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쿠로스 쾌락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7
에피쿠로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쾌락이 진정한 행복이다.’

에피쿠로스를 음탕한 말을 늘어놓는 자라고 부르며 맹렬히 비난하는 사례가 책의 초반에 나온다. ‘진정한 행복은 모든 정신적 육체적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이다’라고 덧붙이지만 ‘쾌락’의 악센트는 수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세다. 그런데 왜 에피쿠로스는 ‘쾌락’으로 통칭했을까?

『에피쿠로스주의자들은 느낌이 쾌락과 고통, 이렇게 두 가지라고 말한다. 느낌은 모든 살아 있는 것에서 생기는데, 본성에 고유한 것은 쾌락을 낳고, 본성에 이질적인 것은 고통을 낳는다. 쾌락과 고통에 근거해 선택과 회피가 결정된다. 탐구하는 것 중에서 어떤 것은 실재와 관련되고, 어떤 것은 단지 말과 관련된다. 이것이 철학의 구분과 진리의 기준에 관한 에피쿠로스주의자들의 기본 입장이다』

그의 사상을 말 그대로 진정한 행복으로 집약시키기엔 에피쿠로스가 만들어낸 사상은 광범위를 오가면서도 인간적이다. 실존주의를 내세워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현실을 좀 더 자극할 만한 ‘쾌락’이야말로 그가 말한 뜻에 가깝다. 그리고 그 중심에 ‘느낌’(감각)이 있다. 이 ‘느낌’(감각)을 설명하는데 자연학과 천체 현상들에 관한 긴 논의가 이어진다.

사람들이 인생의 목적인 아타락시아(평정심)의 반대인 혼란과 괴로움(타라코스)을 겪는 두 가지 이유는 천체들이 신적인 존재들이라고 믿는 것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말한다. 에피쿠로스는 ‘평정심’을 지칭하며 보통 ‘아타락시아’(마음이 두려움에서 해방되어 평정한 상태)를 사용하지만, ‘갈레니스모스’(고요하게 하는 것)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하여 자연학 원리들에 대한 지식은 ‘평정심’을 얻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다고 강조한다.

‘평정심‘을 얻는데 자연학 전체의 주요 원리를 파악하여 정확하게 이해해서 활용하는 사람은 철학 체계의 개별적이고 세부적인 것을 전부 알지 못하더라도 남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힘이 생길 것이라고 말한다. 철학 체계 전반을 명확하게 깨우치지 못한 사람들도 ’평정심‘을 얻는 데 가장 중요한 원리들을 훑어보고 알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래서 이 책의 초반에는 자연학과 천체현상에 관한 서신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통에서 벗어나 평정심을 찾기 위해 자연학과 천체현상의 설명은 에피쿠로스의 철학에서 꼭 필요한 부분이다. 이 ‘평정심’을 통한 최종 목표는 모든 정신적 육체적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인 진정한 행복에 있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죽음으로 ‘평정심’에 쐐기를 박는 내용이 있다.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익숙해져라. 모든 좋고 나쁨은 감각에 있는데 죽음은 감각의 박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죽음은 아무것도 아님을 아는 바른 지식은 우리 삶에 무한한 시간을 더해주는 방식이 아닌, 불멸에 대한 갈망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우리가 삶의 필멸성조차 즐길 수 있게 한다. (…) 죽음은 모든 재앙 중에서 가장 두렵고 떨리는 재앙이지만,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동안에는 죽음은 우리에게 오지 않고, 죽음이 우리에게 왔을 때는 우리는 이미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죽음은 감각의 박탈이며 ‘죽음이 우리에게 왔을 때는 우리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아주 당연한 사실에 감탄하는 게 철학이며, 위안과 걱정의 마무리를 안겨주기도 한다. 그가 말한 정신적 육체적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결국 쾌락은 죽음이라는 대전제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의 극치는 아닐까.

‘모든 사람은 마치 방금 태어난 것처럼 세상을 떠난다.’

인생의 끝을 잡고 있는 참 슬픈 문장이다. 에피쿠로스 쾌락은 ‘한 세상 잘 살다 간다’로 이어지게 하는 진정한 ’아타락시아‘의 길을 맛보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는 건 분명하다.



