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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있는 리플리 ㅣ 리플리 5부작 1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김미정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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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문장 톰은 뒤를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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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을 때, 그는 종종 눈물을 흘렸다.
두려움과 회한의 감정이 그를 엄습했다.
그리고 거울을 마주할 때면,
항상 추악한 자신의 본 모습이 보였다.
실패하고 짓밟히고 가난에 찌든 톰 리플리가
거울을 통해 그의 눈으로 선명하게
투영되는 것을 느꼈다.
#재능있는리플리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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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리플리는 어느 날 우연히 허버트 그린리프씨를 만나 유럽에 있는 그의 아들, 디키 그린리프를 뉴욕으로 다시 데려와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뉴욕에서의 삶도 녹록지 않았던 차에 하늘이 주신 이런 기회를 톰이 놓칠 리가 없었다.
‘늘 무슨 일이든 생기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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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의 삶을 돌아보며 톰 리플리가 가장 후회한 것은 무엇이건 끝까지 해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늘 누군가를 탓하며 자신이 끝까지 해낼 수 없게끔 돌아갔던 뉴욕에서의 시간을 치를 떨며 후회하고, 유럽으로 향하는 배 안에서 ‘헌팅캡’을 푹 눌러쓰고 마치 새로 태어난 듯 다짐했다.
‘다시 시작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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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주 톰 리플리의 눈물이 보였다. 자신의 계획에 걸림돌이 되는 인물은 가차 없이 제거해버리고 완벽한 알리바이와 뒤처리까지 말끔했던 그가, 혼자가 되는 어둠 속에서는 자주 두려움과 불안에 눈물지었고 누구의 것을 빼앗은 게 아닌 자신이 직접 고른 집, 또는 가구, 물건을 정성스럽게 다루며 안정감을 찾으려는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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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건이 톰의 시선으로 전개되며 등장인물이 살해당하는 그 순간에도 톰에게는 분명 이유가 있었다고, 읽는이를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으로 끌고들어와 그를 이해시킨다. 잔인한 살인자이면서도 그의 내적인 고독과 슬픔에 공감하게끔 하는 것이 작가 하이스미스의 장치였을까? 어쨌건 그는 아주 ’재능 있는‘ 사기꾼이고 가차없는 살인자인데 내가 여기에 공감하며 그가 저지른 죄악마저도 그물 사이로 빠져나가 버리듯 모두 지나쳐버리고, 종국에는 ‘최고급 호텔, 일 멜리오!‘ 라고 외치는 그 순간은 통쾌하기까지 하다니. 뭐가 잘못 돼도 단단히 잘못된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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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저 작가의 수에 휘말린 듯하다.
아름다운 유럽의 도시들을 돌아다니며 어느 날에는 톰이, 어느 날에는 디키가 되어 남긴 모든 흔적들이 결국 하나의 큰 그림이 되어 완벽하게 짜 맞춰지고 끝내 톰 리플리를 ’톰 리플리‘로 존재하게 한다. 영화로만 알고 있던 느낌과는 사뭇 다른 톰 리플리, 구체적인 묘사와 사건의 전개, 도대체 일이 어떻게 풀리려고 이렇게 거짓말을 늘어놓는지 궁금해서라도 다음 페이지를 꼭 넘기게 했던 힘. 그 힘에 압도당하며 휴우- 한 숨을 쉬며 책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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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디키의 시체는 영영 발견되지 않을지,
언제 어디서 또 다른 걸림돌이 나타난다면
이번에는 그를 어떻게 ‘사라지게’ 할지
재능 있는 리플리의 이어지는 삶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