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못다 한 이야기들
마르크 레비 지음, 강미란 옮김 / 열림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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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자신의 삶을 당겨서라도 죽어서 만나지 못하는 그리운 사람을 보고 싶어 한다. 다시 한번 만난다면 못다 한 말을 꼭 하리라 굳게 다짐하면서. 임종 직전에는 떠나는 이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평안을 빌어주고 진심과 애정이 담긴 말도 술술 잘 나온다. 이래서 제일 늦게까지 남아있는 감각이 청각인가보다. 죽음으로 그리움을 남기고 간 누군가가 살아서 돌아온 기쁨은 뒤로하고 지금 내 곁에 있는 가족들의 얼굴을 한 번 더 쳐다보게 하는 소설이다.

“아빠가 죽었대!”

딸 줄리아와 그녀의 친구 스탠리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그저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다. 사업으로 늘 바쁜 줄리아의 아버지 안토니 왈슈는 딸의 결혼식을 앞두고 사망했다. 딸의 결혼식 참석이 당연한 게 아니라 스케줄을 통해 확인해야 할 만큼 가족보다 일이 먼저인 아빠로 기억에 남아 아버지의 개인비서로부터 연락을 받는 순간 짧은 농담을 내뱉는다.

“이건 정말 뭐라고 할 수 없는 변명인걸?”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아무 느낌이 없고, 가슴이 아프지도 않으며, 코끝이 찡하거나 그런 느낌조차 없다는 동네 이웃보다 못한 심정을 털어놓는다. 원망조차 단절시켜 버리는 아버지에 대한 차가운 마음이 느껴졌다.

원래대로라면 결혼식이 열릴 토요일에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른 끔찍한 토요일 보낸 줄리아는 다음 날인 일요일도 다를 바 없이 우울하게 보내다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대형 상자를 발견한다.

“도대체 누가 나한테 이런 걸 보낸 거지?”

상자를 열어보니 줄리아의 아버지인 안토니 왈슈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안토니 왈슈와 똑같은 모습으로 만들어진 밀랍인형이었다. 너무나도 똑같은 모습에 줄리아는 제대로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인형의 뺨을 만져보고 머리카락을 한 올을 뜯어내 보고 싶었지만 오래전부터 어떤 신체적 접촉도 오가지 않은 부녀 사이라 의미가 없었다.

‘작동을 시켜보렴’

와이셔츠 손목 부분에 꽂혀 있는 메모지에 적힌 내용이다. 아버지의 글씨체였다. 그리고 작동 버튼을 누른 순간, 딸각 하는 소리와 함께 스르르 올라가는 눈꺼풀에 얼굴은 미소를 띤 채, 인형 아닌 인형이 아버지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그래봤자 살아있는 아버지를 대신한 인형일 뿐인데, 스토리에 몰입할 수 있을까 의심했다. <차마 못다 한 이야기들>이라는 제목이 계속 쫓아다니면서 웃음도 사랑도 그리움도 꽉 차게 전달하는 따듯한 소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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