*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생각을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태풍의 계절 암실문고
페르난다 멜초르 지음, 엄지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노골적인 단어에 집중하다 보면 책을 바로 덮을 것이다. 그로테스크를 들여다보는 통찰만이 이 소설의 완성도를 이해할 수 있다. 휘휘 젓듯 걷어 낼 건 걷어내고 비집고 들어가 찾아낸 여백의 공감하나 건지면 된다. 추악하고 배려심 없는 전개에 손사래를 쳐도 지구 어딘가에서벌어지고 있는 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멜초르의 문체는 확신에 차있다. 이유와 핑계는 찾아볼 수 없고 한곳을 향해 정확하게 칼끝을 겨눈다. 반박조차 할 수 없어 고통 그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이게 하는 힘이 있다.


『태풍의 계절』
페르난다 멜초르 / 엄지영 역 | 을유문화사 | 2022년
독일 문화의 집이 수여한 국제 문학상과 안나 제거스상 수상
맨부커상 국제 부분과 더블린 국제 문학상의 최종 후보


『다리에 난 털만큼이나 검은 스타킹과 검은 긴소매 블라우스, 마찬가지로 검은 치마와 하이힐, 또 검고 긴 머리칼을 정수리에 둥글게 말아 올린 뒤 그 위에 머리핀으로 고정시킨 베일까지, 온몸을 모두 검은색으로 치장한 그녀를 본 사람들은 모두 충격에 빠졌다. 놀라서인지 웃겨서인지, 사람들은 그녀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고 말을 잇지 못했다. 뜨거운 햇볕 때문에 머리가 타들어 갈 지경인데』


마녀의 등장에 리얼리즘을 흔들어 놓았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마녀의 존재가 시사하는 바는 컸다. 빈곤과 폭력, 혐오 그리고 차별 속에서 그들에게 믿을만한 구석이 필요했고 마녀는 우스운 구경거리인 동시에 두려움과 미신적인 존재였다.


『나무 위에서 어깨가 맞닿을 정도로 바짝 붙어 앉아있는 소년들의 등이 저녁 햇살에 비쳐 반짝였다. 어떤 등은 타미린드 씨앗처럼 갈색으로 빛났고, 어떤 등은 우유로 만든 과자나 잘 익은 사포딜라의 과육처럼 부드럽고 매끈했다. 계피 빛깔 혹은 자단목과 비슷한 마호가니 빛깔의 피부, 물에 젖어 반짝이면서 탄력이 넘치는 피부. 저 멀리서, 마녀가 숨어서 엿보고 있는 곳으로부터 몇 미터 떨어진 나무줄기 위에서 어른거리는 빛깔들. 마녀의 눈에 그 살결들은 매끄러우면서도 아직 시고 떫은 풋과일의 과육처럼 속이 꽉 차고 단단해 보였다』


눈에 보이는 것을 망설임 없이 써 내려간 이 문단은 태풍의 계절에서 제일 아름답다. 마녀는 산들바람을 타고 들판에 떠도는 남자아이들의 짭조름한 체취를 상상 속에서 음미하기 위해, 베일을 머리 위로 걷어 올렸다. 쉴 새 없이 불어 대는 산들바람에 모든 것들이 끝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빈곤과 소외, 차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순간이며, 나무줄기 위에서 어른거리는 빛깔을 통해 다가온 성애만이 유일한 탈출구였다.


유일한 시도는 극에 달하고 통제에 익숙하지 않아 가학적인 행위까지 받아들여 사회적 문제를 여과 없이 노출시키는데 멜초르는 성공한다. 표현은 쉴 틈 없이 거침없었다. 본능이라고도 내세울 수 없는 그들의 무지에서 솟아오르는 빈곤과 폭력, 마약과 동성애로 뒤범벅된 괴기한 리듬에 맞추다 보니 슬픔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불편한 진실에 펜 하나로 맞서는 멜초르에게 총알은 저속한 단어들이다. 거리감이 느껴지는 어둠의 쏟아냄은 반드시 존재하는 사실을 전달하기 위한 필수적인 선택으로 보였다. 독자를 자극에 시달리게 하여 어둠에 충실한 삶을 맛보게 하는 일이 그녀의 목적은 아닐까.

마녀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되는 그들 간의 얽힘은 연민을 자아내면서 극의 흐름이 살인이라는 범죄보다 사회적 소외로부터 오는 취약함을 더 와닿게 한다. 타락한 인물들은 어느새 기억 속에서 잊히고 설득력 있는 멜초르의 외침만이 자리 잡게 해 짙은 어둠만을 토해내는 『태풍의 계절』이다.


