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거스의 음악을 모든 것이 아름다웠던 이십 대에 만났다. 당시 프리재즈에 빠져있었고, 그야말로 괴상한 음악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일이 갓 스무 살의 숙명이라 여기며 고막이 터지도록 듣고 다녔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재즈가 있었고, 밍거스는 나의 최애 락스타 액슬 로즈를 이겨 먹은 아티스트였다.찰스 밍거스 : 소리와 분노 / 현대 예술의 거장진 샌토로 저 / 황덕호 역 | 을유문화사 “내가 낚시터에서 물고기를 낚듯이 좋아하는 곡들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음악의 파노라마가 나를 휩쓸고 가도록 몸을 맡겼다. 그 과정에서 가시지 않던 만성적인 문제는 이 책의 원천이 되었다. 문제는 이점이다. 밍거스의 음악은 압도적이다.”밍거스의 음악은 강렬한 섬광보다 우주 전체라 할 수 있다. 그의 광기는 재즈라는 장르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재즈의 테두리 안에서 모든 소리를 아우른다. 그래서 음악에 휩쓸리다 보면 감상자를 감동하게 하는 지점을 만날 수밖에 없다. 그는 인종주의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으며, 잦은 분노와 변덕스러운 성격의 기분파로 분노의 재즈맨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늘 자신감에 차 있었다. 어린 시절에도 그가 행하는 모든 것은 자기표현의 선언이었고 각광받기를 바라는 행동이었다. 자신을 홍보하는 일에 ‘듀크 엘링턴을 계승하는 가장 위대한 재즈 작곡가 중 한 명’이라고 할 만큼 음악에 대한 열정도 대단했다. 음악도 분노도 열정도 심지어 여자도 모든 게 넘쳤던 밍거스를 차례차례 만나보면서 그의 음악 세계가 다채로울 수밖에 없는 이유를 현대 예술의 거장 <찰스 밍거스> 편을 통해 알게 되었다.“내 피부색이 저 사람 같았으면 아마도 난 카네기홀에 있었을 거야. 베토벤처럼 존경받으면서.”그가 루게릭병으로 죽기 1년 전, 1978년 백악관에서 열린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에서 지미 카터 대통령과 휠체어에 앉아 있는 밍거스 사진을 보았다. 큰 덩치로 무대 위를 장악하던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었다. 감정 기복이 병의 증상이기도 하지만 미간을 찌푸린 그의 모습에서 여전한 분노를 보는 것 같아 반갑기도 했다.음악을 좋아한다고 해서 아티스트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다. 오히려 사생활이 주관적인 감상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러나 이번 찰스 밍거스의 평전을 통해 그의 음악 세계를 깊게 들여다보는 시간이었으며, 밍거스의 음악에 취한 날이 많았다.찰스 밍거스 소리와 분노는 진 샌토로의 차분한 전달력으로 괴짜 작곡가의 부드러운 베이스 울림을 떠올리게 할 만큼 아름다웠다. 그리고 황덕호 재즈 평론가의 번역이기에 밍거스의 음악세계가 더 섬세하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