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질이 바닥을 향해 물처럼 흘러내리고 안이 텅 비어 있는 푸른 사과. 꽤 인상적이었지. 무언가 꽉 막힌 답답한 가슴을 어루만져 주는 묘한 여운을 주는 작품이었어. 무엇을 생각하며 그린 거냐고 물어봤더니 이렇게 반문했어. ‘우리 모두 겉을 감싼 껍질을 벗겨내면, 사실 똑같이 생긴 영혼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상도 하지. 그 말이 지금까지 머릿속에서 잊히질 않아』지난달에 ‘우리 속에 숨은 사이코패스’를 읽어서 그런가, 반전이 그럴 수도 있다로 여겨진다. 인격의 한 종류이며 ‘아, 그런 사람이구나’로 짧게 판단하며 지나쳐 버렸다. 사이코패스는 지나가는 한 사람에 불과하고 평범한 타인으로 인정하는 일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아아 내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들의 특성을 표출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들이 펼쳐놓은 인격이 오작동된 세상을 마주했을 때도 과연 이해가 가능할까? 웃기게도 더 이상 날뛰며 소름 돋는 일이라 여기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마그리트의 껍질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로 다가왔다.『이렇게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워요. 종들이 가득한 방이 있어요. 강규호 씨는 거기서 제일 작은 종을 망치로 때립니다. 처음에는 종 하나만 징징거리며 울리겠지만, 공명 효과 때문에 주변의 가까운 종들도 곧 따라 울릴 겁니다. 소리는 점점 사방으로 퍼지고 결국 방 안의 종들은 모두 깨어나 같은 소리를 내게 됩니다. 하나의 울림에서 전체의 울림으로. 기억이라는 것은 그런 식으로 살아나는 겁니다. 그걸 ‘기억의 트리거링’이라고 부릅니다』사고로 최근 2년간의 기억을 잃은 그의 이름은 강규호다. 타인의 관심사에 집중하는 모습을 어떻게 의도적으로 보여주느냐가 관계의 첫 단추라 생각하며, 대가 없는 이타심에 보람을 어색하게 갖다 붙이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맞는지 궁금해한다. 이상하게도.『서랍을 열었다. 수북이 쌓인 약을 모두 꺼내 쓰레기통에 처넣어버렸다.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차피 기억력 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 약이다. 신경안정제가 조금 섞여 있겠지만 별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신경 안정 따위는 내게 필요 없었으니까. (…) 고통의 심연에는 어떤 맹렬한 아픔도 와닿지 않는 텅 빈 곳이 있다. 그곳엔 일종의 환희가, 승리에 넘친 긍정이 있다』통제력을 잃은 생각의 흐름은 의혹의 몸집만 키워갔다.『그녀의 이웃은 분개했지. 그 아가씨가 사람에겐 정이 없고 강아지가 죽으니까 운다고 말이네. 그녀가 강아지의 죽음을 슬퍼한 이유는 강아지가 그녀의 세계에 동참했기 때문이야. 개는 그녀의 목소리에 대꾸했지만, 사람들은 대답하지 않았잖은가』밀란 쿤데라의 ‘불멸’을 읽는 그는 한 문장에 집중했다.‘강아지가 그녀의 세계에 동참했다.’어찌 됐건 인간은 무리생활을 하는 본능을 갖고 있는데 지금 시대의 흐름으로 봐서는 본능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 급기야 본능을 잃어가고 새로운 무언가를 세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중심에 마그리트의 껍질이 있는 건 아닌지.세상에 온갖 종류의 선들만 남았을 때 그중 덜 선한 것이 악이 된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선은 선 자체만으로 존재할 수 없다. 조금의 악이라도 있어야 선으로 판가름할 수 있다. 사이코패스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선하다는 것을 돋보이기 위해 존재하는 덜 인간적인 사람은 아닐까. 껍질을 벗겨내면 다 똑같다. 누구는 껍질을 벗겨내고 누구는 껍질을 덧씌우고 산다. 어떤 게 오른지는 모르겠다. 이 소설은 누가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는 모르지만, 해선 안 되는 일은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지금 현시대에서는 말이다.*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생각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