 자신으로 살려면 죽은 이들을 단념하고, 그들을 보내주고 죽은 채로 있게 두어야만 하는 시점이 온다는 것도 알고 있다.” | p71

이제, 프랜시스는 말한다.

나는 이제 그 애가 돌아오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 애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지만, 그보다 먼저 그 애와 함께하는 삶을 상상할 수가 없다. | p94

상처와 함께 살아가는 일.
사람은 그렇게 삶과 죽음과 시간이 온통 뒤섞인 채 살아간다.

분명 이 글은 진지한 만큼 쉽지는 않지만,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것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다.

전미 비평가 협회 ‘올해의 비평서’ 부문 최종 후보 선정 사유
“ 당신은 낯선 대상을 만나는 것처럼 그의 언어를 만난다. 당장은 그 윤곽을 추적할 수 없고, 계속해서 그 대상으로 돌아가서 그 독특한 변주에 안착해야만 한다. 투마킨의 업적은 우리가 지나치게 익숙해져 버린 현상들(언어뿐만 아니라 총기 폭력, 대량 학살, 지속적인 구조적 빈곤 등)을 완전히 낯설게 만든다.”


by Hedda | @essay__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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