그들을 향한 연민의 끝은 어디인지. 인간답게 사는 삶의 기준 속에 그들은 어디만큼 닿았는지. 과연 그 기준이 얼마나 합당한가에 대한 암실문고의 물음은 ‘21세기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가장 어두운 성취’라는 타이틀을 한 번 더 떠올리게 한다.
⠀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인생을 바꾼다 - 1일 1페이지 나의 잠재력을 100% 끌어올리는 방법
페니 맬러리 지음, 박혜원 옮김 / 더퀘스트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운동선수가 경기 직전 코치에게 파이팅과 함께 점검받는 기분이 이런 걸까? 뭔가 해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 해의 시작이니만큼 두근거리는 마음과 더불어 긍정적으로 다가온 책이다. 물론 멘탈력에 관한 책을 꽤 읽어온 터라 대부분이 겹치지만 시기를 잘 만난 건지 다시금 되새기며 확고해지는 기분이 들어 좋았다. 이 책은 긍정 확언, 처세술, 자기 계발 등을 동반한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결국 나만이 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해답을 얻기 위한 멘탈력 강화의 길을 365가지 방법으로 펼쳐놓았다.


또 한 가지 이 책이 믿음이 가는 이유는 저자 페니의 인생 스토리가 인간승리 그 자체라는 것이다. 삶의 통제력을 상실하고 바닥을 치던 시절 수년간 노숙자 쉼터와 이집 저집의 소파 신세를 전전하며 방황하다 친구에게 돈을 빌려 평생의 꿈이었던 랠리 카를 운전하게 되면서 세계 최초의 유일한 월드 랠리 챔피언십 레이싱을 펼친 여성 참가자가 되었다. 자동차 관련 TV 프로그램을 다수 진행했고, 퍼포먼스 코치가 되기 위해 훈련을 받아 멘탈력에 관한 권위자가 되는가 하면 인지 행동 치료에서 마스터 프렉티셔너가 되었다. 멘탈력에 관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조연설자라는 점에서 안 끌릴 수가 없었다.


『나는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인생을 바꾼다』
1일 1페이지 나의 잠재력을 100% 끌어올리는 방법
페니 맬러리 저 / 박혜원 역 | 더퀘스트 | 2022년


『자신감은 자신의 진짜 가치에서 온다. 당신의 업적과 능력을 진심으로 믿고 긍지를 느끼는 것이다. 자신만만함, 자기 확신은 내면을 평온하게끔 돕고, 기꺼이 남의 말을 듣고 배우게끔 하며, 타인을 돕게 만든다』


자신감 하나는 자신 있다. 계속 그럴 줄 알았다. 최근 실패를 맛보면서 많이 위축된 상태였는데 다행스럽게도 이 책을 만나 회복 속도가 빨라지면서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목표가 있으면 발전 정도를 판단할 수 있고, 일이 진전될 때 계속해서 나아가게끔 돕는다. 목표를 구체적으로 세울수록 성취할 확률도 높아진다. 목표를 설정하면 수행 능력이 향상될 것이다. 이는 동기부여를 주고 기술을 습득하는 능력을 높이며 자신감을 키워주기 때문이다. 또 당신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있다는 확신을 줄 것이다』


이상하게 구체적인 거에 약하다. 앞만 보며 달리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라 쉼 없이 달리기만 했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얼마 전에 PDS 다이어리를 구입해 시간대별로 일과를 작성하고 있다. 느슨해진 내 모습에 조금 답답함을 느끼는 중이지만, 어쨌든 이 방법도 발전을 위한 과정이니 꾸준히 해보는 일만 남았다.


대단한 포부로 야심 차게 한 해를 시작한다고 해서 인생을 뒤바꿀 만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사소한 행동에 집중하는 새로운 습관을 형성하고, 동기를 얼마나 많이 유발하는지에 상관없이 앞으로 나갈 수 있는 루틴을 개발하여 정해진 일정을 지켜보자. 실수했더라도 최대한 빨리 제자리로 돌아가는, 내 안의 동선에서 잔잔한 성공과 실패를 맛보는 걸로 시작하여 눈 굴리듯 동글동글 굴려보는 것도 나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초석이 된다고 믿는다.


새해 초반임에도 세월의 흐름에 순응만 하고 아무 생각 없는 사람, 멘탈력에 관한 책을 너무 많이 읽어 정리가 안되는 사람, 뭘 해야 될지 몰라 앞날이 답답한 사람에게 노숙자에서 멘탈력의 권위자가 된 페니 맬러리의 『나는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인생을 바꾼다』를 권하고 싶다.



*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생각을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그리트의 껍질
최석규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껍질이 바닥을 향해 물처럼 흘러내리고 안이 텅 비어 있는 푸른 사과. 꽤 인상적이었지. 무언가 꽉 막힌 답답한 가슴을 어루만져 주는 묘한 여운을 주는 작품이었어. 무엇을 생각하며 그린 거냐고 물어봤더니 이렇게 반문했어. ‘우리 모두 겉을 감싼 껍질을 벗겨내면, 사실 똑같이 생긴 영혼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상도 하지. 그 말이 지금까지 머릿속에서 잊히질 않아』

지난달에 ‘우리 속에 숨은 사이코패스’를 읽어서 그런가, 반전이 그럴 수도 있다로 여겨진다. 인격의 한 종류이며 ‘아, 그런 사람이구나’로 짧게 판단하며 지나쳐 버렸다. 사이코패스는 지나가는 한 사람에 불과하고 평범한 타인으로 인정하는 일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아아 내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들의 특성을 표출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들이 펼쳐놓은 인격이 오작동된 세상을 마주했을 때도 과연 이해가 가능할까? 웃기게도 더 이상 날뛰며 소름 돋는 일이라 여기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마그리트의 껍질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로 다가왔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워요. 종들이 가득한 방이 있어요. 강규호 씨는 거기서 제일 작은 종을 망치로 때립니다. 처음에는 종 하나만 징징거리며 울리겠지만, 공명 효과 때문에 주변의 가까운 종들도 곧 따라 울릴 겁니다. 소리는 점점 사방으로 퍼지고 결국 방 안의 종들은 모두 깨어나 같은 소리를 내게 됩니다. 하나의 울림에서 전체의 울림으로. 기억이라는 것은 그런 식으로 살아나는 겁니다. 그걸 ‘기억의 트리거링’이라고 부릅니다』

사고로 최근 2년간의 기억을 잃은 그의 이름은 강규호다. 타인의 관심사에 집중하는 모습을 어떻게 의도적으로 보여주느냐가 관계의 첫 단추라 생각하며, 대가 없는 이타심에 보람을 어색하게 갖다 붙이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맞는지 궁금해한다. 이상하게도.

『서랍을 열었다. 수북이 쌓인 약을 모두 꺼내 쓰레기통에 처넣어버렸다.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차피 기억력 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 약이다. 신경안정제가 조금 섞여 있겠지만 별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신경 안정 따위는 내게 필요 없었으니까. (…) 고통의 심연에는 어떤 맹렬한 아픔도 와닿지 않는 텅 빈 곳이 있다. 그곳엔 일종의 환희가, 승리에 넘친 긍정이 있다』

통제력을 잃은 생각의 흐름은 의혹의 몸집만 키워갔다.

『그녀의 이웃은 분개했지. 그 아가씨가 사람에겐 정이 없고 강아지가 죽으니까 운다고 말이네. 그녀가 강아지의 죽음을 슬퍼한 이유는 강아지가 그녀의 세계에 동참했기 때문이야. 개는 그녀의 목소리에 대꾸했지만, 사람들은 대답하지 않았잖은가』

밀란 쿤데라의 ‘불멸’을 읽는 그는 한 문장에 집중했다.

‘강아지가 그녀의 세계에 동참했다.’

어찌 됐건 인간은 무리생활을 하는 본능을 갖고 있는데 지금 시대의 흐름으로 봐서는 본능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 급기야 본능을 잃어가고 새로운 무언가를 세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중심에 마그리트의 껍질이 있는 건 아닌지.

세상에 온갖 종류의 선들만 남았을 때 그중 덜 선한 것이 악이 된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선은 선 자체만으로 존재할 수 없다. 조금의 악이라도 있어야 선으로 판가름할 수 있다. 사이코패스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선하다는 것을 돋보이기 위해 존재하는 덜 인간적인 사람은 아닐까.

껍질을 벗겨내면 다 똑같다. 누구는 껍질을 벗겨내고 누구는 껍질을 덧씌우고 산다. 어떤 게 오른지는 모르겠다. 이 소설은 누가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는 모르지만, 해선 안 되는 일은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지금 현시대에서는 말이다.





*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생각을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그다드 카페에서 우리가 만난다면
황주리 지음 / 파람북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읽다가 좋은 글귀를 만나면 밑줄을 긋고, 음악을 듣다가 소름 돋으면 한 번 더 플레이시키고, 그림이 마음을 관통했을 때는 두 손으로 입을 막으며 감탄한다. 가끔 이런 즐거움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달하고 싶을 때가 있다. 옆에서 흥분한 채로 팔을 때려가며 재잘재잘 귀찮게 하는 그런거. 이 소설이 그렇게 다가왔다. 게다가 영화, 음악, 그림, 책이 함께하고 있어 현실의 비협조적인 상황에서도 사랑의 속삭임으로 들렸다. 사랑과 불안은 전쟁과 평화로 대치되기도 하면서 불멸의 지점에서는 한없이 외롭게 다가오기도 했다.


주인공을 의사와 화가로 정한 건 시대의 상처를 치유하는 상징적인 의미에서의 설정이다. 그리고 영화 <바그다드 카페>가 있다.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영화이며, 이 책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제베타 스틸이 부른 Calling You의 몽환적인 울림은 영화와도 무척이나 어울렸지만, 이 소설의 속삭임이 외침으로 느껴질 때 Calling You를 찾게 된다. 바그다드 카페와 오버랩되어 읽는 내내 정말 행복했다.


『사물이 환기시키는 기억의 힘이란 너무도 커서 사람이 죽어도 그가 남긴 물건들은 끈질기게 살아남죠. 그중에서도 가장 힘이 센 사물이 그림이 아닐까 합니다. (…) 우리가 같은 시절 같은 영화 <바그다드 카페>를 좋아했다는 우연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 외로움은 마치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세상을 다르게 변화시키는 인간의 가장 오래된 재료 같습니다』

그리움은 현실에 혼란을 불러오기도 하지만, 대상이 명확하면 힘이 된다. 그래서 그녀가 남긴 그림은 힘이 세다.



『때로 전쟁의 반대말은 평화가 아니라 파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환한 불빛 아래서 춤을 추는 사람들, 와인 잔들이 부딪치는 소리, 여자들의 화려한 의상, 가끔은 영화 속에서라도 그런 장면을 보고 싶어져요. (…) 돈도 금도 지혜도 아닌 증오의 상속이라니, 옳은 건 과연 무엇일까요? (…) 실체는 없지만 고통을 느끼는 환상통처럼 있지도 않은 수많은 소리들이 들려오는 병이 마치 전염이 된 것 같습니다』

전쟁과 질병, 위태로운 자본주의로 너무나 현실적인 문장들을 엮어봤다. 여유로운 생각일지 모르지만 사랑이 절실해 보여 두 사람의 끌어당김은 당연해 보였다.


『삶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 때는 당신의 편지를 읽을 때입니다. (…) 이곳에 없는 그대가 그곳에서 나를 생각한다는 그런 기분은 뭔가 든든한 비현실의 힘이죠. (…) 영화 바그다드 카페 속의 뚱뚱한 여주인공이 좋아요. (…) 영화가 나온 이후 다른 삶을 경험함으로써 인간의 삶은 세 배로 길어졌다는 누군가의 말이 생각납니다』

분명 사랑의 속삭임은 맞는데 잠시 공허함을 느꼈던 문장들이다. 과연 편지는 존재하는 걸까. 이곳과 그곳의 경계를 알 수 없어 비현실적이며, 그녀는 마른 몸인데. ‘인간의 삶이 세배로 길어졌다’는 이 멋진 말이 그와 그녀의 간격을 더 멀어지게 하는 건 아닌지.

『언젠가 오래된 일기를 뒤지니 ”오늘도 행복했다“라고 짧게 쓰여 있더군요. 내가 쓴 건데도 그 짧은 일기가 마치 어떤 유명한 사람의 묘비명처럼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 어쩌면 이런 식의 감정이 사랑일 수 있다면, 나는 당신을 많이 사랑했는지도 모릅니다』


이 책 참 아리다. 그리고 아름답다.


우리가 했던 모든 일이 사랑이라면, 지금 죽어도 괜찮다.
- 페르난도 페소아 《불안의 책》




*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생각을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